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제18대 고국양왕- 2

상 상 2012. 1. 3. 20:04

3 년 (AD 386) : 봄 정월에 왕자 담덕을 태자로 삼았다.

[번역문]

3년(386) 봄 정월에 왕자 담덕(談德)을 태자로 삼았다.

가을 8월에 왕은 군대를 내어 남쪽으로 백제를 정벌하였다.

겨울 10월에 복숭아와 오얏꽃이 피었다. 소가 말을 낳았는데, 발이 여덟 개이고 꼬리가 두 개였다.

 

5 년 (AD 388) : 여름 4월에 크게 가물었다.

[번역문]

5년(388) 여름 4월에 크게 가물었다. 가을 8월에 누리(메뚜기떼)의 재해가 있었다.

 

6 년 (AD 389) : 기근이 들자 왕은 창고를 열어

[번역문]

6년(389) 봄에 기근이 들어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으므로, 왕은 창고를 열어 먹을 것을 주었다.

가을 9월에 백제가 침입해 와서 남쪽 변경 부락을 약탈하고 돌아갔다.

 

7 년 (AD 390) : 백제가 도압성을 쳐부수고 200명을 사로잡아

[번역문]

7년(390) 가을 9월에 백제가 달솔(達率) 진가모(眞嘉謨)를 보내 도압성(都押城)을 쳐부수고 200명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8 년 (AD 391) : 봄에 사신을 신라에 보내 우호를 약속

[번역문]

8년(391) 봄에 사신을 신라에 보내 우호를 약속하니, 신라왕이 조카 실성(實聖)을 인질로 보내었다.

3월에 교서를 내려 불교를 믿어 복을 구하게 하였다.

담당 관청에 명하여 나라의 사직[國社]을 세우고 종묘(宗廟)를 수리하게 하였다.

여름 5월에 왕이 죽었다. 고국양(故國壤)에 장사지내고 왕호를 고국양왕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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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3년(386) 봄 정월에 왕자 담덕(談德)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바로 이‘담덕(談德)’이 광개토대왕입니다

 

2) 고국양왕 3년(386) 백제와의 싸움이 계속됩니다. 이것은 고구려가 서울을 평양으로 옮긴 뒤부터 생긴 일입니다.

 

3) 6년(389) 봄에 기근이 들어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으므로, 왕은 창고를 열어 먹을 것을 줍니다.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참상이 벌어진 것은 고구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4) 고국양왕 8년(391년) 신라와 우호 조약을 맺으니 신라왕이 조카 실성(實聖)을 인질로 보냅니다.

   (이 기사는 광개토대왕 비문 해석, 신묘년<391년> 기사와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때의 신라왕은 내물 이사금(내물왕-17대)이고 실성이라는 사람은 나중에 임금이 된 실성 이사금(실성왕-18대)입니다.

※신라에서는 이때 왕을 이사금 이라고 하였음.

 

5) 고국양왕 8년(391)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수리하게 하였다는 기사에 대하여...

이때 고구려를 비롯한 중국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여 국력을 신장시키는 풍조가 있었으므로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수리했다고 함은 그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지식, 지식체계, 제도, 법, 국가체계를 잡는 방법 같은 것은 중국밖에 없었으므로 체계화된 중국 제도를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받아들인 것임)

 

6) 고국양왕 역시 장사지낸 곳-고국양(故國壤)의 이름을 왕호로 삼고 있습니다.

   장사지낸 곳의 이름을 따서 왕호를 삼는 것은 제4대 민중왕 때부터 시작되어, 5대 모본왕, 9대 고국천왕으로 점철 되다가

12대 중천왕에서 부터는 13대 서천왕, 14대 봉상왕, 15대 미천왕, 16대 고국원왕, 17대 소수림왕, 18대 고국양왕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