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년 (AD 298) : 서리와 우박이 내려 백성들이 굶주렸다.
[번역문]
7년(298) 가을 9월에 서리와 우박이 내려 곡식을 해쳐 백성들이 굶주렸다.
겨울 10월에 왕은 궁실을 증축하였는데 극히 사치하고 화려하게 하여,
백성들이 굶주리고 또 곤핍하였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자주 간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11월에 왕은 사람을 시켜 을불을 찾아 죽이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8 년 (AD 299) : 가을 9월에 귀신이 봉산에서 울었다.
[번역문]
8년(299) 가을 9월에 귀신이 봉산(烽山)에서 울었다.
객성이 달을 범하였다. 겨울 12월에 천둥이 치고 지진이 일어났다.
9 년 (AD 300) : 봄 정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번역문]
9년(300) 봄 정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2월부터 가을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흉년이 들자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8월에 왕은 나라 안의 남녀 15살 이상인 자들을 징발하여 궁실을 수리하였는데,
백성들이 먹을 것이 떨어지고 일에 지쳐서 그 때문에 도망쳐 흩어졌다.
창조리가 간하였다.
“재난이 거듭 닥쳐 곡식이 자라지 않아서 백성들은 살 곳을 잃어 버려, 장정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노인과 어린 아이가 구덩이에서
뒹구니, 지금은 진실로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염려하며, 삼가 두려워하고 수양하며 반성해야 할 때입니다.
대왕께서 일찍이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굶주린 백성들을 몰아 토목 일로 고달프게 하는 것은 백성들의 부모된 뜻에 매우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웃에 강하고 굳센 적이 있는데, 만약 [그들이] 우리가 피폐한 틈을 타서 쳐들어 온다면
사직과 백성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원컨대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리십시오.”
왕은 화를 내며 말하였다.
“임금이란 백성들이 우러러 보는 분이다. 궁실이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으면 위엄을 보일 수 없다.
지금 국상은 아마 과인을 비방하여 백성들의 칭찬을 가로채려고 하는구나.”
[창]조리가 말하였다.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질지 못한 것이고, 신하가 임금에게 간하지 않으면 충성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국상(國相)의 자리를 잠시 채우고 있으니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감히 [백성들의] 칭찬을 가로채겠습니까?”
왕은 웃으며
“국상은 백성을 위하여 죽겠느냐? 다시는 말하지 않기 바란다.”고 하였다.
창조리는 왕이 고치지 못할 것을 알고, 또 해가 [자기에게] 미칠까 두려워, 물러나와서 여러 신하들과 함께 모의하여
왕을 폐하고, 을불을 맞이하여 왕으로 삼았다.
왕은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으며, 두 아들도 따라서 죽었다.
봉산의 들에 장사지내고 왕호를 봉상왕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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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봉상왕 9년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는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일은 고구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2) 국상(國相) 창조리가 아무리 간해도 듣지 않고 도리어 입을 다물라고 하니 물러나와 여러 신하들과 함께 모의하여 왕을 폐합니다.
어떤 식으로 폐하였는지는 다음 왕인 미천왕의 기록에 잘나와 있습니다.
고구려 제도는 신하가 왕을 폐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3) 봉상왕을 폐하고 왕으로 세운 사람이 을불인데 이 을불은 봉상왕이 죽인 아우 돌고의 아들입니다.
돌고는 전편에서 보았다시피 봉상왕의 아우로 봉상왕이 자기를 배반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자살하게 한 사람입니다.
이때 돌고의 아들인 을불은 들판으로 도망을 친 다음, 피해 다니며 살아가다가 창조리 등이 모셔와 왕으로 세웁니다.
4)‘봉산의 들에 장사지내고 왕호를 봉상왕이라고 하였다.’ 즉, 장사지낸 곳의 이름을 따서 왕호를 삼는 것은
이제 고구려의 전통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풍습은 제4대 민중왕 때부터 시작되어, 5대 모본왕, 9대 고국천왕으로 점철 되다가
12대 중천왕에서 부터는 13대 서천왕, 14대 봉상왕으로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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