조선사연구초

삼한고(前後 三韓考: 단재 신채호) - 20

상 상 2011. 8. 9. 09:26

3.2. 중(中)삼한의 약사

 

윗글은 이전 학자들의 오류를 지적한 것뿐이다. 이제부터 후삼한의 역사를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진번막(眞番莫)을 삼조선이라 하고 신라 가야 백제를 후삼한이라면

진번막(眞番莫) 삼조선은 이미 멸망하고 나가제(羅加濟: 신라, 가야, 백제) 삼국은 아직 건설되기 전에

준(準: 준왕, 기준)의 마한과 진번(眞番) 양국의 유민이 건설한 진한과 변한의 양 자치부락은 무엇이라 이름할까?

 

불가(佛家)에서 전신(前身)은 이탈(已脫)하고 후신(後身)을 아직 얻지 못한,

그 중간 잠시 갖는 몸을 중음신(中陰身)이라 하니,

이것은 전후 양 삼한의 중음신이라 함이 가하나,

지금 다만 중삼한이라 이름하고

후삼한의 역사를 말하기 전에 먼저 중삼한의 역사를 말하고자 한다.

 

중삼한의 역사를 두 단계로 나누니,

 

일(一)은 마한의 건국이다.

준(준왕, 기준이 왕검성을 버리고 금마군에 천도하여 어찌하여 조선의 옛 이름으로 국호를 삼지 아니하였는가?

이는 위만의 조선과 구별하기 위함일 것이다.

고대에 천도하면 늘 그 지방의 이름으로 국명을 삼았으니,

백제가 사비부여에 천도하여 국명을 곧 사비부여라 한 종류가 그것이니,

준(준왕, 기준이 금마군에 천도하여 어찌 금마국이라 칭하지 아니하였는가?

금마군은 삼한전 중의 건마국이니 금마군이라 함은 백제 중엽 이후 봉건제를 폐지한 뒤의 군 이름(郡名)이라.

 

신라가 백제를 멸하고 그 군명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신라 문사들이 고기(古記)를 저술(述)할때에

준이 금마군에 천도하였다 함이요,

준의 때부터 백제 중엽까지는 건마국 혹 금마국이라 칭했을 것이니,

 

준의 남천 후에 금마국의 국명을 그대로 칭하였던지는 모르겠으나

후세 사람들이 옛 역사(古史-고사)를 추가 저술(追述)할 때 준의 왕위 호칭인 말한으로

그 국명을 삼은 것이다.

 

이전 학자들이 모두 금마군을 삼한전 중의 건마국으로 인식하지 않고

월지국으로 인식함은 어찌된 까닭인가?

 

이는 전술한 범엽의 “마한을 쳐서 깨뜨렸다.(攻破馬韓)”,

“마한사람이 다시 자립하여 진왕이 되었다(馬韓人復自立爲辰王)” 등의 위증(僞證: 거짓 증명)에 속아서

삼한전 중의 진변(辰弁) 양한은 신라와 가야로 인식하면서도

마한은 백제 이전의 마한으로 인식한 고(故)로

삼한전 중 백제에 관한 사실을 준(준왕: 기준)의 사실로 오증(誤證: 틀린 증명)하였으나,

그러나 “진왕이 월지국을 다스렸다(辰王治月支國)”이라 한 진왕은 백제의 태왕(대왕)이요,

월지는 백제의 위례성이니, 위례의 음이 ‘월’이 되고 성의 뜻이 지(支)가 됨이다.

 

후한서의 “마한을 쳐서 깨뜨렸다.(攻破馬韓)” 등의 설(說: 주장)을 범엽의 위증(僞證: 거짓 증명)이라 하여

준(준왕, 기준)의 천도 이전에는 남방에 마한의 명칭이 있었다 함은 그럴 듯하나,

그러나 삼국지의 “준.. 바다로 달아나 한의 땅에 살면서 스스로 한왕이라고 칭하였다.

