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년 (AD 391) : 광개토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광개토왕(廣開土王)의 이름은 담덕(談德)이고 고국양왕의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기개가 웅대하고 활달한 뜻이 있었다.
고국양왕이 [재위] 3년에 태자로 삼았고, 8년에 왕이 죽자 태자가 즉위하였다.
가을 7월에 남쪽으로 백제를 정벌하여 10성을 함락시켰다.
9월에 북쪽으로 거란을 정벌하고 남녀 500명을 사로잡았으며,
또 [거란에] 잡혀갔던 본국 백성 1만 명을 불러 타일러 데리고 돌아왔다.
겨울 10월에 백제 관미성(關彌城)을 쳐서 함락시켰다.
그 성은 사면이 깎은 듯 가파르고 바닷물에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왕은 군사를 일곱 방향으로 나누어 공격한 지 20일만에야 함락시켰다.
2 년 (AD 392) : 가을 8월에 백제가 남쪽 변경을 침략
[번역문]
2년(392) 가을 8월에 백제가 남쪽 변경을 침략해 왔으므로, 장수에게 명하여 막게 하였다. 아홉 개의 절을 평양에 창건하였다.
3 년 (AD 393) : 백제가 침략하자 맞아 쳐서 이겼다.
[번역문]
3년(393) 가을 7월에 백제가 침략해 왔는데, 왕은 정예기병 5천 명을 거느리고 맞아 쳐서 이겼다.
나머지 적들이 밤에 도주하였다.
8월에 나라 남쪽에 일곱 성을 쌓아 백제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4 년 (AD 394) : 왕은 패수가에서 백제와 싸워 크게 이기고
[번역문]
4년(394) 가을 8월에 왕은 패수(浿水) 가에서 백제와 싸워 크게 이기고 8천여 명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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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광개토왕은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광개토대왕으로 알고 있으나 삼국사기를 보면 대왕은 아니고 그냥 왕입니다.
고구려에 대왕은 세 분 뿐입니다.
태조대왕(6대-이름 궁, 어릴 때 이름은 어수), 차대왕(7대-이름 수성), 신대왕(8대-이름 백고)
그러나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길림성 집안시集安市에 있음)에 나와 있는 왕호를 보면 태왕(太王)입니다.
비문(碑文)에 나와 있는 광개토왕의 정식명칭은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입니다.
2) 북쪽으로 거란을 정벌하고 남쪽으로 백제와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3) 광개토왕에 대한 것은 광개토왕비에 쓰여진 내용을 반드시 봐야합니다.
(삼국사기의 광개토왕 기록을 다 올린 다음에 광개토왕비문을 올리겠습니다)
4) 광개토왕 본기는 3회에 걸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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