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55, 신당서 돌궐전-7)

상 상 2015. 3. 9. 17:07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55, 신당서 돌궐전-7)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홀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신당서 돌궐전 출처:

1) 번역문: 동북아 역사넷/ 도서/ 중국정사 외국전/ 新唐書 卷215 돌궐전(突厥)

2) 원문: 新漢籍全文(http://hanchi.ihp.sinica.edu.tw/ihp/hanji.htm) /免費使用//正史/唐書/ 列傳/ 卷二百一十五, , 突厥

신당서 권215 돌궐전() (新唐書 卷二百一十五 下, 突厥下)

번 역 문

원 문

비가가한 묵극련은 본래 소살(小殺)”이라고 불리던 인물로 성격이 인자하고 우애가 있었으며 자신이 즉위한 것이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아우] 궐특륵에게 양보하고자 했으나 []특륵이 감히 받으려고 하지 않자 결국 [가한의] 지위를 잇게 되었는데, [이것이] 실제로 개원 4(716)의 일이었다. [비가가한은 궐]특륵을 좌현왕으로 삼아 병력을 모두 통솔하게 했다. 이전에 묵철이 죽자 궐특륵이 그를 모시던 신하마저 모두 죽였는데, 오직 돈욕곡(暾欲谷)만이 [그의] 딸 파복(婆匐)이 묵극련의 가돈이라 홀로 [죽음을] 면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부락에 돌아가 있었다. 이후에 돌기시 소록(蘇祿)이 스스로 가한이 되면서 돌궐의 부락들이 많이 이반하자 묵극련이 바로 돈욕곡을 불러 그와 나라[의 일]을 모의했는데, [이 때 나이가] 70여 세라 백성들이 존중하고 무서워했다.

毗伽可汗默棘連本謂小殺性仁友自以立非己功讓於闕特勒特勒不敢受遂嗣位實開元四年以特勒為左賢王專制其兵默啜死闕特勒盡殺其用事臣惟暾欲谷者以女婆匐為默棘連可敦獨免廢歸其部後突騎施蘇祿自為可汗突厥部種多貳默棘連乃召暾欲谷與謀國年七十餘眾尊畏之

얼마 있다가 협질사태 등이 하곡(河曲)에서 [돌궐로] 귀순했다. 이전에 항호(降戶)가 남쪽에 내려오자 선우부도호 장지운이 그의 병기를 모두 거두어들였기 때문에 돌궐 사람들이 원망하며 화를 냈다. 그런데 강회(姜晦)가 순변사가 된 뒤 [돌궐 사람들이] 활과 화살[을 쓰는 것]을 금지해 사냥으로 살 수 없다고 호소하자 []회가 모두 돌려주었다. 그러자 [항호들이 강회와] 함께 장지운을 공격해 사로잡아 [그를] 돌궐로 보내려고 했는데, 삭방행군총관 설눌과 장군 곽지운(郭知運)이 추격해 백성들이 죽이자 [결국에는 장]지운을 풀어주었다. [협질]사태 등이 두 개의 부대로 나뉘어 북쪽으로 도망을 가자 왕준이 다시 그의 좌측 부대를 격파했다.

俄而跌思太等自河曲歸之降戶之南也單于副都護張知運盡斂其兵戎人怨怒及姜晦為巡邊使遮訴禁弓矢無以射獵為生晦悉還之乃共擊張知運禽之將送突厥朔方行軍總管薛訥將軍郭知運追之眾潰釋知運去思太等分為二隊北走王晙又破其左隊

