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연구초

삼한고(前後 三韓考: 단재 신채호) - 16

상 상 2011. 8. 5. 09:21

(나) 편신(偏信: 한쪽말만 치우치게 믿음)의 오류니,

 

당 태종이 중국 옛 역사(古史)중에서 조선에 관한 기재를 멋대로 삭제 혹은 위조하였음은

이미 앞에서 기술하였거니와,

 

그뿐 아니라 당 태종의 백여 년 후 당 덕종때의 가탐(賈耽)은

소위 사이(四夷)연구의 전문가로서 더욱 조선과 중국관계를 잘 아는 자이었는데,

그 저서 사이술(四夷述)의 서(序)에

“현도 낙랑은 한 건안 때(196~219)에 함락되었다.(玄菟樂浪陷於漢建安之際)”라 하여

2군이 고구려에게 함락됨을 한탄하였거늘,

 

이제 후한서에는 그와 비슷한 말도 없고,

삼국지에는 공손강(公孫康)이 둔유현(屯有縣) 이남의 땅을 나누어 대방군으로 삼았다 할 뿐이며,

 

또 위 명제(魏明帝: 조예-曹睿, 재위년도: 226~239)가 대방태수 유흔(劉昕)과 낙랑태수 선우사(鮮于嗣)를 보내어

바다를 건너 2군을 정벌하였다 하여 대방 낙랑이 일찍이 공손연(公孫淵)에 함락되었음을 말하였다.

 

그러나 대방이 현도가 아니며 공손연이 고구려가 아니니

이것을 곧 가탐의 말한 바로 간주함이 불가하다.

 

그러면 진수, 범엽 등이 종족적 편견으로 현도 낙랑을 공략당하여 잃어버린 대사(大事)를

빼버린 것 이거나 후세 사람이 멋대로 삭제한 것이다.

 

또 삼한전에

“부종사 오림은 낙랑군이 본래 한국을 통치하였다고 생각하고는 진한(辰韓) 팔국(八國)을 분할하여 낙랑(樂浪)에 넣으려 하였다.

그 때 통역하는 관리가 말을 옮기면서 틀리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

신지(臣智)와 한인(韓人)들이 모두 격분하여 대방군(帶方郡)의 기리영(崎離營)을 공격하였다.

이때 [대방(帶方)]태수(太守) 궁준(弓遵)과 낙랑태수(樂浪太守) 유무(劉茂)가 군사를 일으켜 이들을 정벌하였는데,

준(遵)은 전사하였으나 이군(二郡)은 마침내 한(韓)을 멸(滅)하였다.

(部從事吳林以樂浪本統韓國分割辰韓八國以與樂浪吏譯轉有異同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

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遵戰死二郡遂滅韓)”라고 하였으니,

 

아래 글에 의거하면 진한의 전체 나라 수가 12국인데

윗 글에 나오는 삼국지에 의하면 진한 8국을 빼앗아 4국만 남겨두었다가

후에 그 4국까지 멸망시켜 진한 전부를 멸망시켰다고 함이니,

그러면 (진한에서 나온) 신라 왕국은 어디에 존재하였던가.

 

그런데 선배 유학자들은 매번 고기(古記)의 여기저기에 있는 문자는 다 버리고

오직 후한서 삼국지 등을 의거하여 옛 일을 단정하려 하였다.

--------------------------------------------------------------------

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3) 지금 올리는 ‘전후 삼한고’는 ‘조선사연구초’ 안에 있는 글임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