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년 (AD 254) : 음우(陰友)를 국상(國相)으로 삼았다.
[번역문]
7년(254) 여름 4월에 국상 명림어수가 죽자, 비류(沸流) 패자(沛者) 음우(陰友)를 국상(國相)으로 삼았다.
가을 7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8 년 (AD 255) : 약로를 왕태자로 세우고 사면하였다
[번역문]
8년(255)에 왕자 약로(藥盧)를 왕태자로 세우고, 나라 안에 사면하였다.
9 년 (AD 256) : 명림홀도(明臨笏覩)를 공주에게 장가들여
[번역문]
9년(256) 겨울 11월에 연나(椽那) 명림홀도(明臨笏覩)를 공주에게 장가들여 부마도위(駙馬都尉)로 삼았다.
12월에 눈이 내리지 않고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12 년 (AD 259) : 위나라 장수 위지해가 쳐들어 왔다.
번역문]
12년(259) 겨울 12월에 왕은 두눌(杜訥) 골짜기로 사냥 나갔다.
위나라 장수 위지해(尉遲楷)<이름이 장릉(長陵)의 이름에 저촉된다.>가 병사를 거느리고 쳐들어 왔다.
왕은 정예의 기병[精騎] 5천 명을 뽑아 양맥(梁貊) 골짜기에서 싸워서 이들을 무찌르고 8천여 명을 목베었다.
13 년 (AD 260) : 졸본으로 가서 시조묘에 제사지냈다.
[번역문]
13년(260) 가을 9월에 왕은 졸본으로 가서 시조묘에 제사지냈다.
15 년 (AD 262) : 기구(箕丘)로 사냥나가 흰 노루를 잡았다.
[번역문]
15년(262) 가을 7월에 왕은 기구(箕丘)로 사냥나가 흰 노루를 잡았다.
겨울 11월에 천둥이 치고 지진이 일어났다.
23 년 (AD 270) : 겨울 10월에 왕이 죽었다.
[번역문]
23년(270) 겨울 10월에 왕이 죽었다.
중천의 들에 장사지내고 왕호를 중천왕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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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먼저 국상 패자 라는 벼슬이름이 나왔으니 다시한번 고구려의 3정승을 되새겨 보겠습니다.
먼저 번, 대무신왕 3편에서 정리한 것을 다시 보겠습니다.
원래 이름 |
신가 |
팔치 |
발치 |
뜻 |
태대신(太大臣), 별명 머리 |
팔(肱) |
다리(股) |
한문직역 |
두신(頭臣) |
굉신(肱臣) |
고신(股臣) |
이두문자 표기 |
대로(對盧) |
패자(沛者) |
평자(評者) |
한문 표기 |
국상(國相) 혹은 대보(大輔) |
좌보(左輔) |
우보(右輔) |
즉, 국상은 대보이며 이두문으로 표시하면 대로이고 패자는 좌보입니다.(평자=우보).
2) 위나라 장수 위지해가 쳐들어와 중천왕(이름 연불)이 정예의 기병[精騎] 5천 명을 뽑아 양맥(梁貊) 골짜기에서 싸워서
이들을 무찌르고 8천여 명을 목베고 승리합니다.
이때에 위나라는 고구려를 쉽게 보고 쳐들어 온 것 같고 중천왕은 동천왕 때의 실수를(적을 깔보는 일-경적필패輕敵必敗) 하지 않고
제대로 적을 친 것 같습니다. 그러니 똑같은 정예기병 5천으로 8천여 명의 목을 베고 승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장소도 동천왕이 이긴 양맥의 골짜기입니다.(동천왕은 5천으로 4천명을 치다가 대패했음-기록에 의하면)
3) 중천왕도 졸본에 갑니다.(평양에서)
졸본은 고구려 최초의 서울이며 시조, 동명성왕의 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 임금이 졸본으로 가서 시조묘에 제사를 지낸 기록은 동천왕(11대 왕) 2년 조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4) 고구려 역대왕의 왕호와 이름을 다시한번 되새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시조 동명성왕(추모, 주몽)
② 2대 유리명왕(유리)
③ 3대 대무신왕(무휼)
④ 4대 민중왕(해색주)
⑤ 5대 모본왕(해우 또는 해애루)
⑥ 6대 태조대왕(궁, 어릴 때 이름은 어수)
⑦ 7대 차대왕(수성)
⑧ 8대 신대왕(백고)
⑨ 9대 고국천왕(남무)
⑩ 10대 산상왕(연우)
⑪ 11대 동천왕(우위거, 어릴 때 이름은 교체)
⑫ 12대 중천왕(연불)
5)‘중천의 들에 장사지내고 왕호를 중천왕이라고 하였다.’고 하는 장사 지낸 곳의 이름으로 왕호로 삼는 고구려의 풍습은
여기에서도 계속됩니다.
이러한 풍습은 제 4대 민중왕 때부터 시작되어, 5대 모본왕, 9대 고국천왕에 이어 12대 중천왕이 네 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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