(準…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은 어찌된 설(說: 주장)인가?

 

이는 윗 글의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韓在帶方之南)”를 받아서 말한 것으로

이 한(韓)의 땅에 들어와 살면서 이 땅의 왕이라 불렀다고 한 것이요,

그 이전에 한국(韓國)이 있다 함이 아니다.

 

만일 엄격하게 문구와 사실의 부합만 구할 것 같으면

윗글에 이미 “진한(辰韓)은 옛 진국(辰國)이다(辰韓者古之辰國也)”라 하였은즉

진한의 진(辰)이 진국의 진(辰)에서 나옴 이어늘 어찌된 까닭으로

 

아래글에 “노인들이...스스로 말하기를...진나라(秦) 부역을 피하여 한국(韓國)에 왔는데

마한(馬韓)이 그 동쪽 경계를 갈라주어...지금도 (진한-辰韓을) 진한(秦韓)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辰韓 … 耆老 … 自言 … 避秦役來適韓國馬韓割其東界…今有名之爲秦韓)이라 하여,

진시황의 진(秦)으로 진한의 진(辰)을 만들어 위 아래글의 사실을 서로 모순되게 하였는가?

 

이미 “한은 세 종류가 있는데 그 하나는 마한이라 한다(韓有三種一曰馬韓)”이라 하였으면

그 아래에 마땅히 마한의 이름을 얻은 시초나 원인을 말하여야 할지어늘

이제 “한의 땅에 살았다(居韓地)”, “한왕이라고 불렀다(號韓王)”,

“한이 마침내 대방에 속하였다(韓遂屬帶方)”,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치하였다(樂浪本統韓國)” 등의 말만 있고

마한이란 것이 없으니,

어찌 이같이 전후 문세(文勢: 글의 기세)가 관통치 않았는가?

 

그러므로 더욱 당 태종 이래로 옛 역사(古史) 안에

망령된 삭제 혹은 위증(僞證: 거짓 증명)이 많이 덧붙여졌음을 볼 수 있다.

--------------------------------------------------------------------

주의를 기울여 볼 문장은

 

첫째,

<윗 문장에 진한(辰韓)은 옛 진국(辰國)이라고 해놓고

(진한-辰韓이 진국-辰國에서 나왔다고 해놓고)

 

아래 문장에는 진한(辰韓) 사람들이 옛 진(秦)나라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도 (진한-辰韓을) 진한(秦韓)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진한-辰韓이 옛 진-秦나라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진한(秦韓)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진한-辰韓이 중국 진-秦에서 나왔다)>는 것은 위 아래문장이 앞뒤가 맞지않는 것이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진한-辰韓이 진국-辰國에서 나왔다고 해놓고)

(진한-辰韓이 중국 진-秦나라에서 나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진한-辰韓은 옛 진국-辰國의 종족이다 라고 해놓고)

(진한-辰韓은 옛 중국 진-秦나라의 종족이다) 라고 해 놓는 것은 앞뒤가 맞지않는 말이다

 

(진한-辰韓은 옛 진국-辰國이다 라고 해놓고)

(진한-辰韓은 옛 중국 진-秦나라다) 라고 해 놓는 것은 앞뒤가 맞지않는 말이다

 

앞 문장에서 (진한-辰韓이란 진국-辰國이다)라고 해놓고

뒷 문장에서는 (진한-辰韓아란 중국 진한-秦韓이다)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따라서 그런 말들은 명명백백하게 틀렸다.

이런 말입니다

 

둘째, 

 

< 한은 세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마한이고, 둘은 진한이며 셋은 변한이다 라고 해놓고

첫째 마한을 설명하면서 다시 한에 대한 설명만 있고 마한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

마한에 대한 망나니같은 삭제가 있었거나 위증이 많이 덧붙여졌음을 볼수 있다는 말씀>

 

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3) 지금 올리는 ‘전후 삼한고’는 ‘조선사연구초’ 안에 있는 글임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