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42,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87, 8. 황소의 난-13)

상 상 2017. 7. 12. 20:20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42,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87, 8. 황소의 난-13)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8. 황소의 난

1) 연표(자치통감 요약을 기초로 작성)

 

 

1) 연표 - 13

내용(자치통감 요약)

881

교련사 논안이 백정에서 멋대로 돌아오니 하동절도사 정종당은 그를 참수하고,

다시 도두 온한신을 백정(百井)에 주둔케 함(7)

전령사가 촉군에게 더 이상 전()을 주지 않았고. 황두군사 곽기만이 금으로 된 술잔을 받지 못하여 이를 항변했다가 관군용사 전령자가 독살하려하자, 난을 일으켜 성도(成都) 성내 약탈(721)

황두군사 곽기는 광도(廣都)로 패주, 죽은 걸로 위장하고, () 서천절도사였던 고병에게로 도주

부연절도사 이효창과 권 하주절도사 탁발사공이 동위교(東渭橋)에 주둔하니

황소는 주온(주전충)을 보내 이를 막았다.(7)

의무절도사 왕치존을 동남면행영초토사로 삼고 빈녕절도부사 주매를 절도사로 삼았다(7)

 

무녕(감화-感化)절도사 지상이 아장 시부와 진번을 파견하여 장안에 있는 황소를 토벌하게 하였는데 낙양에 이르러 돌아와 하음을 도륙하고 정주를 약탈하고 동쪽으로 가서 팽성에 이르자 지상이 후하게 상을 주었는데. 절도사 지상을 위협하여 내쫒고, 시부가 스스로 지류무가 되었으며, 조정으로 돌아가는 지상을 칠리정(七里亭)에서 죽였다.

당 조정은 시부를 무녕(감화-武寧)유후로 삼았으며, 시부는 숙주(宿州)자사에 제수된 진번을 죽였다.(8)

시부를 감화절도사 제수(12)

충무절도사 양복광이 주문을 올려 채주(蔡州)를 봉국군(奉國軍)으로 승격시키고 진중권을

방어사로 삼았다.(8)

회남도 수주(壽州)의 가축도살자 왕서. 매부 유행전과 5백명 모아 수주() 점거,

광주(光州) 함락, 1만명 모아 장군을 칭하고 무리 1만을 갖게 되니 진중권이 광주(光州)자사로 삼았다.(8) 왕서는 고시현(固始縣) 현좌, 왕조를 군정으로 삼음

소의절도사 고심은 황소의 장수 이상과 석교(石橋)에서 싸웠는데 패하여 이상이 화주()

재점령하자 황소는 이상을 화주자사로 삼았다.(8)

당항족 권지하수(夏綏)절도사 탁발사공을 하수절도사에 삼았다.(8)

부연절도사 이효창과 하수절도사 탁발사공이 동위교(東渭橋)에서, 상양 및 주온(주전충)

싸웠으나 패주(9)

회남(淮南)절도사 고병, 진해(鎭海.절서)절도사 주보 대립(96)

석경(石鏡)진장 동창이 항주를 점거하니, 주보는 통제할 수 없어 항주()자사로 삼았다.

임해(臨海)의 도적 두웅이 태주()를 함락함(9)

소의(昭義) 10장 성린이 소의절도사 고심을 죽이고 노주(潞州)를 점거했다가,

천정관(天井關) 수장 맹방립에 패사

충무감군 양복광이 무공(武功)에 주둔.

영가(永嘉)의 도적 주포. 온주() 함락(9)

봉상(鳳翔)절도사 정전은 행군사마 이창언이 반란하자 전권 넘겨줌(10)

천평(天平)절도사 조전정이 도적과 싸우다 죽으니 군사들이 조카 조존실을 천평유후로 삼았다(10)

[]맹해와 주온(주전충)이 부평(富平)에서, 하수절도사 탁발사공과 부연절도사 이효창을

격파(111)

정전이 봉주에 이르러 누차 자리를 사양하자 당 조정은 그를 태자소부·분사로 하고

이창언을 봉상절도사로 삼았다.

수창(遂昌)의 도적 노약이 처주()를 함락함(11)

 

강서(江西)의 장수 민욱이 호남(湖南)에서 수자리서고 돌아오다, 호남관찰사 이유 축출하고, 스스로 호남유후가 되었다.(12)

 

감화유후 시부를 감화절도사로 삼았다(12)

하주(夏州)를 정난군(定難軍)으로 하였다.(12) => 당항(黨項)족 서하(西夏)

무릉(武陵) ()족 뇌만이 1천명을 모아 낭주(朗州) 습격하여 자사 최저를 죽이니

당 조정은 뇌만을 낭주()유후로 삼았다. 뇌만은 형주(衡州) 약탈

추계(陬溪)사람 주악이 무리모아 형주(衡州)를 습격하고 자사 서호를 쫓아내니, 당 조정은

주악을 형주자사로 삼았다.

석문(石門)의 만족 향괴 역시 이료(夷獠)족 수천 모아 예주를 공격하여 자사 이자목을 죽이고 스스로 예주자사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