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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남제서[南齊書] 동남이열전(東南夷列傳)
차 례
1. 고구려(高句麗) 2. 백제(百濟) 3. 가라(加羅)
○ 남제서(南齊書) 동남이열전(東南夷列傳)
1. ○ 고려(高[구(句)]麗)
1) ○ 동이(東夷) 고려국(高[구(句)]麗國)은 서쪽으로 위(魏) 오랑캐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송(宋)나라 말(末)에 고려왕(高麗王) 낙랑공(樂浪公) 고련(高璉)을 사지절(使持節) 산기상시(散騎常侍) 도독영평이주(都督營·平二洲) 제군사(諸軍事) 거기장군(車騎大將軍)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로 삼았다. 태조(太祖) 건원(建元) 원년(A.D.479; 高句麗 長壽王 67)에는 [련(璉)의 장군(將軍)]호(號)를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으로 올려 주었다.
3년(A.D.481; 高句麗 長壽王 69)에 사신을 보내 와 공물(貢物)을 바쳤고, 배로 바다를 건너오는 사신의 왕래가 항상 있었다. [그들은] 위(魏) 오랑캐에게도 사신을 보냈지만 세력이 강성하여 [남제(南齊)의] 제어를 받지 않았다. [위(魏)]오랑캐는 여러 나라의 사신 관저를 두었는데, 제(齊)나라 사신의 관저를 제일 큰 규모로 하고 고[구]려는 그 다음가게 하였다.
2) ○ 영명(永明) 7년(A.D.489; 高句麗 長壽王 77)에 평남참군(平南參軍) 안유명(顔幼明)과 용종복사(冗從僕射) 유사효(劉思斅)가 [위(魏)] 오랑캐에 사신으로 갔더니, 오랑캐의 원회(元會)에서 고[구]려의 사신과 나란히 앉게 하였다.
이에 유명(幼明)이 위조(僞朝: 북위-北魏)의 주객랑(主客郞) 배숙령(裵叔令)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은 중국 임금의 명을 받들고 경의 나라에 왔소. 우리나라와 겨룰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위(魏)가 있을 뿐이오. 다른 외방의 오랑캐는 우리 기마(騎馬)가 일으키는 먼지조차 볼 수 없소. 하물며 동이(東夷)의 조그마한 맥국(貊國)은 우리 조정을 신하로서 섬기고 있는데, 오늘 감히 우리와 나란히 서게 할 수 있소?” 하였다. 사효(思斅)도 위조(僞朝)의 남부상서(南部尙書) 이사충(李思沖)에게, “우리 성조(聖朝)는 위(魏)나라의 사신을 대우함에 있어 작은 나라와 나란히 서게 한 적이 없음을 그대도 응당 알 것이오.” 라고 하자, 사충(思沖)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그렇소. 단지 정사(正使)와 부사(副使)가 전(殿)에 오르지 못하였을 뿐이지, 이 자리도 매우 높은 자리니 이것으로 갚음이 될 것이오.”
사효(思斅)가 말했다. “지난 날 이도고(李道固)가 사신으로 왔을 때는 정말 예모(禮貌)에 거리가 있었소. 위(魏)나라의 사신이 반드시 의관을 갖추고 온다면 어찌 쫓겨나는 일이 있겠소?” 유명(幼明)이 또 위(魏)나라 임금에게 말하였다. “두 나라가 버금가기는 오직 제(齊)나라와 위(魏)나라 뿐인데, 변경의 작은 오랑캐가 감히 신의 발꿈치를 밟고 있습니다.”
3) ○ 고려인(高(구[句)]麗人)의 습속은 좁은 바지를 입고, 관(冠)으로는 일량(一梁)의 절풍(折風)을 쓰는데, 이를 책(幘)이라 한다. 오경(五經)을 읽을 줄 안다. [고구려의] 사신이 국도(國都)에 있을 때 중서랑(中書郞) 왕융(王融)이 희롱하기를, “입은 것이 적합하지 않는 것은 몸의 재앙이라는 말이 있는데, 머리 위에 얹혀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하니, [고구려 사신이,] “이것은 바로 옛날 고깔(변弁)의 잔영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고련(高璉)은 나이 백여세에 졸(卒)하였다.
