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책봉의 진실(42)

상 상 2017. 2. 6. 18:15

책봉의 진실(42)

 

<책봉이 있었던 회홀의 가한>- 6

가한

있었던 일

12

소례가한

당 경종이 즉위한 해(825)에 숭덕가한이 죽고 5월에 그의 동생 갈살특륵이 즉위하자 사신을 보내 애등리라골몰밀시합비가소례가한으로 책봉하고 재물을 20수레나 주었다.(825)

 

()문종 초(826)에 또 말 값으로 비단 50()을 주었다.

 

사신에게 명령해 비단 20만 필을 홍려시에 운반시켜 회골에게 주어 말 값으로 충당하게 했다.(827)

 

829년 정월 사신이 비단 23만 필을 회흘에게 주어 말 값으로 충당하게 했다

13

창신가한=

살특근가한

832년 소례가한이 부하에게 살해되고 조카인 호특륵이 즉위하자 사자가 와 보고했다.

 

이듬해(833)에 좌효위장군 [황성유수(皇城留守)] 당홍실과 사택왕용(嗣澤王溶)이 부절을 갖고 [새로 즉위한 가한을] 애등리라골몰밀시합구록비가창신가한(13대 가한)이라고 책봉했다.

14

개삽가한

회골의 재상 굴라물이 반란을 일으키고 사타(沙陀)를 끌어들여 가한을 공격해 [창신]가한이 자살하자 국인(國人)들이 개삽특륵을 세워 가한으로 삼았다. 바야흐로 이해 기근이 들어 마침내 전염병이 돌았고 더욱이 눈까지 많이 내려 양과 말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중국에] 책봉을 요구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당은 회골의 가한을 책봉하지 않았음(839)

 

회골의 장군 구록말하가 굴라물에게 원한을 품고 도망가 힐알사가 이끄는 10만 기를 끌어들여 회골성(迴鶻城)을 격파한 다음 개삽[특근]을 죽이고 굴라물을 베며 [그 땅을] 태워 모두 없어지게 되니 회골이 여러 족속에게로 도망갔다. 회골의 ()상 삽직(馺職)이 외조카 방특근과 그의 아들 녹병갈분 등 형제 5명과 15부를 이끌고 서쪽의 갈라록에게 도망갔고, 한 갈래는 토번으로, 한 갈래는 안서로 투항했다.(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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