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60, 구당서 거란전-1)

상 상 2015. 3. 20. 17:47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60, 구당서 거란전-1)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홀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당서 거란전

1) 번역문: 동북아 역사넷/ 도서/ 중국정사 외국전/ 구당서/ 북적열전/ 거란

2) 원문: 新漢籍全文(http://hanchi.ihp.sinica.edu.tw/ihp/hanji.htm) /免費使用//正史/唐書卷一百九十九下/北狄/契丹

 

구당서 북적열전 거란전(199 )

번 역 문

원 문

거란(契丹)은 황수(潢水)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에 살았는데, [이 곳은] 선비(鮮卑)의 옛 땅으로 [당의] 경성(京城)에서는 동북으로 53백 리 [떨어져] 있다. 동으로는 고려(高麗)와 이웃하였고 서로는 해국(奚國)과 접했고 남으로는 [당의] 영주(營州)[까지] 도달하고 북으로는 실위(室韋)에 도달했다. 냉형산(冷陘山)은 그 나라의 남쪽에 있었는데 해의 서산(西山)과 서로 [이어져 있어] 산길이 험준하였고 [그 길이 지나는] 지방은 2천 리였다.

契丹居潢水之南黃龍之北鮮卑之故地在京城東北五千三百里東與高麗鄰西與奚國接南至營州北至室韋冷陘山在其國南與奚西山相崎地方二千里

[그들은 가축을] 쫓아 사냥하고 왕래하여 거처는 정해진 곳이 없었다. [들의] 군장의 성씨[]는 대하씨(大賀氏)였다. [그들에게는] 뛰어난 병사[勝兵]가 사만삼천 명 있었는데 나누어 팔부(八部)로 삼았고 만약 징발이 있으면 여러 부락이 모두 모름지기 모일 것을 의논했고 단독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사냥을 할 때는 부[락으로 단위]를 나누었으나 전투를 할 때는 함께 움직였다. 본래 돌궐에 신속하고 해와는 전투하기를 즐겼는데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청산(靑山) 및 선비산(鮮卑山)으로 달아나 의지하였다.

逐獵往來居無常處其君長姓大賀氏勝兵四萬三千人分為八部若有徵發諸部皆須議合不得獨舉獵則別部戰則同行本臣突厥好與奚鬬不利則遁保青山及鮮卑山

그들의 풍속에는 죽은 자[를 위해서]는 무덤[塚墓]을 만들지 않았고, [이 끄는] 수레로 [시체를 실고] 대산(大山)에 들어가 시체를 나무 위에 놓았으며 또한 상복을 입지[服紀] 않았다. 자손이 죽으면 부모가 아침저녁으로 곡을 했으나 부모가 죽으면 자손은 곡을 하지 않았다. 그 나머지 풍속은 돌궐(突厥)과 같았다.

其俗死者不得作塚墓以馬駕車送入大山置之樹上亦無服紀子孫死父母晨夕哭之父母死子孫不哭其餘風俗與突厥同

[당 고조] 무덕 초, [거란은] 자주 [당의] 변경을 노략질하였다. [무덕] 2(619)에는 평주에 쳐들어왔다. 6, 그들의 군장인 돌라가 사자를 보내 명마와 풍초(豐貂)를 바쳤다. [태종] 정관 2(628), 그들의 지배자인 마회가 그의 부락을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였다.

武德初數抄邊境二年入寇平州六年其君長咄羅遣使貢名馬豐貂貞觀二年其君摩會率其部落來降

돌궐(突厥)의 힐리가한[頡利]이 사자를 보내 양사도(梁師都)와 거란(契丹)을 맞바꿀 것을 청하자 태종(太宗)이 일러 말하기를, “거란(契丹)과 돌궐(突厥)은 본래 다른 무리[別類]로 지금 [거란이] 우리에게 와서 항복했는데 무슨 연고로 그를 찾는단 말인가? ()사도는 본래 중국사람으로 우리[나라 경내의] 주성(州城)에 웅거하여 도적질을 하였는데 [그 때마다] 돌궐(突厥)은 아무런 이유없이 그를 받아들였고, 우리의 군대가 가서 토벌하려 하면 곧 와서 구원하였다. 헤아려 보건대 [그는] 오래지 않아 스스로 생포되어 망하게 될 것이고 설령 그를 멸할 수 없다 하더라도 끝내 거란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突厥頡利遣使請以梁師都易契丹太宗謂曰:「契丹突厥本是別類今來降我何故索之師都本中國人據我州城以為盜竊突厥無故容納之我師往討便來救援計不久自當擒滅縱其不得終不以契丹易之。」

태종이 고려를 정벌하고 영주에 도달해 마침 그들의 군장 및 노인 등을 만나 물자를 하사했는데 각자에게 차등을 두었고 그들의 번장(蕃長)인 굴가에게 [관직을 제수해] 좌무위장군으로 삼았다.

