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건중) 2년(781) 12월에 입번사판관(入蕃使判官) 상로(常魯)가 토번의 사신 논실낙라 등과 함께 토번으로부터 경성(장안)에 도착했다. 처음에 상로와 사신 최한형이 숙소에 도착했을 때, 찬보가 명령을 내려 멈추게 하고, 먼저 국신칙(國信敕)을 취할 것을 명령했다. 이어서 [토번의] 사신이 최한형에게 말하기를, “도착한 칙서에서 말하기를, ‘공물로 헌상한 물품은 모두 받아들였다. 지금 조카에게 예물 약간을 사여하니 와서 받아 가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대토번(大吐藩)과 당은 장인과 사위 관계의 나라인데 어찌 신하의 예로써 대합니까? 또한 경계를 정하고자 하는 바는 운주(산서성 대동시)의 서쪽이니, 하란산(영하성 은천의 서북)을 경계로 삼길 청합니다. 맹약은 경룡 2년(708) 칙서에 써 있는대로 하길 청합니다. 칙서에는 ‘당의 사신이 토번에 도착하면 조카가 먼저 사신과 맹서하고, 토번 사신이 당에 도착하면 삼촌이 또한 친히 토번 사신과 맹서한다.’라고 하였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최한형에게 [본국에] 사신을 보내 상주하고 결정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상로가 사신으로 갔다 돌아와서 상주하니, (당 조정에서는) 칙서를 고치기를, ‘공헌(貢獻)’을 ‘진(進)’으로, ‘사(賜)’를 ‘기(寄)’로, ‘영취(領取)’를 ‘영지(領之)’로 하였다.(대등한 예로 대하기로 했다는 말임) 아울러 [토번 사신에게] 말하기를, “전임 재상 양염이 전례를 따르지 않아, 이와 같은 착오가 생긴 것이다.”라고 하였다. 경계를 정하고 맹약을 하는 것도 모두 토번에 따랐다. | 二年十二月,入蕃使判官常魯與吐蕃使論悉諾羅等至自蕃中。初,魯與其使崔漢衡至列館,贊普令止之,先命取國信敕,既而使謂漢衡曰:「來敕云:『所貢獻物,並領訖;今賜外甥少信物,至領取。』我大蕃與唐舅甥國耳,何得以臣禮見處?又所欲定界,雲州之西,請以賀蘭山為界。其盟約,請依景龍二年敕書云:『唐使到彼,外甥先與盟誓;蕃使到此,阿舅亦親與盟。』」乃邀漢衡遣使奏定。魯使還奏焉,為改敕書,以「貢獻」為「進」,以「賜」為「寄」,以「領取」為「領之」。且謂曰:「前相楊炎不循故事,致此誤爾。」其定界盟,並從之。 |
47) (건중) 3년(782) 4월에 앞서 토번에 포로가 되었던 장병과 승려 등 800명을 귀환시키니, [당에서도] 답례로 [당에 있던] 토번의 포로를 돌려 보냈다. 9월에 화번사(和蕃使) 전중소감 겸 어사중승 최한형(崔漢衡)이 토번의 사신 구협찬과 함께 이르렀다. 당시 토번의 대상(大相) 상결식(尙結息)은 잔인하고 죽이기를 좋아했는데, 일찍이 검남에서 크게 패하여 그 치욕을 씻고자 강화를 원치 않았다. 그 다음 재상 상결찬(尙結贊)은 재략이 있어, 찬보에게 말하여, 경계를 정하고 맹약을 분명히 하여 변경의 백성들을 쉬게 하자고 청했다. 찬보가 옳게 여겨, 결찬을 결식 대신 대상(大相)으로 삼아 마침내 강화를 맹약하고, 10월 15일에 변경에서 회맹하기로 기약했다. 최한형을 홍려경으로 삼고, 도관원외랑 번택(樊澤)에게 어사중승을 겸임하고, 입번계회사(入蕃計會使)를 임명하였다. 당초 최한형은 토번과 맹서의 날짜를 약정하고자 했는데, 최한형이 도착한 뒤에도 논의에 진전이 없어 이미 그 기한을 넘기게 되자, 번택에게 명하여 결찬을 만나 다시 회맹의 날짜를 정하게 하였으며, 또한 농우절도사 장일(張鎰)을 보내 토번과 동맹할 것임을 알렸다. 