4) ○ 융창(隆昌) 원년(A.D.493; 高句麗 文咨王 2)에 고(高)[구(句)]려왕(麗王) 낙랑공(樂浪公) 고운(高雲)을 사지절 산기상시 도둑영평이주제군사 정동대장군 고려왕 낙랑공(使持節 散騎常侍 都督營·平二州諸軍事 征東大將軍 高廲王 樂浪公)으로 삼았다. 건무(建武) 3년(A.D.496; 高句麗 文咨王 5)[이하 원문 궐락(闕落)]
2. ○ 백제(百濟)
1)○[ …… 모대(牟大)가 표문(表文)을 올려 말하였다.] “공에 대하여 보답하고 부지런히 힘쓴 것을 위로하는 일은 실로 그 명성과 공업을 보존시키는 것입니다. 가행(假行)[註002] 영삭장군(寧朔將軍)[註003] 신(臣) 저근(姐瑾) 등 4인은 충성과 힘을 다하여 나라의 환란 을 쓸어 없앴으니 그 뜻의 굳셈과 과감함이 명장(名將)의 등급에 들 만하며 나라의 한성(扞城)이요 사직의 튼튼한 울타리라 할 만 합니다. 그들의 노고를 헤아리고 공을 논하면 환히 드러나는 지위에 있어야 마땅하므로 지금 전례에 따라 외람되이 임시 행직(行職)을 주었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 은혜를 베푸시어 임시로 내린 관직을 정식으로 인정하여 주십시오.
영삭장군(寧朔將軍) 면중(面中)[註004]왕(王) 저근(姐瑾)은 정치를 두루 잘 보좌하였고 무공 또한 뛰어났으니 이제 가행관군장군(假行冠軍將軍) 도장군(都將軍)[註005] 도한(都漢)[註006]왕(王)이라 하였고,
건위장군(建威將軍) 팔중(八中)[註007]후(侯) 여고(餘古)는 젊을 때부터 임금을 도와 충성과 공로가 진작 드러났으므로 이제 가행녕삭장군(假行寧朔將軍) 아착(阿錯)[註008]왕(王)이라 하였고,
건위장군(建威將軍) 여력(餘歷)은 천성이 충성되고 정성스러워 문무(文武)가 함께 두드러졌으므로 이제 가행용양장군(假行龍驤將軍) 매로(邁盧)[註009]왕(王)이라 하였으며,
광무장군(廣武將軍) 여고(餘固)는 정치에 공로가 있고 국정(國政)을 빛내고 드날렸으므로 이제 가행건위장군(假行建威將軍) 불사(弗斯)[註010]후(侯)라 하였습니다.”
2)○ 모대(牟大)[註011]가 또 다시 표문을 올려, “신(臣)이 파견한 행건위장군(行建威將軍) 광양태수(廣陽太守) 겸(兼) 장사(長史)[註012] 신(臣) 고달(高達)과 행건위장군조선태수(行建威將軍朝鮮太守) 겸(兼) 사마(司馬) 신(臣) 양무(楊茂)와 행선위장군(行宣威將軍) 겸(兼) 참군(參軍) 신(臣) 회매(會邁) 등 3인은 지조와 행동이 깨끗하고 밝으며, 충성과 정성이 일찍부터 드러났습니다. 지난 태시(泰始) 연간(A.D.465~471; 百濟 개로왕-蓋鹵王 11~17)에는 나란히 송조(宋朝)에 사신으로 갔었고,[註013] 지금은 신(臣)의 사신의 임무를 맡아 험한 파도를 무릅쓰고 바다를 건넜으니, 그 지극한 공로를 따지면 벼슬이 올라야 마땅하므로 선례에 따라 각자 가행직(假行職)을 내렸습니다. 천자의 은혜는 신령하고 아름다워 만리 밖까지 미치는 법인데, 하물며 몸소 천자(天子)의 뜰을 밟으면서 은혜를 입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디 바라옵건대, 특별히 살피시어 정식으로 관작을 제수하여 주십시오.
