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34,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79, 8. 황소의 난-5)

상 상 2017. 6. 16. 20:52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34,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79, 8. 황소의 난-5)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8. 황소의 난

1) 연표(자치통감 요약을 기초로 작성)

 

 

1) 연표 - 5

내용(자치통감 요약)

879

진해(절서)절도사 고병이 황소를 쳐서 누차 깨뜨리자 황소는 광남으로 갔다(8791)

하동의 군사가 정락(靜樂)에 도착하자 반란을 일으켜 공목관 석유를 죽이자(211)

하동(河東)절도사 최계강이 진양(晋陽)으로 도주했다가(12) 부하들에게 피살됨(214)

천평(天平)절도사 장석이 죽자 아장 최군유가 스스로 지주사라고 하였으나,

치주(淄州)자사 조전정에게 주살됨(3)

검남서천절도사 최안잠이 3천 명을 모아 황두군(黃頭軍)이라고 부르고

1천명의 쇠뇌를 쏠 수 있는 병사를 신기노영(神機弩營)이라 부름(4) :

()은 이로부터 점점 강해졌다.

 

왕덕을 형남절도사에 충임하였다.(4)

하동(河東) 군사들에게 은을 하사하였다. 그런데 하공아가 거느리는 사졸들이 난을 일으켜

진양(晋陽)3개 성에 불을 지르고 공목관 왕경을 잡아 마보사로 호송하였다. 절도사 이간이 위로하고 타이르며 왕경을 목 베자 안정되었다(52)

 

태녕절도사 이계가 왕탁에게 정병 5만을 거느리고 담주에 주둔하여 영북으로 통하는 길 막아 황소를 막게 하였다.(5)

 

황소가 천평절도사와 광주(영남동도)절도사를 요구했다가 전부 거부됨(5)

황소. '솔부솔' 관직받고 화가 나 그날로 광주(廣州)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영남도의 여러 주현(州縣)을 약탈(9)

진해절도사 고병을 회남절도사로, 경원절도사 주보를 진해절도사로, 산남동도행군사마 유거용을

산남동도절도사로 삼았다.(10)

 

황소의 1차 북진

황소가 영남에 있었는데 풍토병으로 사졸들이 3~4할 죽자

그 무리들이 북쪽으로 가서 큰 일을 도모하라고 권고하자 황소는 이를 좇았다.

계주(桂州)에서 뗏목 수십개 만들어 홍수를 타고 상강(湘江)을 따라 형(), ()을 거쳐

담주(潭州)에 도착하였다(1021)

담주를 하루만에 함락시키니 행영부도통 이계는 도주하였으며 황소의 부하장수 상양은

강릉(江陵)을 압박하니 무리가 50만이라고 불렀다.: 황소의 1차 북진

형남절도사 왕탁은 강릉(江陵)1만 군사 밖에 없어, 유한굉을 남기고, 양양(襄陽)으로 갔다.

남은 장수 유한굉은 강릉(江陵)을 약탈하고 불질러, 백성들은 산골짜기로 도주하였으나,

큰 눈이 와 얼은 시체가 들에 가득찼다.

10여일 후 황소가 강릉(江陵)에 입성하였고, 유한굉은 북쪽으로 가 떼도적이 되었다

왕처존을 의무(義武)절도사로, 강전규를 하동(河東)절도사로 삼았다(113)

황소는 강릉에서 양양(襄陽)으로 갔으나, 산남동도절도사 유거용과 강서초토사 조전정에게,

()형문에서 대패, 포로와 전사 7 ~8할 이었다. : 형문(荊門)전투(11)

황소와 상양은 무리를 수습하여 장강을 건너 동으로 달아났는데, 유거용과 조전정은 추격을

중지하여 황소의 세력은 다시 떨치게 되었다.

황소는 악주(鄂州) 외곽을 함락하고 돌아다니며, 강서의 요(), ()과 선흡의 지(), (), ()과 절동의 항() 15개주()를 약탈하니, 그 무리는 20만 명에 이르렀다.(11)

계양(桂陽)의 도적 진언겸이 유주(柳州)를 함락시킴(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