太宗伐高麗至營州會其君長及老人等賜物各有差授其蕃長窟哥為左武衛將軍

[정관] 22(648), 굴가 등[이 이끄는] 부락이 모두 [당 경내로] 들어와 복속하기를 청하자 곧 송막도독부를 설치하고 굴가를 좌영군장군 겸 송막도독부· 무극현남으로 삼고 이씨(李氏) 성을 하사하였다.

二十二年窟哥等部咸請內屬乃置松漠都督府以窟哥為左領軍將軍兼松漠都督府無極縣男賜姓李氏

[고종] 현경 초(656657), 또 굴가를 좌감문대장군에 제수했다. 그의 증손인 고막리는 측천(則天)의 치세 때 좌위장군 겸 검교탄한주자사를 역임하고 귀순군왕이 되었다.

顯慶初又拜窟哥為左監門大將軍其曾孫祜莫離則天時歷左衛將軍兼檢校彈汗州刺史歸順郡王

또 거란에는 다른 부락[別部]의 우두머리인 손오조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수()에 출사(出仕)해 금자광록대부가 되었다. 무덕 4(621), 말갈의 추장인 돌지계와 함께 사자를 보내 와 의탁하니 조칙을 내려 [그들을] 영주성 옆에 안치하고 운휘장군을 제수하고 요주총관의 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又契丹有別部酋帥孫敖曹初仕隋為金紫光祿大夫武德四年與靺鞨酋長突地稽俱遣使內附詔令於營州城傍安置授雲麾將軍行遼州總管

증손인 [()]만영에 이르면 [측천] 수공(垂拱) (685~686), 우옥령위장군· 귀성주자사)에 잇달아 제수하고 영락현공에 봉했다.

至曾孫萬榮垂拱初累授右玉鈐衛將軍歸誠州刺史封永樂縣公

[측천] 만세통천 연간(696~697), ()만영이 그의 매서(妹壻)인 송막도독 이진충과 함께 영주도독 조홰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자 두 사람이 마침내 병사를 들어 ()홰를 죽이고 영주에 웅거해 []란을 일으켰다. ()진충은 곧 굴가의 후손으로 우무위대장군 겸 송막도독[등의 관직]을 두루 지냈다.

萬歲通天中萬榮與其妹壻松漠都督李盡忠俱為營州都督趙翽所侵侮二人遂舉兵殺翽據營州作亂盡忠即窟哥之胤歷位右武衛大將軍兼松漠都督

측천은 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에 노하여 조칙을 내려 ()만영의 이름을 고쳐 ()만참(萬斬)이라 하고 ()진충은 ()진멸(盡滅)이라 했다.

則天怒其叛亂下詔改萬榮名為萬斬盡忠為盡滅

()진멸은 이어 스스로를 무상가한이라 칭하고 ()만참(손만영)을 대장으로 삼아 전봉(前鋒)에 서서 땅을 빼앗게 했는데 [그들이] 향하는 곳마다 모두 항복시켜 십여 일만에 병사가 수만 []에 달했고 진격하여 단주(檀州)에 침범했다.

盡滅尋自稱無上可汗以萬斬為大將前鋒略地所向皆下旬日兵至數萬進逼檀州

조칙을 내려 우금오대장군 장현우· 좌응양위장군 조인사· 사농소경 마인절 등에게 병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토벌하게 했다. [이들은] ()만참(손만영)과 서협석곡(西硤石谷)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관군은 패하고 ()현우와 ()인절은 함께 적에게 사로잡혔다.

詔令右金吾大將軍張玄遇左鷹揚衛將軍曹仁師司農少卿麻仁節率兵討之與萬斬戰于西硤石谷官軍敗績玄遇仁節並為賊所虜

또 하관상서 왕효걸· 좌우림장군 소굉휘에게 명하여 병사 7[]을 거느리고 그들의 뒤를 따르게 했다. ()만참(손만영)과 동협석곡(東硤石谷)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효걸은 진영에서 죽었고 ()굉휘는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

又令夏官尚書王孝傑左羽林將軍蘇宏暉領兵七萬以繼之與萬斬戰于東硤石谷孝傑在陣陷沒宏暉棄甲而遁

()만참(손망영)[] 기세를 타서 그의 무리를 거느리고 유주로 들어가 인리(人吏)를 죽이고 [재물을] 약탈했다.

萬斬乘勝率其眾入幽州殺略人吏

청변도대총관· 건안군왕 무유의가 비장(裨將)을 보내 그를 토벌하려 했으나 물리칠 수 없었다. 또 조칙을 내려 좌금오대장군· 하내왕 무의종을 대총관으로 삼고 어사대부 누사덕을 부대총관으로 삼고 우무위장군 사탁충의를 전군총관으로 삼아 병사 30[]을 거느리고 그들을 토벌하게 했다.

清邊道大總管建安郡王武攸宜遣裨將討之不能克又詔左金吾大將軍河內王武懿宗為大總管御史大夫婁師德為副大總管右武衛將軍沙吒忠義為前軍總管率兵三十萬以討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