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연구초

삼한고(前後 三韓考: 단재 신채호) - 22

상 상 2011. 8. 11. 09:50

3.3. 후삼한 나가제(羅加濟)의 역사

 

나가제(羅加濟: 신라, 가야, 백제)의 역사는 그 기간이 6~7백년의 역사니,

그 연대의 길이는 전삼한의 삼분의 일밖에 안되나 사적재료로 흘러 전해 내려오는 것은

서적으로만 말하여도 정밀하지 못하나마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이 있어,

도저히 이 따위 단편으로 다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하고자 하는 후삼한은 순전히 진수 삼국지 삼한전에 보인

나가제(羅加濟)의 별명인 삼한에 대하여 말함에 그칠 뿐이다.

 

먼저 후삼한의 강역을 의론하면 삼국지에 기록한 삼한 70여국은

곧 삼국사기 지리지에 보인 나가제(羅加濟) 삼국의 각 주군(州郡)이니,

 

다만 전자는 봉건시대의 지리를 기록한 것이므로 국(國)이라 하고,

후자는 봉건 타파 후 기록한 것이므로 주(州) 혹은 군(郡)이라 한 것이다.

 

봉건 국가를 폐지하고 주,군(州, 郡)을 설치하는 동안에 크고 작은 합병도 있었을 것이며,

명칭과 호칭의 변경도 있었을 것이며,

또 같은 명칭과 호칭으로도 이두문으로 쓴 글자의 변경도 있었을 것이며,

신라 경덕왕 때 이두문으로 쓰던 지명을 한문으로 개정한 뒤 혹 옛 호칭(옛 이름)이 전하지 못하며,

혹 옛 호칭(옛 이름)의 의미를 알 수가 없이 된 자가 많아 일일이 찾을 수 없으나,

오히려 그 대략을 알 수 있다.

 

(가) 백제의 강역은 삼한전에 이른바 마한 50여국인데 국명은 다음과 같다.

 

해양국(奚襄國), 모수국(牟水國), 상외국(桑外國), 소석삭국(小石索國), 대석삭국(大石索國), 유휴모탁국(優休牟涿國),

신분활국(臣濆活國), 백제국(伯濟國),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

일화국(日華國), 고탄자국(古誕者國), 고리국(古離國), 노람국(怒藍國), 월지국(月支國),

자로모로국(咨離牟盧國), 소위건국(素謂乾國), 고해국(古奚國), 막로국(莫盧國),

비리국(卑離國), 점비리국(占卑離國), 신흔국(臣釁國), 지침국(支侵國), 구로국(狗盧國),

비미국(卑彌國),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 고포국(古蒲國), 치리국국(致利鞠國),

염로국(冉路國), 아림국(兒林國), 사로국(駟盧國), 내비리국(内卑離國), 감해국(感奚國),

만로국(萬盧國), 벽비리국(辟卑離國), 구사오단국(臼斯烏旦國), 일리국(一離國),

불미국(不彌國), 지반국(支半國), 구소국(狗素國), 첩로국(㨗盧國), 해로비리국(奚盧卑離國), 신소도국(臣蘇塗國), 막로국(莫盧國),

고랍국(古臘國), 임소반국(臨素半國), 신운신국(臣雲新國),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초산도비리국(椘山塗卑離國),

일난국(一難國), 구해국(狗奚國), 불운국(不雲國), 불사분야국(不斯濆邪國), 해지국(奚池國), 건마국(乾馬國), 초리국(椘離國).

 

위 50여국의 국명(國名)중에 중복 기재한 막로국을 빼면 합이 54이니,

54의 국명(國名)을 삼국사기 백제 지리지의 주((州) 이름과 군(郡) 이름에 맞춘 뒤

다시 백제 주군(州郡)의 연혁을 고려사 지리지와 이조 8도 지명에 맞추어 본즉

 

그 가운데 비리(卑離) 등 여러나라들은

곧 백제 지리지에 부리(夫里) 등 주군(州郡)인데,

 

감해미리(監奚卑離)는 고막부리(古莫夫里), 즉 고마성(固麻城)이니 지금 공주요,

벽비리(辟卑離)는 파부리(波夫里)니 지금 동복(同福: 아래① 참조)이요,

 

모비리(毛卑離)는 모량부리(毛良夫里 - 아牙, 사邪, 량良, 양壤, 양襄, 노奴, 나那 등 자(字)가

다같이 '라'의 음임은 이두문 해석법 참조)니 지금 고창(高敞)이요,

 

여래비리(如來卑離)는 이릉부리(爾陵夫里)니 지금 능주(綾州: 아래② 참조)요,

 

그 중에 형용적 앞글자가 없지만 비리국(卑離國)이라 한 비리(卑離)는

그 위에 비(卑)의 한 자가 탈락한 듯하니 비비리(卑卑離)는 부부리(夫夫里)로

임피(臨陂)와 옥구(沃溝) 사이의 회미폐군(澮尾廢郡: 폐지된 회미군)이요,

 

