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일(一)로 인하여 오류가 생긴 것(참고서의 오류) 이 또 둘이니
1, 마한은 전후 삼한(전삼한, 후삼한을 통하여 기씨 하나의 성(箕氏一姓)
-부(否)와 준(準)을 기자(箕子)의 후예라 하면- 뿐이어늘
선배 유학자(선유)들이 후한서에 근거하여
준(準: 준왕, 기준)이 공격하여 파괴하기 이전의 마한을
원유(原有:원래 있었던)의 마한이라 하고,
공격 파괴한 마한을 기씨의 소유한 마한이라 하고,
진왕이라 자칭한 마한을 기씨가 끊어진 뒤의 마한이라 하여
3개의 마한으로 나누며
2, 선배 유학자(선유)의 말에
중국 21사의 조선열전이 모두 당대(當代) 병립한 인접국(隣國-인국)을 기재한 것인즉,
후한서나 삼국지의 삼한도 곧 중국 후한과 삼국시대에 있었던 신라 가야 백제 삼국이요,
그 백년 혹 천년 전의 삼한이 아니라 하였다.
이것은 역대 사가(史家)가 후한서와 삼국지에 보인 사실을
나가제(羅加濟: 신라, 가야, 백제) 삼국 이전에서 찾으려고 한 미련한 짓을 갈파한 것으로
실로 천번 만번 확실한 견해라 할 것이다.
다만 후한서로 인하여 마한을 3개로 나누어 진왕의 마한을 최후의 마한으로 한 것으로 인하여
이에 백제를 어디에 둘 곳이 없으므로 드디어 백제본기의 온조가 마한을 멸한 사실을 부인하고
진수와 범엽이 책을 쓰던 때, 즉 백제 건국 2백년 후 까지도 마한이 따로 존재하였음을 주장하여
상상으로 꾸며낸 글로 전시대에 이미 망한 마한의 2백년 수명을 연장하고,
그리하여 진변(辰弁) 양한(진한 변한)을 신라와 가라로 인정하는 동시에
백제만 삼한권 밖으로 축출하여 연대와 사실의 대착오를 이루었다.
제 二로 인하여 오류가 생긴 것(한쪽말만 치우쳐 믿는 오류)이 또 둘이니
1, 진한(辰韓)을 ‘진나라 사람이 부역을 피한 사람’ 이라고 한 망령된 증명은
이미 변론하였거니와,
이전 학자들은 진수 범엽 등의 기록을 신용하여 드디어 신한을 중국인의 자손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그러면 어찌하여 진한에 중국인의 언어 문자와는 비슷도 아니한 사로(斯盧),
기저(已祗), 불사(不斯) 등과 같은 나라의 이름이 있느냐의 의문이 있으므로,
이에 해동역사 지리고에는 진한의 이름은 ‘진나라 사람이 부역을 피해 동쪽으로 온 사람들’
때문에 나고,
6부의 이름은 위만의 2세인 우거의 신하와 백성들이 이주한 뒤 시작한 줄로 말하였다.
그러나 이같이 진한(辰韓)을 “진인(秦人:진-秦나라 사람)이 이주한 한국(韓國)”이라 풀이 한다면,
삼국사기 혁거세 원년에
“진인(辰人: 진한-辰韓 사람)은 바가지(瓠-호)를 박(朴)이라고 하였다.(辰人以瓠爲朴)”,
“거서간은 진한 말(辰言)로 어른을 일컫는 말이다(居西干辰言長者之稱)”의 진(辰)은
모두 진인(秦人:진나라 사람)이란 진(秦)일 것이나,
어원학상으로 고찰 연구하여도 ‘박(朴)’이나 ‘거서간’이 결코 고대 중국인의 언어가 아니었다.
2, 삼국지에는 “(조선)후 준이 왕이라 참칭하였다(侯準僭號稱王)”이라 하여
기자 자손이 대대 후작(侯爵)으로 오다가 준(準: 기준)에 이르러 비로소 칭왕(稱王)한 줄로 말 하였다.
그러나, 위략에는 “조선 후는 주나라가 쇠약한 것과 연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이라하는 것을 보고 ...
그 또한 스스로 왕이라 칭하였다.(朝鮮侯見周衰燕自尊爲王…亦自稱王)”라고 하였으니,
기준의 선대(先代)에서 이미 왕이라 칭한 것으로 말하였다.
삼국지나 위략에 적힌 사실이 다같이 관구검이 전해준 바 이련마는,
오직 이 한 절이 다 각각 다름은 각기 ‘중국을 높인다’는 습관으로
사실에 위반되는 사실을 쓴 것이 명백하거늘
이런 옳고 그름을 논박하는 것이 없음은 고사하고
이전 학자 중 혹 진왕(辰王)의 진(辰)을 신하(人臣)의 신(臣)으로 만들어
신하로써 예속한 후왕(侯王)의 뜻으로 망령되게 풀이한 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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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3) 지금 올리는 ‘전후 삼한고’는 ‘조선사연구초’ 안에 있는 글임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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