달(達)은 변경(邊境)에서의 공적이 일찍부터 뚜렷하고 공무(公務)에 부지런하였으므로 이제 가행용양장군(假行龍驤將軍) 대방태수(帶方太守)라 하였고, 무(茂)는 마음과 행동이 맑고 한결 같으며 공무(公務)를 항상 놓지 않았으므로 이제 가행건위장군(假行建威將軍) 광릉태수(廣陵太守)라 하였으며, 매(邁)는 생각이 찬찬하고 빈틈이 없어서 여러 번 근무(勤務)의 성과를 나타내었으므로 이제 가행광무장군(假行廣武將軍) 청하태수(淸河太守)라 하였습니다.” 라고 하니, 이를 허락한다는 조서(詔書)를 내림과 더불어 장군(將軍)의 호(號)를 사(賜)하고[註014] 태수(太守)의 관직을 제수하였다.
[또한 백제왕(百濟王)에 대해서는] 사지절 도독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使持節 都督百濟諸軍事 鎭東大將軍)으로 삼고, 알자복사(謁者僕射)[註015]를 겸한 손부(孫副)를 사신으로 보내어 [모(牟)]대(大)를 책명(策命)으로 망조부(亡祖父) 모도(牟都)[註016]를 이어서 백제왕으로 삼았다. [이어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아아! 그대들은 충성심과 부지런함을 대대로 이어 받아서 그 정성이 먼 곳까지 드러나니, 바닷길이 고요하고 맑아져 공물바치는 것이 조금도 끊이지 않았소. 상전(常典)에 따라 귀한 관작을 계승케 하노니, 가서 삼갈지어다! 삼가 아름다운 사업을 지켜야 할 것이니 어찌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행도독 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백제왕 모대(行都督 百濟諸軍事 鎭東大將軍 百濟王 牟大)에게 제서(制書)[註017]를 내리노니, 이제 [모(牟)]대(大)로서 그의 조부(祖父) 모도(牟都)의 작위를 승습케 하여 백제왕(百濟王)으로 삼겠소. 왕위에 오름에 장수(章綬)[註018]등 다섯과 동호부(銅虎符) · 죽사부(竹使符)[註019] 넷을 주노니 왕이 이를 공경하여 받으면 그 또한 아름답지 아니한가!”[註020]
이 해에 [북(北)]위(魏) 오랑캐가 또다시 기병(騎兵)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百濟)를 공격하여[註021] 그 지경(地境)에 들어가니, 모대(牟大)가 장군 사법명(沙法名) ·찬수류(賛首流)· 해례곤(解禮昆)· 목간나(木干那)를 파견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북위(北魏)] 오랑캐군을 기습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
3)○ 건무(建武) 2년(A.D.495; 百濟 東城王 17)에 모대(牟大)가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신(臣)은 봉작(封爵)을 받은 이래 대대로 조정(朝廷)의 영예를 입었고, 더욱이 절부(節符)와 부월(斧鉞)을 받아 모든 변방을 평정하였습니다. 앞서 저근(姐瑾) 등이 모두 영광스러운 관작을 제수받아 신민이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지난 경오년(庚午年)에는 험윤(獫狁)[註022]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깊숙히 쳐들어 왔습니다.
