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역 문 | 원 문 |
[군대가] 패했다는 서신[書][의 내용]을 듣고 후(后)는 곧 우무위대장군 건안왕(建安王) 무유의(武攸宜)를 청변도대총관(淸邊道大總管)으로 삼아 거란(契丹)을 공격했다. 천하의 인노(人奴) [중]에 용맹함이 있는 자를 모아 관에서 [그들의 원래] 주인에게 돈을 주고 그들을 산 다음 모두 징발하여 거란[虜]을 공격했다. | 敗書聞,后乃以右武衞大將軍建安王武攸宜為清邊道大總管,擊契丹;募天下人奴有勇者,官畀主直,悉發以擊虜。 |
(손)만영이 말에 재갈을 물리고[銜枚] 밤중에 단주(檀州)를 습격하니 청변도부총관 장구절(張九節)이 사사(死士) 수백 명을 모아 [그들을] 침범해 전투를 벌이자 만영이 패하여 산으로 도망갔다. | 萬榮銜枚夜襲檀州,清邊道副總管張九節募死士數百薄戰,萬榮敗而走山。 |
이어 (이)진충이 죽자 돌궐(突厥)의 묵철(黙啜)이 그들의 부락을 습격해 물리쳤다. (손)만영은 흩어진 병사들을 거두어 다시 일어나 별장(別將) 낙무정(駱務整)과 하아소(何阿小)에게 기주(冀州)로 들어가 자사(刺史) 육보적(陸寶積)을 죽이고 수천 명을 매질하게 했다. | 俄而盡忠死,突厥默啜襲破其部。萬榮收散兵復振,使別將駱務整、何阿小入冀州,殺刺史陸寶積,掠數千人。 |
무후(武后)가 [이]진충(李盡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조칙을 내려 하관상서(夏官尙書) 왕효걸(王孝傑)·우림위장군(羽林衛將軍) 소굉휘(蘇宏暉)에게 병사 십칠만을 거느리고 거란(契丹)을 토벌하게 하니 동협석(東硤石)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군사는 패하고 효걸은 죽었다. | 武后聞盡忠死,更詔夏官尚書王孝傑、羽林衞將軍蘇宏暉率兵十七萬討契丹,戰東硤石,師敗,孝傑死之。 |
(손)만영(萬榮)이 이미 승리를 거두고[나서] 마침내 유주(幽州)로 쳐들어갔다. 유의(攸宜)가 장수를 보내 [그들을] 토벌하여 체포하려 했으나 이길 수 없었다. | 萬榮席已勝,遂屠幽州。攸宜遣將討捕,不能克。 |
곧이어 명을 내려 우금오위대장군(右金吾衛大將軍)이자 하내군왕(河內郡王)인 무의종(武懿宗)을 신병도대총관(神兵道大總管)으로 삼고, 우숙정대어사대부(右肅政臺御史大夫) 누사덕(婁師德)을 청변도대통관으로 삼고, 우무위위대장군(右武威衛大將軍) 사탁충의(沙吒忠義)를 청변중도전군총관(淸邊中道前軍總管)으로 삼아 무릇 이십만 [명]을 병사로 [징발해] 적을 공격[하게]했다. | 乃命右金吾衞大將軍河內郡王武懿宗為神兵道大總管,右肅政臺御史大夫婁師德為清邊道大總管,右武威衞大將軍沙吒忠義為清邊中道前軍總管,兵凡二十萬擊賊。 |
(손)만영[의 군대]는 상당히 민첩하여 북을 치며 남쪽[으로 진격해] 영주(瀛州)의 속현(屬縣)들을 멸하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며 거리낌이 없었다. | 萬榮銳甚,鼓而南,殘瀛州屬縣,恣肆無所憚。 |
