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 본기- 1)

상 상 2012. 1. 4. 19:01

0 년 (AD 391) : 광개토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광개토왕(廣開土王)의 이름은 담덕(談德)이고 고국양왕의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기개가 웅대하고 활달한 뜻이 있었다.

고국양왕이 [재위] 3년에 태자로 삼았고, 8년에 왕이 죽자 태자가 즉위하였다.

 

가을 7월에 남쪽으로 백제를 정벌하여 10성을 함락시켰다.

9월에 북쪽으로 거란을 정벌하고 남녀 500명을 사로잡았으며,

또 [거란에] 잡혀갔던 본국 백성 1만 명을 불러 타일러 데리고 돌아왔다.

 

겨울 10월에 백제 관미성(關彌城)을 쳐서 함락시켰다.

그 성은 사면이 깎은 듯 가파르고 바닷물에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왕은 군사를 일곱 방향으로 나누어 공격한 지 20일만에야 함락시켰다.

 

2 년 (AD 392) : 가을 8월에 백제가 남쪽 변경을 침략

[번역문]

2년(392) 가을 8월에 백제가 남쪽 변경을 침략해 왔으므로, 장수에게 명하여 막게 하였다. 아홉 개의 절을 평양에 창건하였다.

 

3 년 (AD 393) : 백제가 침략하자 맞아 쳐서 이겼다.

[번역문]

3년(393) 가을 7월에 백제가 침략해 왔는데, 왕은 정예기병 5천 명을 거느리고 맞아 쳐서 이겼다.

나머지 적들이 밤에 도주하였다.

8월에 나라 남쪽에 일곱 성을 쌓아 백제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4 년 (AD 394) : 왕은 패수가에서 백제와 싸워 크게 이기고

[번역문]

4년(394) 가을 8월에 왕은 패수(浿水) 가에서 백제와 싸워 크게 이기고 8천여 명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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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광개토왕은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광개토대왕으로 알고 있으나 삼국사기를 보면 대왕은 아니고 그냥 왕입니다.

 

고구려에 대왕은 세 분 뿐입니다.

태조대왕(6대-이름 궁, 어릴 때 이름은 어수), 차대왕(7대-이름 수성), 신대왕(8대-이름 백고)

 

그러나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길림성 집안시集安市에 있음)에 나와 있는 왕호를 보면 태왕(太王)입니다.

비문(碑文)에 나와 있는 광개토왕의 정식명칭은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입니다.

 

2) 북쪽으로 거란을 정벌하고 남쪽으로 백제와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3) 광개토왕에 대한 것은 광개토왕비에 쓰여진 내용을 반드시 봐야합니다.

(삼국사기의 광개토왕 기록을 다 올린 다음에 광개토왕비문을 올리겠습니다)

 

4) 광개토왕 본기는 3회에 걸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