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제12대 중천왕 본기-1

상 상 2011. 12. 19. 19:42

0 년 (AD 248) : 중천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중천왕(中川王)은 이름이 연불(然弗)이고 동천왕의 아들이다.

자태와 용모가 뛰어나고 지략이 있었다.

동천왕이 17년에 왕태자로 삼았고, 22년 가을 9월에 왕이 죽자 태자가 즉위하였다.

 

겨울 10월에 연씨(椽氏)를 왕후로 삼았다.

11월에 왕의 동생 예물(預物)과 사구(奢句) 등이 모반하였다가 처형되었다.

 

3 년 (AD 250) : 명림어수에게 서울과 지방의 군대의 일을

[번역문]

3년(250) 봄 2월에 왕은 국상(國相) 명림어수(明臨於漱)에게 명령하여

서울과 지방의 군대의 일을 겸해서 맡아보게 하였다.

 

4 년 (AD 251) : 관나부인을 서해에 던져버렸다.

[번역문]

4년(251) 여름 4월에 왕은 관나부인(貫那夫人)을 가죽주머니에 넣어 서해에 던져버렸다.

관나부인은 얼굴이 곱고 머리카락의 길이가 아홉 자나 되어, 왕이 총애하여 장차 소후(小后)로 삼으려고 하였다.

 

왕후 연씨는 그녀가 사랑을 독차지할 것을 염려하여 왕에게 말하였다.

“제가 듣건대 서위(西魏)에서 긴 머리카락을 구하여 천금을 주고 사려고 한다고 합니다.

예전에 우리 선왕께서 중국에 예물을 보내지 않아서 침입을 받고 달아나 사직을 거의 잃을 뻔했습니다.

지금 왕께서 그들이 바라는 대로 일개 심부름꾼을 보내 장발미인을 바치면,

그들이 반드시 흔쾌히 받고 다시 침략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왕은 그 뜻을 알고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부인이 그 말을 듣고 왕후가 자기에게 해를 가할 것을 염려하여 거꾸로 왕에게 왕후를 참소하였다.

“왕후가 항상 저를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농사짓는 집[田舍] 여자가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느냐?

만약 스스로 돌아가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생각컨대, 왕후가 대왕께서 나간 틈을 엿보아 제게 해를 가하려고 하는 것이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훗날 왕이 기구(箕丘)로 사냥나갔다가 돌아오니, 부인이 가죽주머니를 들고 [왕을] 맞이하여 울면서 말하였다.

“왕후가 저를 이 속에 담아 바다에 던지려고 하였습니다. 대왕께서는 저의 작은 목숨을 [살려] 주시어 집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어찌 감히 다시 곁에서 모실 것을 바라겠습니까?”

 

왕은 [주위에] 물어보고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노하여 [관나]부인에게 “네가 꼭 바다 속으로 들어가야겠느냐?”고 말하고는

사람을 시켜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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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중천왕은 왕위에 즉위 하자마자 동생들을 죽입니다. 죄명은 모반입니다.

이런 일은 모두 산상왕 연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연우가 왕이 될, 형 발기를 몰아내고 형수와 야합하는 방법으로 왕이 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니 형이 아우를 못 믿습니다.

동생들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자기 자리를 차지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동생들이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하면 그것은 모반이고 따라서 죽여 버리게 됩니다.

이러니 동생들도 형을 못 믿습니다.

 

이러한 친 형제간에도 못 믿는 풍토는 연우(산상왕)가 만들어 낸 원죄입니다.

한 형제도 못 믿는 이러한 악습이 고구려를 쓰러지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산상왕 연우는 우리 역사에 있어서 근본적인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즉, 연우는 우리민족사에 있어서 씻지 못할 큰 죄를 지었습니다.

 

연우의 못된 행동은 우리 민족역사에 대못질을 한 것이며 연우왕은 우리가 약소민족이 되게 한 원죄를 지은 자입니다.

피를 나눈 형제를 배반하는 잘못을,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은 두고두고 잊지 말고 골수에 파 묻어야 하며,

뼈에 아로 새겨야 할 것입니다.

 

 

2) 두번째는 관나부인 사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먼 옛날에도 여자들간에 투기가 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관나부인 기록에서 서위(西魏)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중천왕 시대는 중국에서 서위(西魏)와 동위(東魏) 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위와 서위는 북위에서 갈라져 온 나라입니다. 중국역사에서 5호 16국 시대를 마감하는 것은 바로 이 북위에서

갈라져 온 나라들입니다. 북위(후위)에서 동위와 서위가 나오고 동위를 이어 받은 나라가 북제이며 서위를 이어 받은 나라가   

북주이고 북주에서 양견이 수나라를 세워 중국을 통일함으로써 극심한 혼란을 겪었던 5호 16국시대를 마감합니다.

 

4) 그리고 북위에서부터 수나라에 이르는 나라들의 민족이 바로 선비족입니다. 선비족은 유리왕때 부분노의 계략으로 고구려의 속국이

된 이래 계속 우리민족(고구려)의 종살이(노예, 노비)로 살다가  10대왕인 산상왕때 형제간에 난리를 겪는 기간에 고구려를 배반하고

요서로 도망가서 전연, 후연, 남연, 북연을 이루어 중국을 집어 삼키다 시피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나타난 선비족이 바로 북위입니다.

북위는 자치통감에 의하면 전연 후연의 많은 도움을 받았고 노비였다고까지 말하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후연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중국의 주역(주인)이 된 나라입니다.    

 

이렇게 위나라(북위)는 우리민족(고구려)와 관계가 깊기 때문에 위나라의 역사서인 위서에 고구려에 관한 의미있는 기록이

많습니다(예, 주몽에 관한 기록 등)

  

5) 또한, '서해'라는 문구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중천왕의 부왕인 동천왕때 서울을 평양으로 옮겼으므로 '서해'라는 문구가 등장한 것이며,

또한 '서해'라는 말도 우리 민족이 먼 조상때부터 써온 오래된(약 2천년) 낱말임을 알수 있습니다.   

 

6) 중천왕의 기록은 2회에 걸쳐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