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35,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80, 8. 황소의 난-6)

상 상 2017. 6. 19. 19:42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35,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80, 8. 황소의 난-6)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8. 황소의 난

1) 연표(자치통감 요약을 기초로 작성)

 

 

1) 연표 - 6

내용(자치통감 요약)

880

사타(沙陀)가 안문관(雁門關)에 들어와서 흔주(忻州)와 대주(代州)를 약탈함(1)

 

사타의 2만여 명이 진양을 압박하고(226), 태곡(太谷)을 함락시켰다.(27),

여주 방어사 제갈상을 파견하여 하동을 구원케 함

하동절도사 강전규는 소홍진을 파견하여 진성(秦城)에서 싸웠으나 패하여 돌아와 참수하였다.

사타는 이미 대북(代北)으로 돌아감

하동절도사 강전규는 도교련사 장언구로 하여금 3천 군사로 추격하게 하였으나

군사들이 백정(百井)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진양(晋陽) 돌아와 하동절도사 강전규를 죽이고

장언구를 도우후로 삼았다(228)

이 소식을 들은 당 조정은 사자를 파견하여 절도사를 죽인 것은 일시적인 것이니

각기 스스로 편안히 하고 다시는 걱정을 하거나 두려워 말라고 하였다.

당 희종. 격구내기에서 져, 좌금오대장군 진경선을 서천절도사로 삼았다(317)

정종당을 하동절도사에 충임하니. 하동을 안정시킴(18)

 

 

고병. 황소군 누차 격파(8803)

 

회남절도사 고병이. 황소군()을 누차 격파, 제도행영도통 되어 7만 의용군 모집(3).

안남(安南)에서 반란, 정해절도사 증곤 도주(3)

 

태복경 이탁을 울, 삭 등주 초토사 행영절도사로 삼았다.(4)

장린이 황소군의 우두머리 왕중패를 항복시키고 누차 황소의 군대를 격파하니

황소는 물러나 강서의 요주(饒州)로 후퇴하였는데, 별장 상굉이 수만명을 가지고

항복. 장린이 요주를 치니 황소는 달아났다.(4)

이 당시 강회(江淮)지역 군사들이 누차 도적 격파했다고 거짓보고

 

양사립 동천절도사로, 우욱을 산남서도절도사로 삼았다(4)

태녕도장 단언모가 형남안무사 송호를 죽였는데 형남감군(환관) 양광복이 송호가 잔혹하여 무리들을 주살하였다고 보고하자 송호를 랑주(狼州)자사로 삼고 장소업을 형남절도사로 삼았다.(4)

 

여주방어사 제갈상을 진무절도사로 삼았다.(54)

형남의 장수로 도적떼된 유한굉의 무리들이 송()과 연()주를 약탈하니,

관동의 여러 군에게 토벌케 함(511)

 

고병의 과욕으로 인한 패전과 황소의 승리(8805)

 

황소가 강서의 신주(信州)에 주둔하였는데, 역병으로 사졸들 대부분 죽음,

장린이 그들을 급히 치니 황소는 금으로 장린에게 뇌물을 먹이고

회남절도사 고병에 투항요청. 이때 소의, 감화, 의무 등의 군이 모두 회남에 도착하였는데

회남절도사 고병은 전공을 탐내여, 구원군 전부를 돌아가게 함

그러자 황소는 고병에게 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싸움을 청하니 고병은 장린으로 하여금 치게 하였는데 군사는 패배하고 장린이 죽으니 황소가 다시 떨쳤다.(5) : 신주(信州) 전투

서천절도사 진경선. 성도(成都)에 부임(68)

황소의 별장이 절서의 목주()·절동의 무주(婺州) 함락(6)

,삭주() 도통 이탁과 노룡절도사 이가거, 토곡혼 혁련탁이 함께 사타족 토벌(618)

 

사타족 이극용은 고문집을 파견하여 삭주(朔州)를 지키게 하고, 무리를 거느리고 이가거를

웅무군(雄武軍)에서 막았다.

혁련탁이 고문집에게 귀국을 종용하니 고문집은 사타족 이우금, 살갈(薩葛), 안강(安慶)족과 함께, 삭주성을 들어 이탁에 투항(6)

황소가 선주(宣州)를 함락시킴.(628)

형남의 반란군 유한굉. 신주()와 광주(光州) 약탈.

 

황소가 채석(采石)에서 장강을 건너 천장(天長)과 육합(六合)을 포위(7) :

황소의 2차 북진

 

회남절도사 고병. 두려워 감히 군사를 내지 못하고 표문을 올려 알리기를

도적 60여만이 천장에 주둔하였는데 신이 있는 성에서 50리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풍병으로 마비되었다고 하면서 다시는 나가 싸우지 않았다.

 

하남의 여러 도에 명령하여 은수(溵水)에 주둔하게 하고,

태녕절도사 제극양은 여주에 주둔시켜, 황소를 대비하게 하였다.(7)

형남의 반란군인 유한굉이 투항하겠다고 하니, 숙주(宿州)자사로 삼았다.(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