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단군 이야기의 올바른 이해(3)

상 상 2011. 2. 28. 18:28

동국통감(東國通鑑)에 기록된 내용

 

단군조선(檀君朝鮮)

동방(東方)에는 최초에 군장(君長)이 없었는데, 신인(神人)이 단목(檀木) 아래로 내려오자

국인(國人)이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

이가 단군(檀君)이며 국호(國號)는 조선(朝鮮)이었는데,

바로 당요(唐堯) 무진년(戊辰年:서기 전2333년)이었다.

처음에는 평양(平壤)에 도읍을 정하였다가 뒤에는 백악(白岳)으로 도읍을 옮겼다.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서기전 1317년) 을미(乙未)에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다.

 

〔신등은 살펴보건데,〕

“고기(古紀)에 이르기를, ‘단군이 요(堯)와 더불어 무진년(戊辰年)에 함께 즉위하여,

우나라와 하(夏)나라를 지나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乙未)에 이르러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는데 1천 48년의 수명을 누렸다.’고 하였으나 이 말은 의심스럽습니다.

 

지금 살펴보건데, 요 임금이 즉위한 것은 상원갑자(上元甲子)인 갑진년(甲辰年)(서기전 2357년)에 있었는데,

단군의 즉위가 그 후 25년 무진년에 있었다면

‘요와 더불어 함께 즉위하였다.’라고 한 것은 잘못입니다.

 

당(唐)나라와 우나라로부터 하나라와 상나라에 이르러서는 세상 인정이 점점 야박해져서

인군(人君)이 나라를 오래도록 향유한자가 5,60년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찌 단군만이 홀로 1천 48년의 수명으로 한 나라를 향유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 말이 꾸며낸 것임을 알겠습니다.

 

전배(前輩)가 이르기를,

‘그 1천 48년이라고 한 것은 곧 단씨가 대로 전하여 지나온 햇수이고, 단군의 수명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근세(近世)에 권근(權近)이 천정(天庭)에 들어가 뵈니 태조(명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가 권근에게 단군을

시제(詩題)로 하여 시(詩)를 지으라고 명하였는데 권근의 시에 이르기를 ,

‘세대(世代)를 전한 것은 얼마인지 모르나 역년(歷年)은 일찍이 천년(千年)을 지났다.(傳世不知幾 歷年曾過千)’

라고 하니, 황제가 보고 옳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의논에서도 권근의 말한 것이 옳다고 하였으므로, 우선 보존하여 뒷날의 참고에 대비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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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전배(前輩)가 이르기를,

‘그 1천 48년이라고 한 것은 곧 단씨가 대로 전하여 지나온 햇수이고, 단군의 수명이 아니다.' 이다.

 

*또한,  

태조(명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가 권근에게 단군을 시제(詩題)로 하여 시(詩)를 지으라고 명하였는데...

이 말도  중요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명태조 주원장도 단군(또는 단군조선)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며

조선이라는 국명을 선택해 줄때 단군조선을 염두에 두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결정해 주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