이에 신병도총관 양현기(楊玄基)가 해 [출신]의 군사를 거느리고 그들의 후진[尾]을 불시에 덮치니 거란은 크게 패하여 하아소를 획득하고 별장(別將) 이해고와 낙무정을 항복시켰으며 [그들의] 장계(仗械)를 거두어들이니 쌓여 있는 것 같았다. | 於是神兵道總管楊玄基率奚軍掩其尾,契丹大敗,獲何阿小,降別將李楷固、駱務整,收仗械如積。 |
(손)만영은 군수물자를 다 버리고 도주했으나 남아 있던 군대는 다시 모여 해[의 무리]와 싸웠는데 해가 사방에서 공격하자 곧 [전열이] 크게 무너졌고 만영은 멀리 달아났다. | 萬榮委軍走,殘隊復合,與奚搏,奚四面攻,乃大潰,萬榮左馳。 |
장구절이 세 [명]의 복병(伏兵)에게 그들[의 동태]를 엿보게 했는데 만영은 [처지가] 궁해져 집안의 종[家奴]과 경기병[輕騎]과 함께 노하(潞河) 동쪽으로 도망쳤고 피곤함이 심해지자 수풀 아래에 누웠는데 종[奴]이 그의 머리를 참했고 구절이 그것을 동도(東都)에 전하자 남은 무리도 궤멸했다. (무)유의(攸宜)가 승리를 거두고 [나서] 돌아오자 후가 기뻐하며 천하에 사면을 행하고 개원하여 신공(神功)이라 했다. | 張九節為三伏伺之,萬榮窮,與家奴輕騎走潞河東,憊甚,臥林下,奴斬其首,九節傳之東都,餘眾潰。攸宜凱而還,后喜,為赦天下,改元為神功。 |
거란(契丹)은 [다시는] 자립할 수 없어 마침내 돌궐(突厥)에 의탁했다. | 契丹不能立,遂附突厥。 |
[무후] 구시(久視) 원년(700), 조칙을 내려 좌옥금위대장군(左玉鈐衛大將軍) 이해고(李楷固)와 우무위위장군(右武威衛將軍) 낙무정(駱務整)에게 거란(契丹)을 토벌하게 하여 물리쳤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거란[虜] [출신의] 뛰어난 장수로 일찍이 변경을 범하고 여러 차례 관군을 괴롭혔던 자들이나 이때에 이르러 공을 세웠다. | 久視元年,詔左玉鈐衞大將軍李楷固、右武威衞將軍駱務整討契丹,破之。此兩人皆虜善將,嘗犯邊,數窘官軍者也,及是有功。 |
[현종(玄宗)] 개원(開元) 2년(714), (이)진충(盡忠)의 종제[從父弟]인 도독(都督) 실활(失活)이 묵철(默啜)의 정치가 쇠락하니 부락(部落)을 거느리고 힐리발리건철(頡利發伊健啜)과 함께 와서 귀의하자 현종(玄宗)이 단서철권(丹書鐵券) 을 하사했다. | 開元二年,盡忠從父弟都督失活以默啜政衰,率部落與頡利發伊健啜來歸,玄宗賜丹書鐵券。 |
2년 후, 해의 지배자[長]인 이대포(李大酺)와 함께 오니 조칙을 내려 송막부(松漠府)를 다시 설치하고 실활(失活)을 도독(都督)으로 삼고 송막군왕(松漠郡王)에 봉하고 좌금오위대장군을 제수했다. 그리하여 [송막]부(府)에는 정석군(靜析軍)을 두고 실활(失活)을 경략대사(經略大使)로 삼았으며 [그가] 다스리던 팔부(八部)에서는 모두 그 우두머리[酋]를 발탁해 자사로 삼았다. 조칙을 내려 장군 설태(薛泰)를 압번낙사(押蕃落使)로 삼아 군대를 독려하고 진무(鎭撫)하게 했다. 황제가 동평왕(東平王)의 외손(外孫)인 양원사(楊元嗣)의 딸을 영락공주(永樂公主)로 삼아 실활(失活)에게 시집보냈다. | 後二年,與奚長李大酺皆來,詔復置松漠府,以失活為都督,封松漠郡王,授左金吾衞大將軍;仍其府置靜析軍,以失活為經略大使,所統八部皆擢其酋為刺史。詔將軍薛泰為押蕃落使,督軍鎮撫。帝以東平王外孫楊元嗣女為永樂公主,妻失活。 |