묵극련이 이미 항복한 호[](胡人)을 얻고 남쪽으로 [당나라의] 요새를 노략질하려고 하자 돈욕곡이 말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은 [당나라] 천자가 뛰어나고 용맹하며 백성들이 화합해 해마다 풍년이 들어 [] 틈이 없기 때문이고, 또한 우리 군대는 새로 모였기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묵극련이 또한 성채를 [세워] 도읍을 삼고, 불교 사원과 도관을 세우려고 하자 돈욕곡이 말했다. “돌궐의 백성은 당나라의 백분의 일도 되지 못하는데, 대적을 할 수 있는 것은 물과 풀을 따라 사냥을 하고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으며 싸우는 일을 익혀 강하면 나아가서 뺏고 약하면 달아나 엎드리니 당나라 군대가 비록 많아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성채에 살게 되어 싸워서 한 번이라도 지게 된다면 반드시 그들에게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불교와 도교의 가르침은 사람을 어질고 약하게 만들고 힘을 강하게 하는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묵극련이 그의 책략이 올바르다고 하며 사자를 보내 화친을 청했다. [하지만] 황제는 진심이 아니라고 여겨 답을 하되 [화친은] 허락해주지 않았다. 바로 조칙을 내려 정벌하라고 하자 발실밀(종족 명칭), 우효위대장군 금산도총관 처목곤집미철과 견곤도독 우무위대장군 골돌록비가가한, 거란도독(都督) 이실활(李失活), 해도독(奚都督) 이대보, 돌궐묵철의 아들 좌현왕 묵특륵, []위위장군 우현왕 아사나비가특륵, 연산군왕 화발석실필 등 다른 종족과 중국의 병사가 모두 출발하는데 대저 [군대가] 30만이었고, 어사대부 삭방도대총관 왕준이 [이를] 통제해 [개원] 8(719) 가을 계락수(稽落水)부근에서 모이기로 약속을 하고 발실밀, , 거란을 시켜 길을 나눠 [돌궐의] 아장을 공격해 묵극련을 잡게 했다. 묵극련이 크게 두려워하자 돈욕곡이 말했다. “발실밀은 북정(도호부: 지금 신강 유오이 자치구 길목살이현 25리 떨어진 파성자이다)에 있어 [다른] 두 종족과 서로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분명 모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왕]준과 장가정의 사이가 좋지 않아 반드시 서로 의견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역시 올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모두 올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마땅히 사흘 전에 모든 백성들을 북쪽으로 옮긴다면 그들은 양식이 떨어져 스스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발실밀은 가벼이 이익을 밝혀 반드시 먼저 올 것이니 공격을 해서 잡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얼마 있다가 과연 발실밀이 백성들을 이끌고 돌궐의 아장을 핍박하나 [그들은 왕]준 등이 오지 못한 것을 알고 바로 물려 물러나려고 했는데, 돌궐이 공격하려고 하자 돈욕곡이 말했다. “[발실밀의] 군대는 천 리나 멀리서 나왔기 때문에 병사들이 죽기로 싸울 것이니 날카로운 기세를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의] 뒤를 밟지 못한다면 가까이에서 공격해서 잡아야만 할 것입니다.” 북정까지의 거리가 2백 리인데, 바로 군대를 나눠 다른 길로 [가서 먼저] 그 성을 빼앗고, 바로 발실밀을 급히 공격한다면 병사들이 북정으로 도망갔다가 돌아갈 곳이 없게 되어 모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돌궐이] 적정(赤亭)을 돌아 나와 양주를 약탈할 때 [양주]도독 양경술이 관속인 [부장(副將)] 노공리와 [판관(判官)] 원징을 시켜 군대를 이끌고 가서 토벌해 잡으려 하자 돈욕곡이 말했다. “[]경술이 만약 성을 지키고 있다면 당연히 [그와] 강화를 해야만 할 것입니다. 만약 [그가] 병사들을 낸다면 우리도 역시 결전을 벌여야만 반드시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징이 군대에 명령을 내려 말했다. “쇠뇌의 활을 당겨 밖으로 향하라.” [하지만] 마침 날씨가 추워 살이 터져 병사들의 손이 활을 당길 수 없었기 때문에 크게 패하고 원징이 도망을 가자 []경술이 이에 연좌되어 평민 신분으로 양주의 일을 임시로 살피게 되었고, 돌궐은 마침내 크게 [기세를] 떨치며 모든 묵철의 남은 백성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默棘連既得降胡欲南盜塞暾欲谷曰:「不可天子英武人和歲豐未有間且我兵新集不可動也。」默棘連又欲城所都起佛老廟暾欲谷曰:「突厥眾不敵唐百分一所能與抗者隨水草射獵居處無常習於武事彊則進取弱則遁伏唐兵雖多無所用也若城而居戰一敗必為彼禽且佛老教人仁弱非武彊術。」默棘連當其策即遣使者請和帝以不情答而不許俄下詔伐之乃以拔悉蜜右驍衞大將軍金山道總管處木昆執米啜堅昆都督右武衞大將軍骨篤祿毗伽可汗契丹都督李失活奚都督李大酺突厥默啜子左賢王墨特勒左威衞將軍右賢王阿史那毗伽特勒燕山郡王火拔石失畢等蕃漢士悉發凡三十萬以御史大夫朔方道大總管王晙統之期八年秋並集稽落水上使拔悉蜜契丹分道掩其牙捕默棘連默棘連大恐暾欲谷曰:「拔悉蜜在北庭與二蕃相距遠必不合晙與張嘉貞有隙必相執異亦必不能來即皆能來我當前三日悉眾北徙彼糧竭自去拔悉蜜輕而好利當先至擊之可取也。」俄而拔悉蜜果引眾逼突厥牙知晙等不至乃引卻突厥欲擊之暾欲谷曰:「兵千里遠出士殊死鬬鋒不可當也不如躡之邀近而取之。」距北庭二百里乃分兵由它道襲拔其城即急擊拔悉蜜眾走趨北庭無所歸悉禽之還出赤亭掠涼州都督楊敬述使官屬盧公利元澄等勒兵討捕暾欲谷曰:「敬述若城守當與和如兵出吾且決戰必有功。」澄令于軍曰:「臝臂持滿外注。」會大寒裂膚士手不能張弓矢由是大敗元澄走敬述坐以白衣檢校涼州事突厥遂大振盡有默啜餘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