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책봉의 진실(45) - 끝

상 상 2017. 2. 13. 17:43

책봉의 진실(45) -

 

<책봉이 있었던 회홀의 가한>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회홀이 강할 때는 당나라가 회홀의 가한을 책봉하였다.

또한 토번이 강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회홀을 동맹으로 끌어들이면서 회홀의 가한을 책봉하였다. 이에대한 대가는 혹독하였다. 회홀은 당나라에서 마음대로 약탈하고 방화하여

불이 10일이 지나도 꺼지지 않은 적도 있었다. 또한 당 황제의 친딸을 시집보내야만 했는데

그 공주가 울면서 나라의 일이 중요하니 죽어도 또한 아무런 한이 없습니다.”라고 하니 황제도 울면서 돌아오기도 하였다. 또 회홀 사람이 장안에서 온갖 횡포를 부려도 제지할 수 없었으며 회홀의 가한을 책봉하면서 재물을 20수레나 주었다. 그리고도 다음해에 또 비단 50()을 주었고, 또 다음해에는 비단 20만 필 그후 2년 뒤에는 비단 23만 필을 회흘에게 주어야만 했다.

 

오히려 회홀이 약화되어 멸망단계에 이르게 되자 당나라는 회홀의 가한을 책봉하지 않았다.

 

또한, 책봉이 행해지는 일반적인 순서를 보면,

회홀에서 가한이 죽고 새로운 가한이 즉위하여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며 책봉을 요구하면

당은 회홀에 사신을 보내 죽은 가한을 조문하고 새로운 가한을 책봉 하는 순서를 거친다.

(이러한 순서는 우리역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므로 반드시 기억해야한다)

 

이러한 것은 회홀에게 강자의 권리처럼 여겨졌으며 당의 입장에서는 약자의 의무처럼 행해 진 것이다. 그래서 회홀이 약해지자 회홀에서는 책봉을 요구할 수 없었고 당에서는 회홀이 약해졌을 때 책봉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회홀의 입장에서 책봉이라는 형식을 빌어 당으로부터 많은 재물을 합법적으로 빼앗을 수 있는 방법이었으며, 당나라의 입장에서는 책봉이라는 형식으로 회홀에게 많은 재물을 빼앗기는 괴로운 일이었다. 따라서 회홀이 강할 때 책봉이 당나라의 의무로 통했고 회홀이 약해졌을 때는 당은 책봉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회홀이 강할 때는 책봉을 하고 회홀이 약할 때는 책봉을 하지 않았다는 것과

회홀에게 있어 책봉이라는 것은 그러한 형식을 빌어 당나라로부터 많은 재물을 합법적으로 빼앗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

회홀의 새 가한이 즉위한 후 당에게 책봉을 요구하면 당은 의무적으로 책봉했어야 했던 점

등을 볼 때 책봉이라는 것이 당나라의 속국이 된 것이라든가 당의 지배통치 하에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임이 명명백백하다.

책봉과 종속국, 책봉과 지배통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책봉이 당나라가 약한 나라를 제압해서 종속관계를 맺거나

당의 지배 통치관계를 맺을 때 쓴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 이러한 이야기는 책봉을 하였다는 것이 당의 하위국으로써 당의 종속국이 되었다거나 당의 지배통치 하에 들어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