다음 해 실활(失活)이 죽자 특진(特進)을 추증하고 제가 사자를 보내 조문하고 그의 동생인 중랑장(中郎將) 파고(婆固)에게 [형의] 봉작[封] 및 다스리던 [지역]을 이어받게 했다. 다음 해 파고(婆固)가 공주와 함께 와서 알현하니 연회를 베풀고 하사품을 더해 주었다. | 明年,失活死,贈特進,帝遣使弔祠,以其弟中郎將娑固襲封及所領。明年,娑固與公主來朝,宴賚有加。 |
가돌우(可突于)라는 자가 있었는데 정석군부사(靜析軍副使)로 날쌔고 용맹하여 무리[의 신망]을 얻게 되자 파고(婆固)가 그를 제거하려 했으나 미처 결정하지 못했다. 가돌우가 도리어 파고를 공격하자 파고는 영주(營州)로 도망쳤다. 도독(都督) 허흠담(許欽澹)이 주의 군사[州甲] 오백 [명]을 해의 군장(君長)인 이대포의 병사와 합쳐 함께 가돌우를 공격했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파고와 대포 모두 죽게 되자 흠첨이 두려워하며 군대를 옮겨 유관(楡關)으로 들어갔다. | 有可突于者,為靜析軍副使,悍勇得眾,娑固欲去之,未決。可突于反攻娑固,娑固奔營州。都督許欽澹以州甲五百,合奚君長李大酺兵共攻可突于,不勝,娑固、大酺皆死,欽澹懼,徙軍入榆關。 |
가돌우가 파고의 종제 울우(鬱于)를 받들어 지배자[君]로 삼고 사자를 보내 사죄하자 조칙을 내려 곧 울우를 송막군왕(松漠郡王)에 제수하고 가돌우를 사면했다. 울우가 와서 알현하니 솔경령(率更令)을 제수하고 종실 출신의 여자인 모용씨[慕容]를 연군공주(燕郡公主)로 삼아 그에게 시집보냈다. | 可突于奉娑固從父弟鬱于為君,遣使者謝罪,有詔即拜鬱于松漠郡王,而赦可突于。鬱于來朝,授率更令,以宗室所出女慕容為燕郡公主妻之。 |
가돌우 역시 와서 알현하니 좌우림위장군(左羽林衛將軍)으로 발탁했다. 울우가 죽자 동생 토우(吐于)가 그의 뒤를 이었는데 가돌우와의 사이에 불화가 있어 그의 휘하를 안정시킬 수 없자 공주를 데리고 도망쳐 오니 [당은 그를] 요양군왕(遼陽郡王)에 봉하고 숙위(宿衛)에 머무르게 했다. 가돌우가 진충(盡忠)의 동생인 소고(邵固)를 받들고 무리를 다스리자 조칙을 내려 [그가] 왕작[王]을 이어받는 것을 허락했다. 천자가 봉선(封禪) 을 떠나자 소고가 여러 번국의 지배자[蕃長]들과 함께 모두 행재(行在)에 따라 갔다. | 可突于亦來朝,擢左羽林衞將軍。鬱于死,弟吐于嗣,與可突于有隙,不能定其下,攜公主來奔,封遼陽郡王,留宿衞。可突于奉盡忠弟邵固統眾,詔許襲王。天子封禪,邵固與諸蕃長皆從行在。 |
다음 해, [소고를] 좌우림위대장군(左羽林衛大將軍)에 제수하고 왕[작의 봉지]를 광화군(廣化郡)으로 옮기고 종실 출신의 여자인 진씨[陳]을 동화공주(東華公主)로 삼아 소고에게 시집보내고 조칙을 내려 그들 부락[部]의 추장(酋長) 백 여 명에게 관직을 주고 소고에게는 아들을 시위(侍衛)로 들여보내게 했다. | 明年,拜左羽林衞大將軍,徙王廣化郡,以宗室出女陳為東華公主,妻邵固,詔官其部酋長百餘人,邵固以子入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