이밖에 삼한전에 내비리(內卑離), 점비리(占卑離), 초산도비리(楚山塗卑離) 등 비리(卑離)가 있고,

백제 지리지에 반나부리(半奈夫里), 미동부리(未冬夫里), 고사부리(古沙夫里), 고량부리(古良夫里)가 있어

숫자도 하나가 차이 나고 음도 서로 맞지 아니하니 아직 뒤에 고증으로 미루고,

 

대석색(大石索)은 대시산(大尸山)이니 지금 태인(泰仁: 전북 정읍)이요,

우휴모탁(優休牟涿)은 우소저(于召渚)니 지금 고산(高山: 아래③ 참조) 서부의 폐군(廢郡)이요,

월지(月支)는 위례성이니 지금 한성(서울)이요,

 

지침(支侵)은 백제 지리지에 그 본위치를 말하지 않았으나 당 도독부가 설치한 군(設郡)에

지심(支潯)이란 군(郡) 이름이 있으니

지심(支潯)은 주의 치소(州治)가 패삼(貝彡)인 고(故)로 이름을 얻은 것이요,

패삼은 신라가 여읍(餘邑)이라 개명한 바 여(餘)의 뜻이가 끼침이니

지금 해미(海美: 충남 서산)요,

 

구로(狗盧)는 개리이(皆利伊)니 그 연혁이 없고,

사로(駟盧)는 사호살(沙好薩)이니 호(好)는 노(奴)의 오자인 듯한데 지금 홍성(洪州)요,

 

감해(感奚)는 금물(今忽)이니 지금 덕산(德山: 아래④ 참조)이요,

 

막로(莫盧)는 매라(邁羅)니 동성대왕 때에 위병(魏兵: 척발씨-拓跋氏) 누십만을 깨친

명장 사법명(沙法名)의 봉건국가(封國)이니,

삼국사기에 그 연혁이 없으나 백제 망후 당 도독부의 관할인즉 대개 공주 부근일 것이요,

 

구사오단(臼斯烏旦)은 구사진방(仇斯珍芳: 일명 귀단-貴旦)이니 지금 장성(長城) 동부요,

초리(楚離)는 소력지(所力只)이니 지금 옥구(沃溝)요,

건마(乾馬)가 곧 금마군(金馬郡: 전북 익산)임은 이미 전술한 바이다.

 

나머지는 아직 발견치 못하였으니 후일을 기다리려니와,

이만하여도 마한 54국의 지도를 그릴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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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50여국의 국명(國名)중에 중복 기재한 막로국을 빼면 합이 54이니,

54의 국명(國名)을 삼국사기 백제 지리지의 주군명(州郡名)에 맞춘 뒤

다시 백제 주군(州郡)의 연혁을 고려사 지리지와 이조 8도 지명에 맞추어 본즉”

위 문장을 보면,

 

이 글을 쓰신 작업 순서가

1) 삼국지 지명을 정리하고, 이것을

2) 삼국사기 백제 지리지와 대조하고, 이를

3) 고려사 지리지와 대조하며

4) 이조 8도 지명과 대조 한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순서를 보면 단재선생께서 글 한줄 쓰시는데

얼마만큼 정확성을 기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 작업을 하려면 대단히 많은 시간이 걸리고 상당히 어려운 작업인데

역사적 사실 몇줄을 쓰시는데도 이와같은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하나하나 엄격하게 사실을 확인하신 뒤에 이 글을 쓰셨습니다.

단재선생의 역사학자로써의 엄밀함과 과학성에 또한번 놀라며 그분의 역량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또한 삼한고 전체를 쓰신 단재선생의 정성과 엄청난 노고는 실로 대단함을 알겠습니다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① 동복(同福): 지금의 전라남도(全羅南道) 화순군 동복면

1914년 4월 1일 능주군, 동복군, 화순군을 화순군으로 개편하였다

 

② 능주(綾州): 지금의 전라남도(全羅南道) 화순군 능주면

1908년 화순군이 능주군에 합병되었다.

1913년 능주군이 화순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지금의 화순군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능주군, 동복군, 화순군을 화순군으로 개편하였다

 

③ 고산(高山): 전북고창군 대산면, 성송면, 장성군 삼계면, 영광군 대마면에 걸쳐있는 산

 

④ 덕산(德山):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 덕산면

1847년 조선 헌종 13년에 덕산이 군으로 승격되었다.

덕산군의 산하에 장촌(場村) 대조지(大鳥旨), 대덕산(大德山), 나박소(羅朴所), 현내(懸內), 내야(內也), 외야(外也),

도용(道用), 고현내(古縣內), 고산(高山), 거등(居等), 비방곶(菲方串)의 12개면이 있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하여 비입지(飛入地)인 비방곶면이 면천군으로, 설현우현이 해미군으로 이관되었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통폐합으로 예산군에 합병되었다.

덕산군의 면 중에서 현내면과 나박소면을 덕산면으로, 장촌면, 대조지면, 대덕산면을 합병하고 거기에 예산군 거구화면 등을 더해

삽교면으로 편제하였다. 1973년 대통령령 제6543호로 삽교면을 삽교읍으로 승격하였다.

 

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3) 지금 올리는 ‘전후 삼한고’는 ‘조선사연구초’ 안에 있는 글임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