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32,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77, 8. 황소의 난-3)

상 상 2017. 6. 12. 20:26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32,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77, 8. 황소의 난-3)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8. 황소의 난

1) 연표(자치통감 요약을 기초로 작성)

 

 

1) 연표 - 3

내용(자치통감 요약)

877

절서의 해상반란군 왕영이 절동의 온주(溫州)자사 노식을 붙잡으니 노식을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달아나고 붕궤되었다.(1)

이에 우용우대장군 송호를 강남제도초토사로 삼아 여러 도의 군사를 징발하는 것 외에

충무, 선무, 감화 3도와 선(), () 두 주()의 군사를 징발하여 15천 명을 송호의 통제를

받게 하였다.(1)

왕영이 망해진(望海鎭)을 함락시키고 명주()를 약탈하였으며 태주(台州)를 함락시키니

절동과 절서복건의 수군을 출동시켜 토벌케 함(2)

왕선지가 악주(鄂州)를 함락시킴(2)

황소는 운주(鄆州)를 함락시키고, 천평절도사 설숭을 죽임(2)

남조(南詔)는 추룡이 왕이 된 이래 20년간 당의 걱정거리가 되었고 중국은 이 때문에 재물을 소모하고 피폐하였다. 추룡이 죽자 그 아들 법이 섰고 연호는 정명, 승지, 대동이라 하였으며 국호를 학척이라고 하고 대봉인이라고도 불렀다.

법은 단자보 등을 파견하여 화친을 청하니 당이 이에 화의하였다.(2)

이에 당은 여러 도의 군사 70%를 철수시킴

왕영이 절서를 횡행하니, 진해(절서)절도사 배거가 왕영의 무리 주실에게 항복하여

무리 6~7천을 흩어지게 하고, 기계 20여만을 옮겼으며 배와 곡식, 비단도 그만큼 되었다.

그리고 주실을 금오장군으로 삼았다. 이에 왕영의 무리는 흩어졌는데 왕영은 나머지 무리를

모아 동쪽으로 가서 명주(明州)에 이르렀는데, 용교진알사 유거용이 화살로 쏘아 죽이니

나머지 무리는 평정되었다(2)  

왕영의 난 평정


황소가 기주(沂州)를 함락(3)

도적의 무리 유언장이 강서를 노략질 하였다(4)

섬주(陝州)에서 군대가 난을 일으켜 관찰사 최갈을 쫒아냄(4)

황소는 상양과 군대를 합쳐 사아산(查牙山) 주둔(4)

 

급사중 양손을 심괵관찰사로 삼았다(524)

 

유언장이 강주(江州)를 함락시키고 자사 도장을 붙잡아 도장에게 항복한다는 표문을 올리게 하니 유언장을 우감문장군으로 삼고 좌무위장군 유병인을 강주자사로 삼았다. 그러나 유언장은 좆지않고 전함 1백여 척으로 분수(湓水)에 수채(水寨)만들어 여전히 약탈(6)

왕선지와 황소가 송주(宋州)에서 평로, 선무, 충무군을 격파하고, 평로절도사 송위를 포위 하였으나

(721), 당 구원군 7천이 와서 왕선지 군을 2천여 명 죽이자 달아났다.

왕선지가 안주(安州)를 함락(8)

염주(鹽州)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사 왕승안을 축출(8)

왕선지가 수주(隨州)를 함락시키고 자사 최휴정을 붙잡았다.(811)

산남동도절도사 이복이 군사를 파견하여 수주를 구원하려다 패배하자 원병을 요청하니

봉상의 5백기병을 증파하였으나 왕선지는 복주()와 영주(郢州)를 약탈

빈녕절도사 이간이 염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군사들을 평정함(10)

하중(河中)의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절도사 유모 내쫒고 약탈(10)

황소가 기(), ()을 노략질하니 증원유가 이를 쳐서 깨드렸는데 황소는 숨어서 달아났다(10)

 

두경을 하중절도사로 삼았다(111)

초토부사 도감 양관복이 사람을 파견하여 왕선지에게 유세하니 왕선지가 상군장을 파견하여 투항을 요청하였는데 송위는 중간에서 상군장을 잡아갔다.11)

 

상군장을 참수함(12)

황소가 광성(匡城)과 복주(濮州)를 함락시킴.(12)

강주자사 유병인이 단신으로 도적 유언장의 수채(水寨)들어가 유언장을 참수하고 그 무리들을 흩어지게 함(12)

 

왕선지가 형남을 노략질 하였다. 절도사 양지온은 왕선지가 왔다는 말을 허망한 말로 여기고 대비를 하지 않았다. 이때 왕선지는 한수(漢水)가 얕아져 가참(賈塹)에서 물을 건넜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