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봉의 진실(28)
10) 14대 개삽가한
※ 이때부터 회홀은 내분이 내란을 가져오고 내란은 외세를 끌어들여 회홀이 멸망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이 과정이 좀 복잡하니 신경써서 관련 사료를 잘 봐야함.
위의 3가지 사료에 중에서 자치통감이 이때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이때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3대 창신가한은 회홀의 재상 안윤합과 특륵 시혁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모의하자 그들을 죽였다. 이때 회홀의 또다른 재상 굴라물이 군사를 거느리고 밖에 있었는데 말 300필을 사타의 주야적심에게 뇌물로 주고 그와 함께 창신가한을 공격하였다. 내분이 내란을 가져온 것이다. 여기서 창신가한이 패하자 자살하니 회홀사람들이 개삽 특륵을 가한으로 삼은 것이다. 이 사람이 바로 회홀의 14대 가한인 개삽가한이다.
이때『이해에 기근이 들어 마침내 전염병이 돌았고 더욱이 눈까지 많이 내려 양과 말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중국에] 책봉을 요구하지 못했다.』는 기록이 눈에 띄인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여태까지 책봉을 요구한 것은 회홀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회홀의 국력이 강할 때 책봉을 요구하였다는 점이다.
즉, 당이 스스로 책봉을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회홀의 요구에 의해 당이 책봉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회홀의 국력이 강할 때 책봉을 요구한 것이고 회홀의 국력이 약해지면 책봉을 요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회홀의 새로운 가한이 자기가 가한으로 즉위하였음을 당나라에 통보하여 책봉해달라고 요구하면 당은 회홀의 강요에 따라 책봉을 했다는 말이다. 즉, 회홀에서 새로운 가한이 자기가 가한으로 즉위하였음을 당나라에 통보해 주지 않으면 당나라에서는 회홀의 사정을 모른다는 말이다. 그에따라 책봉같은 것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 증거가 아래 신당서 회홀전에 나오는 『(당)무종(武宗:15대 군주)이 즉위해(840년) 사택왕용을 보내 [조문을] 알려서야 바로 그 나라가 어지럽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라는 기록이다.
그러면 회홀은 왜 책립을 강요한 것인가?
그것은 12대 소례가한의 예에서 보았듯이 회홀이 당나라에서 재물을 뜯어내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책립이라는 것이 종속관계나 지배통치 관계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말이며, 책립이란 그저 당나라에서 재물을 갈취하기 위한 구실일 뿐이라는 말이다.
이와같은 이유로 회홀의 14대 가한인 개삽가한은 당나라로부터 책립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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