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296,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41, 7. 남조의 침공-8)

상 상 2017. 3. 6. 18:19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296,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141, 7. 남조의 침공-8)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1) 연표

 

연표2: 당의 내부모습- 2

내 용(출처: 자치통감- 요약)

856

배휴가 당 선종에게 태자를 세울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하였다(1)

배휴가 병을 핑계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불허하였다(213)

 

회골의 이방력이 가한이 되어 안서에 더부살이를 하니 그가 아장으로 돌아오면 책명을 덧붙이도록하라고 명함

 

위오를 경조윤으로 삼았다(524) 위오의 강직한 일처리를 당 선종이 칭찬하였다

배휴를 선무절도사에 충임하였다(67)

당 선종이 안서에 가서 회골을 위무하도록 하니 사신이 영무에 도착하였는데,

마침 회골 가한이 사신을 파견하여 입공하였으며,

1112일 책서로 올록등라라골몰밀시합구록비가회건 가한으로 하였다.

857

위오를 하양절도사로 삼았다(117). 위모를 서천절도사로 삼았다(213)

 

계동(溪洞)의 만족(.묘족)이 누차 침입하자,

45일 우천우 대장군 송애를 안남, 옹관 선위사로 삼았다

59일 송애를 안남경략사로 삼았다. 용주의 군대가 난을 일으켜 경략사 왕구를 내쫓았다.

627일 송애를 용관 경략사로 삼았다.

성덕(成德)절도사 왕소정이 죽었다(8). 군대 안에서 동생 절도부사 왕소의를 세움.

왕소의를 성덕유후로 삼았다.(814),

 

진성절도사 이승훈을 경원절도사로 삼았다.(105)

 

토번의 추장 상연심이 하, 2주를 가지고 항복하여 무위장군으로 임명하였는데

이승훈이 그들을 유혹하여 봉림관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고 진주 서쪽에 살게 하였다가 다시

상연심을 하, 위도 유착사로 삼아 무리를 인솔하여 그곳에 살게 하였다.(10)

 

당시 하와 위 2()는 기근과 전염병으로 땅이 비어있고 사람이 드물었는데 당인(唐人)들이

들어와 삼천쪽으로 이동하자 토번은 멀리 첩탕(疊宕)의 서쪽으로 숨어 2천리 사이는 적막하였다

왕소의를 성덕절도사로 삼았다.(118)

858

남조(南詔)의 안남(安南) 침공(8581~86610)

안남(安南)도호·경략사 왕식. 교지(交趾)에 침입한 남조군()을 물러가게 함(8581).

 

중서시랑 최신유를 동천절도사로 삼았다.(25). 당 선종. 방사(方士)의 약 먹고 병이 생김(2)

발해왕 대이진이 죽고 220일 그의 동생 대건황이 발해왕이 되었다.

 

유이를 빈년절도사로 삼았다(4)

영남(嶺南)절도 도장 왕령환이 반란을 일으키고 절도사 양발을 가두었다(49),

 

경원절도사 이승훈을 영남절도사로 삼고 인근에 있는 도의 병사를 파견하여 난을 일으킨 자들을

토벌하고 평정하였다(521).

 

호남(湖南)의 군대가 난을 일으켜 도장 석재순 등이 관찰사 한종을 내쫓고 도압아 왕재석을 죽였다.(521)

강서(江西)의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도장 모학이 관찰사 정헌을 내쫓았다.(66)

안남도호 이탁은 만족(蠻族)들의 말과 소를 강제로 사들이면서 한 마리에 소금 한 말을 주었고 또, 만족(蠻族) 추장 두존성을 죽였다. 여러 만족(蠻族)이 남조를 끌어들여 변경을 침입, 노략질 하였다.

봉주(峯州) 칠관동(七綰洞)의 만족추장 이유독은 남조 탁동(拓東)절도사가 유혹하고, 탁동압아로 임명하니 이유독은 드디어 남조의 신하 노릇을 하였다(6)

이로부터 안남에 만족(蠻族)의 우환이 생겼다.

선주(宣州) 도장(都將) 강전태 반란을 일으켜 관찰사 정훈을 내쫓았는데 정훈은 양주로 달아났다

(77),

 

용관에서 보고하기를 도우후 내정이 반란을 모의하자 경략사 송애가 그를 체포하여 목을 베었다고 함.

황두군(黃頭軍) : 충무(忠武)절도사 이승훈이 정예병의 머리에 누런것을 둘러 불림, 이후 다른 군()에서 모방

안남도호·경략사 왕식. 교지(交趾)성 포위한 반란군을 죽임.

왕식이 골짜기의 동굴 점거한 두수징의 무리를 이간시키니 두수징은 달아나다 죽었다(7)

점성(占城.임읍/참파), 진랍(真臘.캄보디아)와 다시 사신을 왕래하였다

회남절도사 최현이 선주의 도적을 토벌하였다고 보고하자 최현을 선흡관찰사로 삼았다(86)

산남동도절도사 서상. 정예병 '포도장(捕盜將)'만들었는데, 호남에서 우두머리를 내쫓게

되자 그들을 토벌하도록 하니, 서상은 포도장 200명을 파견하여 그들을 토벌, 평정하였다(10).

회남절도사 최현이 선주에서 승리하고 강전태와 그의 무리 400여 명의 목을 베었다고 하였다(10)

 

위주를 강서(江西)관찰사로 삼고 인근에 있는 도의 군사를 발동하여 강서 반란군 우두머리 모학을 토벌하도록 하였다(10)

 

위주가 보고하기를 홍주에서 승리하고 모학과 그의 무리 500여명을 베었다고 하였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