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62, 구당서 거란전-3) 끝.

상 상 2015. 3. 25. 17:41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62, 구당서 거란전-3) .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홀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당서 거란전 출처:

1) 번역문: 동북아 역사넷/ 도서/ 중국정사 외국전/ 구당서/ 북적열전/ 거란

2) 원문: 新漢籍全文(http://hanchi.ihp.sinica.edu.tw/ihp/hanji.htm) /免費使用//正史/唐書卷一百九十九下/北狄/契丹

번 역 문

원 문

다음 해(733), 가돌우가 또 [다시] 와서 약탈하였다. 유주장사 설초옥이 부장 곽영걸· 오극근· 오지의· 나수충을 보내 정예 기병 만 명을 거느리고 항복한 해의 무리를 함께 지휘하여 그들을 추격하게 했다. 군대가 유관(渝關)의 도산 주위에 도달하자 가돌우는 돌궐 병사들을 지휘하여 관군과 대적했다. 해의 무리가 마침내 두 마음[兩端]을 품고 흩어져 달아나 요험[]에 의지하였다. 관군이 크게 패하자 ()지의와 ()수충은 휘하를 거느리고 도망쳐 [돌아]왔으나 ()영걸과 ()극근은 진()에서 죽었고, 그 아래의 6천여 명은 모두 적에게 살해당했다.

明年可突于又來抄掠幽州長史薛楚玉遣副將郭英傑吳克勤鄔知義羅守忠率精騎萬人并領降奚之眾追擊之軍至渝關都山之下可突于領突厥兵以拒官軍奚眾遂持兩端散走保險官軍大敗知義守忠率麾下遁歸英傑克勤沒于陣其下六千餘人盡為賊所殺

조칙을 내려 장수규를 유주장사 겸 어사중승으로 삼아 그들을 경략하게 하였다. 가돌우는 점차 ()수규에게 압박을 당하자 사자를 보내 거짓으로 항복하였다. 이어 또 [무리의 마음이] 미혹되고 안정되지 않자 무리를 이끌고 점차 서북쪽으로 향해 돌궐로 가려 하였다. ()수규가 관기(管記) 왕회(王悔) 등을 보내 부락으로 가서 그들을 불러와 타이르고 가르치게 했다. 이 때 거란의 아관인 이과절(李過折)은 가돌우와 함께

병마[에 관한 일]을 나누어 맡았으나 마음이 맞지 않았는데 ()회가 은밀히 유인하자 ()과절은 밤중에 병사를 거느리고 가돌우 및 그의 지당(支黨) 수십 명을 참수했다.

詔以張守珪為幽州長史兼御史中丞以經略之可突于漸為守珪所逼遣使偽降俄又迴惑不定引眾漸向西北將就突厥守珪遣管記王悔等就部落招諭之時契丹衙官李過折與可突于分掌兵馬情不叶悔潛誘之過折夜勒兵斬可突于及其支黨數十人

[개원] 23(735) 정월, [가돌우의] 머리를 동도(東都)에 전했다. 조칙을 내려 ()과절을 봉해 북평군왕으로 삼고 특진을 제수하고, 검교송막주도독으로 삼고 금의(錦衣) 한 부()와 은기(銀器) 열 사(), 견채(絹綵) 삼천 필()을 하사했다. 그 해, ()과절은 가돌우의 남은 무리인 니예(泥禮)에게 살해당했고 그[] 여러 아들들도 함께 [살해당했으나] 오로지 한 명의 아들인 날건(剌乾)만이 달아나 안동에 투항해 [화를] 면할 수 있었는데 [당은 그를] 좌효위장군에 제수했다.

二十三年正月傳首東都詔封過折為北平郡王授特進檢校松漠州都督賜錦衣一副銀器十事絹綵三千疋其年過折為可突于餘黨泥禮所殺并其諸子唯一子剌乾走投安東得免拜左驍衛將軍

[()현종] 천보 10(751), 안록산은 그[들의] 추장(酋長)이 배반하려 한다고 무고하고 병사를 들어 그들을 토벌할 것을 청했다. 8, 유주· 운중· 평로 [일대의] 무리 수만 명이 황수(潢水) 남쪽 거란의 본영으로 가서 그들과 전투를 벌였으나 ()녹산은 크게 패하여 돌아왔고 죽은 자가 수천 명이었다. 12(753)에 이르러, [다시] 항복하고 의탁하였다. [덕종(德宗)] 정원(貞元) [연간에] 이르면 항상 한 해 걸러 와서 번국의 예[藩禮]를 행했다.

天寶十年安祿山誣其酋長欲叛請舉兵討之八月以幽州雲中平盧之眾數萬人就潢水南契丹衙與之戰祿山大敗而還死者數千人至十二年又降附迄于貞元常間歲來修藩禮

정원(貞元) 4(788), 해의 무리와 함께 우리(당나라)의 진무(振武)[]에 침략해 인축(人畜)을 대거 약탈하고 돌아갔다. 9(793)10(794), 다시 사자를 보내와 알현하자 대수령(大首領) 회락예하(悔落拽何) 이하 각자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돌려 보냈다. 11(795), 대수령 열소 등 25명이 와서 알현하였다. 이후로 [헌종] 원화· [목종] 장경· [경종] 보력· [문종] 대화· 개성 연간에 이를 때까지 사자를 보내와 조공을 바쳤다.

貞元四年與奚眾同寇我振武大掠人畜而去九年十年復遣使來朝大首領悔落拽何已下各授官放還十一年大首領熱蘇等二十五人來朝自後至元和長慶寶曆大和開成時遣使來朝貢

[무종] 회창 2(842) 9, ()를 내려 말하기를, “거란에서 새로 즉위한 왕 굴수에게 운마장군을 제수해 우무위장군원외치동정원을 담당하게 하라.”라고 하였다. 유주절도사 장중무가 상언(上言)하여 굴수 등이 전하기를, 거란은 옛부터 회흘(迴紇)의 인장을 사용했는데 지금 [황제께] 간청하여 아뢰기를 거란[國家][새로운] 인장을 하사해 줄 것을 청합니다.”라고 한다고 하자 [무종이] 이를 허락하고, [인장에] ‘봉국거란지인)’이라는 문구를 새기게 했다. =구당서 거란전 끝=

會昌二年九月:「契丹新立王屈戍可雲麾將軍守右武衛將軍員外置同正員。」幽州節度使張仲武上言:「屈戍等云契丹舊用迴紇印今懇請聞奏乞國家賜印。」許之奉國契丹之印為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