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제13대 서천왕(西川王) 본기-2

상 상 2011. 12. 22. 18:50

11 년 (AD 280) : 숙신이 쳐들어 와서 변경의 백성들을 살륙

[번역문]

11년(280) 겨울 10월에 숙신이 쳐들어 와서 변경의 백성들을 살육하였다.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과인은 보잘 것 없는 몸으로 나라를 잘못 이어 받아, [나의] 덕이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고 위엄이 멀리 떨치지 못하여,

이렇게 이웃의 적이 우리 강토를 어지럽히게 하였다. 꾀많은 신하와 용맹한 장수를 얻어 적을 멀리 쳐서 깨뜨리려고 하니,

그대들은 기이한 꾀와 특이한 책략이 있어서 그 재능이 장수가 될 만한 자를 각각 천거하여라.”

 

여러 신하들이 모두

“임금님의 동생 달가(達賈)는 용감하고 지략이 있어서 대장이 될 만합니다.” 고 말하였다.

왕은 이리하여 달가를 보내 적을 치게 하였다.

 

달가는 기이한 꾀를 내어 엄습해서 단로성(檀盧城)을 빼앗아 추장을 죽이고, 600여 가(家)를 부여 남쪽의 오천(烏川)으로 옮기고,

부락 예닐곱 곳을 항복시켜 복속시켰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달가를 안국군(安國君)으로 삼아 서울과 지방의 군대의 일을 맡아보게 하고,

아울러 양맥과 숙신의 여러 부락을 통솔하게 하였다.

 

17 년 (AD 286) : 왕의 아우 일우와 소발 두 사람이 반역을

[번역문]

17년(286) 봄 2월에 왕의 아우 일우(逸友)와 소발(素勃) 등 두 사람이 반역을 꾀하여,

거짓으로 병을 칭하고 온탕으로 가서 자기 무리들과 무절제하게 놀며 패역한 말을 하였다.

왕은 재상을 시켜준다고 거짓으로 이들을 불러, 그들이 오자 힘센 장사를 시켜 잡아 죽였다.

 

19 년 (AD 288) : 왕은 동쪽으로 사냥나가서 흰 사슴을 잡았다.

[번역문]

19년(288) 여름 4월에 왕은 신성으로 행차하였다.

해곡(海谷) 태수(太守)가 고래를 바쳤는데 [고래의] 눈이 밤에 빛이 났다.

가을 8월에 왕은 동쪽으로 사냥나가서 흰 사슴을 잡았다.

9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겨울 11월에 왕은 신성(新城)으로부터 돌아왔다.

 

23 년 (AD 292) : 왕이 죽어 서천의 들에 장사지내고

[번역문]

23년(292) 왕이 죽었다. 서천(西川)의 들에 장사지내고 왕호를 서천왕이라고 하였다.

================================================================================

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첫번째 사건은 숙신의 침입사건입니다.

숙신은 말갈→ 여진→ 만주족의 조상으로 부여에 신속(臣屬)하였던 족속입니다.

이제 부여가 망하자 고구려에까지 침입하게 됩니다.

이때에 서천왕의 동생 달가가 숙신을 물리치는 공을 세웁니다.

 

2) 두 번째는 왕의 아우 일우(逸友)와 소발(素勃) 등이 반역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서천왕은 이 동생들을 잡아 죽입니다.

형제끼리 반역, 모반하고 형제를 죽이는 일은 산상왕 연우가 시작한 일입니다.

 

산상왕 연우는 형을 밀어내고 왕위를 차지하고 나중에는 동생을 시켜 형을 죽입니다.

산상왕(10대)의 손자인 중천왕(12대) 연불은 왕위에 오르자 자기 동생들을 죽입니다. 죄명은 모반이었습니다.

 

이제 또다시 중천왕의 아들인 서천왕(13대) 약로도 자기 동생들을 죽입니다. 죄명은 반역입니다.

이렇게 산상왕 연우가 뿌려 놓은 내분의 씨앗은 고구려를 망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산상왕 연우는 고구려를 망하게 하는 원흉입니다.

 

3) 장사지낸 곳의 이름으로 왕호를 삼는 전통은

제4대 민중왕 때부터 시작되어, 5대 모본왕, 9대 고국천왕, 12대 중천왕에 이어 13대 서천왕(西川王)이 다섯번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