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54, 신당서 돌궐전-6)

상 상 2015. 3. 6. 17:47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54, 신당서 돌궐전-6)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홀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신당서 돌궐전 출처:

1) 번역문: 동북아 역사넷/ 도서/ 중국정사 외국전/ 新唐書 卷215 돌궐전(突厥)

2) 원문: 新漢籍全文(http://hanchi.ihp.sinica.edu.tw/ihp/hanji.htm) /免費使用//正史/唐書/ 列傳/ 卷二百一十五上, 突厥上

번 역 문

원 문

이전, 경운 년간에(경운 3-709) 묵철이 서쪽으로 사갈(娑葛: 돌기시의 추장)을 멸망시키고 결국 거란과 해마저 정복했는데, 그 부하들을 가혹하게 부려먹었다. [묵철이] 이미 나이가 들어 점차 [정신이] 흐려져 포학하게 대하게 되자 부락[의 사람들]이 원한을 품고 배반해 십성의 좌부 오돌륙[의 철()]과 우부 오노실필 사근(俟斤)이 모두 항복을 청했고, 갈라록, 호옥, 서니시 [] 세 부락[三姓]과 대막도독 특진주사, 음산도독 모락복계, 현지도독(玄池都督) 답실력호비가 모두 백성을 이끌고 내부하자 조칙을 내려 그 백성들을 금산(金山)에 살게 했다. 우우림군대장군 설눌을 양주진군대총관(涼州鎭軍大總管)으로 삼아 적수[](赤水軍: 지금 감숙성 영등현 서남쪽), 건강[](建康軍: 지금 감숙성 고대현 서남쪽 40), 하원[](河源軍: 지금 청해성 서녕시 동쪽)등의 군진을 통제하며 양주(涼州)에 주둔하게 하고, 도독 양집일을 부[총관]으로, 우위대장군 곽건관을 삭주진군대총관으로 삼아 화융[](和戎軍: 지금 감숙성 고랑현에 있는 협구), 대무[](大武軍: 산서성 삭주시 동북쪽 30리 떨어진 마읍촌), 병주의 북쪽에 있는 군진을 통제하도록 하며 병주에 주둔하게 하고, 장사 왕준을 부[총관]으로 삼았다. [이들로 하여금] 새로 내부한 [돌궐을] 안무하게 하고 노략질과 소란 행위를 감찰하게 했다. 묵철이 여러 번 갈라록 등을 공격하자 [황제가] 조칙을 내려 관할 도호와 총관에게 서로 호응해 구원하게 했다. 돌궐의 세력이 점차 약화되었다. 그의 사위 고[]려 막리지 고문간(高文簡)과 협질도독, [협질]사태, 토욕혼 대추() 모용도노, 욱사시, 대추() 골굴힐근, 필실힐력, []려 대추() 고공의(高拱毅) 등 모두 만여 장이 서로 이어서 내부를 하자 [황제가] 황하 남쪽으로 들어오게 했다. []문간을 좌위대장군 요서군왕으로, [협질]사태를 특진 우위대장군 겸 협질도독 누번군공으로, [모용]도노를 좌무위장군 겸 자사 운중군공, 골굴힐근을 좌효위장군 겸 자사 음산군공으로, 필실힐력을 좌무위장군 겸자사 안문군공으로, []공의를 좌령군위장군 겸 자사 평성군공으로 봉하고 장군을 모두 원외치(員外置: 정원 외로 부여되는 관직) 로 삼아 상으로 내려주는 것에 차이가 나게 주었다.

景雲中默啜西滅娑葛遂役屬契丹因虐用其下既年老愈昏暴部落怨畔十姓左五咄陸右五弩失畢俟斤皆請降葛邏祿胡屋鼠尼施三姓大漠都督特進朱斯陰山都督謀落匐雞玄池都督蹋實力胡鼻率眾內附詔處其眾於金山以右羽林軍大將軍薛訥為涼州鎮軍大總管節度赤水建康河源等軍屯涼州以都督楊執一副之右衞大將軍郭虔瓘為朔州鎮軍大總管節度和戎大武幷州之北等軍屯幷州以長史王晙副之撫新附檢鈔暴默啜屢擊葛邏祿等詔在所都護總管掎角應援虜勢寖削其婿高麗莫離支高文簡與跌都督思太吐谷渾大酋慕容道奴郁射施大酋鶻屈頡斤苾悉頡力高麗大酋高拱毅合萬餘帳相踵款邊詔內之河南引拜文簡左衞大將軍遼西郡王思太特進右衞大將軍兼跌都督樓煩郡公道奴左武衞將軍兼刺史雲中郡公鶻屈頡斤左驍衞將軍兼刺史陰山郡公苾悉頡力左武衞將軍兼刺史鴈門郡公拱毅左領軍衞將軍兼刺史平城郡公將軍皆員外置賜各有差

묵철이 9(九姓)을 토벌하는데 고비 북쪽에서 싸워 9성을 궤멸시켜 사람과 가축들이 모두 죽자 사결(思結) 등의 부락이 와서 [당조에] 항복을 했고 황제가 모두에게 관직을 내려주었다. 설눌을 삭방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 태복경 여연조, 영주자사(靈州刺史) 두빈객을 돕게 해 변경을 수비했다. [황제가] 조칙을 내려 금산[도독], 대막[도독](大漠都督) [특진주사], 음산[도독] [모락복계], 현지도독(玄池都督) [답실력호비] 등이 함께 묵철을 공격해 잡을 것을 모의하게 하면서 포상의 격을 따져 물자를 내려주며 회유했다. [개원 4(716)] 묵철이 또 구성 발야고를 토벌하는데 독락하(獨樂河)에서 싸워 발야고를 크게 패배시켰다. [승리에 취한] 묵철이 경장으로 [무장을] 갖추지 않은 채 돌아오다가 숲이 우거진 속을 지나가는 과정에서 발야고의 남은 백성들이 갑자기 나와 묵철을 공격해 베고 바로 입번사(入蕃使) 학령전에게 [그의] 수급을 주어 경사(장안)에 전하게 했다.

默啜討九姓戰磧北九姓潰人畜皆死思結等部來降帝悉官之拜薛訥朔方道行軍大總管太僕卿呂延祚靈州刺史杜賓客佐之備邊詔金山大漠陰山玄池都督等共圖取默啜班賞格賜物諭之默啜又討九姓拔野古戰獨樂河拔野古大敗默啜輕歸不為備道大林中拔曳固殘眾突出擊默啜斬之乃與入蕃使郝靈佺傳首京師

[아사나]골돌록의 [둘째] 아들 궐특륵이 이전의 부락을 모아 소가한과 종족들을 공격해 모두를 죽인 다음에 그 형 묵극련을 세우니 이가 비가가한(毗伽可汗)이 되었다.

骨咄祿子闕特勒合故部攻殺小可汗及宗族略盡立其兄默棘連是為毗伽可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