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45,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90, 8. 황소의 난-16)

상 상 2017. 7. 24. 19:51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45,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90, 8. 황소의 난-16)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8. 황소의 난

1) 연표(자치통감 요약을 기초로 작성)

 

 

1) 연표 - 16

내용(자치통감 요약)

883

이극용의 장수 이존정이 황소의 동생 황규를 사원(沙苑)에서 패배시키고 이극용이 사원 주둔(12). 이극용을 동북면행영도통으로 삼았다.

환관인 관군용사 전령자가 제도행영도통 왕탁을 의성절도사로 좌천시키고,

10·12()관군용사 됨(18)

10: 전령자가 희종을 촉으로 몽진케하며, 신책의 새로운 군() 54()모집하여, 10개 군()으로 나눈것, 1()1천명

12() : ·우위,·우교기,·우무위,·우위위,·우영군위··우금오위 남아(南牙)12

성덕(成德)절도사 왕경숭이 죽자, 그 군대가 10세 아들 절도부사 왕용을 지유후사로 삼았다

천평유후 주선을 천평절도사로 삼았다.(1)

이극용이 건갱(乾阬)으로 나가 진을 치고 하중, 의무, 충무 군()과 합류하고

양전피(梁田陂)에서, 상양(항소군의 재상)15만 군()을 대파, 시체가 30리에 널림

(216)

항소의 장수 왕번과 황규는 화주(華州)를 습격하여 재점거.

하양절도사 제갈상. 위박에 점령되었던 하양(河陽)탈환

위박절도사 한간이 운주(鄆州)를 반년동안 공격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는데

제갈상이 다시 하양(河陽)을 빼앗자 천평절도사 주선이 화의를 청했으나 한간이 거절하고 하양을 공격하니 제갈상이 이한지를 파견하여 무척에서 맞아 싸우게 하니 위박의 군대가 대패하여 철수하였는데 위박 전주(澶州)자사 낙행달이 먼저 돌아와 위주(魏州)를 점거하고,

군대에서 낙행달을 유후로 삼고 위박절도사 한간은 부하에게 죽었다.

낙행달을 위박유후로 삼았다.(221)

이극용이 화주(華州) 포위하니 황사업과 황규가 굳게 지켜 이극용은 기병을 나누어

위수(渭水) 북쪽에 주둔.(227)

 

왕용을 성덕유후로 삼았다.

정소업을 소환하고 진유를 형남유후로 삼았다.

협로초토지휘사 장몽접이 부주(涪州)의 도적 한수승과 굴행종에 패해 물러나고. 응원사 호홍략도 패배하니. 장강· 회수()의 조운 막히고, 형남 기주(夔州) 운안(雲安육정(淯井)의 길 불통되, 백성들의 소금이 모자랐다.

진경선이 주문을 올려 미주()방어사 고인후를 서천행군사마로 삼아 3천군()으로 토벌케 함

 

황소의 군사들은 자주패하고 먹을 것도 없어지니 속으로 도망갈 계책을 세워 군사 3만으로

남전으로 가는 길을 꽉잡고 상양을 파견하여 화주를 구원하게 하였는데 이극용과 왕중영이 영구(零口)에서 이를 격파함.(36)

이극용은 위교(渭橋)에 진을 치고 그의 장수 설지훈과 강군립으로 하여금 장안으로 들어가 불지르고 적들의 목을 베어 돌아오게 하니 황소군은 크게 놀랐다.

회남(淮南) 여주(廬州)아장 양행민(양행밀). 봉기하여 팔영도지병마사 칭회남 압아

여주()자사 제수됨

여주(廬州)자사 양행민이 요망한 방사 여용지의 꾐에 빠진,

회남군()의 유공초와 요귀례를, 여주 신현()에서 습격하여 몰살시킴

하중행영초토부사 주전충을 선무(宣武)절도사로 삼아 장안에서 이기고 수복하기를 기다렸다가 진으로 가게 하였다(323).

이극용 등이 화주(華州)를 뽑으니 황규가 성을 버리고 도망하였다.(327)

 

항주(杭州)도지병마사 전류가 부춘(富春.부양)에서 유한굉을 쳐서 황령(黃嶺)을 깨뜨리고 암하(巖下)의 진장 사변과 정여(貞女)의 진장 양원종을 사로잡았다. 유한굉은 제기에 주둔하였는데 전류가 그를 또 쳐서 깨뜨리는 유한굉은 달아났다.(3)

협로초토지휘사 장몽접이 부주(涪州)의 도적 한수승· 굴행종과 싸웠으나 패주,

미주()방어사 고인후가 군()수습(3)

고인후가 한수승, 굴행종 무리의 영채를 불태우니 물자와 양식이 다 없어졌다.

정예의 병사가 있는 배 밑창뚫으니 한수승· 굴행종의 무리들이 항복.(3)

 

한수승 굴행종 참수(44)

이극용이 충무장수 방종과 하중 장수 백지천 등과 더불어. 위수(渭水) 남쪽에서

황소군을 하루에 세 번 연파, 의성과 의무군()이 합세하자 황소군() 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