신(臣)이 사법명(沙法名) 등을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역습케 하여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니, 흉리(匈梨)[註023]가 당황하여 마치 바닷물이 들끓듯 붕괴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타서 쫓아가 베니 시체가 들을 붉게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예기(銳氣)가 꺾이어 고래처럼 사납던 것이 그 흉포함을 감추었습니다. 지금 천하가 조용해진 것은 실상 [사법(沙法)]명(名) 등의 꾀이오니 그 공훈을 찾아 마땅히 표창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사법명(沙法名)을 가행정로장군(假行征虜將軍) 매라(邁羅)[註024]왕(王)으로, 찬수류(賛首流)를 가행안국장군(假行安國將軍) 벽중(辟中)[註025]왕(王)으로, 해례곤(解禮昆)을 가행무위장군(假行武威將軍) 불중(弗中)[註026]후(侯)로 삼고, 목간나(木干那)는 과거에 군공(軍功)이 있는 데다 또 성문(城門)과 선박을 때려 부수었으므로 행광위장군(行廣威將軍) 면중(面中)[註027]후(侯)로 삼았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 천은을 베푸시어 특별히 관작을 제수하여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4)○ 또 표문을 올리기를, “신이 사신으로 보낸 행용양장군(行龍驤將軍) 낙랑태수(樂浪太守) 겸(兼) 장사(長史) 신(臣) 모유(慕遺)와 행건무장군(行建武將軍) 성양태수(城陽太守) 겸(兼) 사마(司馬) 신(臣) 왕무(王茂)와 겸(兼) 참군(參軍) 행진무장군(行振武將軍) 조선태수(朝鮮太守) 신(臣) 장새(張塞)와 행양무장군(行揚武將軍) 진명(陳明)은 관직에 있어 사사로운 것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공무에만 힘써,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내던지고 어려운 일을 당해서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습니다. 지금 신의 사신의 임무를 맡아 험한 파도를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 그의 지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실로 [그들의] 관작을 올려 주어야 마땅하므로 각각 가행직(假行職)에 임명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조(聖朝)에서는 특별히 정식으로 관직을 제수하여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이에 조서를 내려 허락함과 아울러 [장(將)]군(軍)의 호(號)를 내려 주었다.
3. ○ 가라(加羅) ○ 가라(加羅)[註001]
1)○가라국(加羅國)은 삼한(三韓)의 한 종족(種族)이다. [註002] 건원(建元) 원년(A.D.479; 新羅 炤知王1) 국왕 하지(荷知)[註003]가 사신을 보내와 방물을 바쳤다. 이에 조서(詔書)를 내렸다. “널리 헤아려 비로소 [조정에] 올라오니, 멀리 있는 이(夷)가 두루 덕(德)에 감화됨이라. 가라왕(加羅王) 하지(荷知)는 먼 동쪽 바다 밖에서 폐백을 받들고 관문을 두드렸으니, 보국장군(輔國將軍) 본국왕(本國王)의 벼슬을 제수함이 합당하다.” ===================================================================================== 1. 출처: 중국정사 조선전 http://db.history.go.kr/url.jsp?ID=jo
1) 백제전에 매우 중요한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여러명의 왕과 제후, 태수가 있다는 기록과 북위를 물리쳤다는 자세한 기록입니다.
면중왕(面中王) 저근(姐瑾)은 도한왕(都漢王)이라 하였고, 팔중후(八中侯) 여고(餘古)는 아착왕(阿錯王)이라 하였고, 건위장군(建威將軍) 여력(餘歷)은 매로왕(邁盧王)이라 하였으며, 광무장군(廣武將軍) 여고(餘固)는 불사후(弗斯侯)라 하였습니다.”
광양태수(廣陽太守) 고달(高達), 조선태수(朝鮮太守) 양무(楊茂), 신(臣) 회매(會邁) 등 3인은 달(達)은 대방태수(帶方太守)라 하였고, 무(茂)는 광릉태수(廣陵太守)라 하였으며, 매(邁)는 청하태수(淸河太守)라 하였습니다.
[북(北)]위(魏)가 백제(百濟)를 공격하니, 모대(牟大)가 사법명(沙法名)· 찬수류(賛首流)· 해례곤(解禮昆)· 목간나(木干那)를 파견하여 [북위(北魏)]군을 크게 무찔렀다.
(그 공적에 대한 상으로) 사법명(沙法名)을 매라왕(邁羅王)으로, 찬수류(賛首流)를 벽중왕(辟中王)으로, 해례곤(解禮昆)을 불중후(弗中侯)로 삼고, 목간나(木干那)는 면중후(面中侯)로 삼았습니다.
낙랑태수(樂浪太守) 신(臣) 모유(慕遺) 성양태수(城陽太守) 신(臣) 왕무(王茂) 조선태수(朝鮮太守) 신(臣) 장새(張塞) 행양무장군(行揚武將軍) 진명(陳明)
2) 가라왕(加羅王) 하지(荷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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