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봉의 진실(29) 개삽가한 때 드디어 내란이 외세를 불러들여 회홀이 멸망하는 길로 들어선다. 다음의 자료를 보자. 년 | 내 용 | 840 | 장군 구록말하가 굴라물에게 원한을 품고 도망가 힐알사가 이끄는 10만 기를 끌어들여 회골성(迴鶻城)을 격파한 다음 개삽[특근]을 죽이고 굴라물을 베며 [그 땅을] 태워 모두 없어지게 되니 회골이 여러 족속에게로 도망갔다. 회골의 (재)상 삽직(馺職)이 외조카 방특근과 그의 아들 녹병갈분 등 형제 5명과 15부를 이끌고 서쪽의 갈라록에게 도망갔고, 한 갈래는 토번으로, 한 갈래는 안서로 투항했다. <구당서 회홀전> (당)무종(武宗:15대 군주)이 즉위해(840년) 사택왕용을 보내 [조문을] 알려서야 바로 그 나라가 어지럽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거장(渠長: 장군, 구당서) 구록막하와 힐알사가 만나 기병 10만을 이끌고 회골성(回鶻城: 회골의 수도)을 공격해 (개삽)가한을 죽이고 굴라물을 베고 그 아장을 태우자 여러 부락이 무너지고 흩어지게 되었고, 그 (재)상 삽직과 방특륵이 15부락을 이끌고 갈라록으로 도망갔으며 나머지 백성들은 토번과 안서(安西)로 들어갔다. <신당서 회홀전> 당 문종 개성5년(840년) 9월, 애초에 이오의 서쪽과 언기의 북쪽에 할힐사 부락이 있었는데 바로 옛날 견곤이고, 당 초기의 결골이었으나 후대에 할힐사로 바꾸어 불렀고 건원(숙종때)에 회골에게 격파되자 이로부터 떨어지고 막혀서 중국과 왕래하지 않았다. 그들의 군장은 아열이라고 불렀으며 청산에 아장을 세웠는데 회골의 아장과는 낙타로 40일 가는 거리였다. 그 사람들은 사납고 용맹하였으며 토번과 회골이 항상 그들에게 뇌물을 보내고 관호(官號)를 빌렸다. 회골이 이미 쇠약해지고 나자 아열은 비로소 가한이라고 스스로 칭하였다. 회골에서 상국(相國)을 파견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그를 치도록 하였는데 전쟁을 계속한지 20여 년이었으나 자주 할힐사에 패하니 회골을 욕하며 말하였다. “너의 운이 다하였으니 나는 반드시 너의 금장을 빼앗겠다!” 금장이라는 것은 회골 가한이 거주하는 장막이다. 굴라물이 창신가한을 죽이고 개삽을 추대하니 회골의 별장인 구록막하가 할힐사의 10만 기병을 이끌고 회골을 공격하여 그를 대파하고 개삽과 굴라물을 죽이고 그의 아장을 불살라서 다 없애니 회골의 여러 부락들은 도망하고 흩어졌다. 그 재상인 삽직과 특륵인 약라갈방 등 열다섯개 부는 서쪽 갈라록으로 달아났는데, 한 가닥은 토번으로 달아나고, 한 가닥은 안서로 달아났다. (개삽)가한의 형제 올몰사 등은 그의 재상인 적심, 복고, 특륵인 나힐철과 각기 그의 무리를 인솔하고 천덕의 요새 아래 이르러서 여러 오랑캐들에게 가서 곡식을 무역하면서 또 내부적으로 귀부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자치통감> |
굴라물이 창신가한을 공격하여 자살케 하고, 개삽가한을 즉위하게 하자 이에 구록말하(구록막하)가 원한을 품고 힐할사의 10만 기병을 끌어들여 조국 회홀을 격파하고 개삽가한과 굴라물을 죽이니(개삽가한은 재위 2년만에 살해당한 것임) 마침내 회홀은 파괴되고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내분이 내란을 가져오고 내란이 외세를 불러들여 회홀이 멸망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회홀의 백성들이 어디로 흩어졌는지 살펴보자. 첫째 갈래: 그 재상인 삽직과 특륵인 약라갈방 등 15개 부는 서쪽 갈라록으로 달아났는데, 한 가닥은 토번으로 달아나고, 한 가닥은 안서로 달아났다.(서쪽으로 간 부락-15개) 둘째 갈래: (개삽)가한의 형제 올몰사 등은 그의 재상인 적심, 복고, 특륵인 나힐철과 각기 그의 무리를 인솔하고 천덕의 요새 아래 이르러서 여러 오랑캐들에게 가서 곡식을 무역하면서 또 내부적으로 귀부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셋째 갈래: 아래 15대 오개가한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