번택이 이전의 원주(감숙성 진원현 서쪽)에 도착하여 결찬과 서로 만나 내년 정월 15일 청수(감숙성 청수현-淸水縣)의 서쪽에서 회맹할 것을 약정했다. ※ 청수(감숙성 청수현-淸水縣): 장안 서서북쪽 260km | 三年四月,放先沒蕃將士僧尼等八百人歸還,報歸蕃俘也。九月,和蕃使、殿中少監、兼御史中丞崔漢衡與蕃使區頰贊至。時吐蕃大相尚結息忍而好殺,以嘗覆敗於劍南,思刷其恥,不肯約和。其次相尚結贊有材略,因言於贊普,請定界明約,以息邊人。贊普然之,竟以結贊代結息為大相,終約和好,期以十月十五日會盟於境上。以崔漢衡為鴻臚卿,以都官員外郎樊澤兼御史中丞、充入蕃計會使。初,漢衡與吐蕃約定月日盟誓,漢衡到,商量未決,已過其期,遂命澤詣結贊復定盟會期,且告遣隴右節度使張鎰與之同盟。澤至故原州,與結贊相見,以來年正月十五日會盟於清水西。 |
48) (건중) 4년(783) 정월에 [황상이] 장일에게 상결찬과 청수에서 회맹할 것을 명령했다. 장차 회맹을 하려고 하는데, 장일은 (상)결찬과 약정하기를, 각기 2000명으로 회맹의 단상에 이르기로 하였는데, 그 중 절반은 병기를 들고 단상에서 200보 밖에 도열하게 하고, 나머지 절반은 시종으로 삼아 단상 아래 도열하게 했다. 장일과 빈좌(賓佐) 제영, 제항 및 회맹관(會盟官) 최한형, 번택, 상로, 우적(于頔) 등 7명은 모두 조복(朝服)을 입기로 하였고, (상)결찬과 그 본국의 장상(將相) 논실협장, 논장열, 논리타, 사관자, 논력서 등 7명도 모두 단상에 올라 회맹하기로 하였다. 당초 약정하길 한인(漢人)은 소를 쓰고, 토번인은 말을 쓰기로 했는데, 장일이 토번과 회맹함을 부끄럽게 여겨 그 예의 격식을 낮추려고 (상)결찬에게 말하기를, “한인은 소가 아니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토번인은 말이 아니면 다닐 수 없으니, 지금 양, 돼지, 개 등 세 가지 동물로 대신하길 청합니다.”라고 하자, (상)결찬이 이를 허락했다. 변경 밖에는 돼지가 없었으므로 (상)결찬이 저양(羝羊)을 내기를 청하였고, 장일은 개와 양을 내어서 단상 북쪽에서 살생하고 피를 두 개의 그릇에 모아 서로 피를 마시며 결맹했다. 맹서의 문서에 이르기를, “당(唐)은 천하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강역이] 우(禹) 임금의 자취를 넓게 품었으니, 배와 수레가 이르는 곳마다 따르지 않음이 없다. 역대 성스러운 황제의 공덕이 거듭 비추었고, 오랜 세월을 거치며 영구하게 되어, 왕자(王者)의 대업이 밝게 빛나니, 성교(聲敎)가 사해에 고루 미쳤다. 토번의 찬보와 대대로 혼인하여 이웃과의 화평을 굳건히 하였으니, 평화와 위태로움을 같이 하는 조카와 삼촌의 나라가 된 지 거의 200년이 되었다. 그간 혹 작은 원한으로 인하여 은혜를 버리고 원수가 되니, 변경이 소란해지고 평안한 해가 없었다. 황제가 즉위하고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포로와 노예를 석방하여 토번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이에] 토번국에서도 예를 갖추어 여기에 화합하니, 사신이 왕래하고 여러 차례 강화의 명령을 반포하였다. 이로써 서로를 속이는 계책이 일어나지 않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저쪽 [토번측]에서는 두 나라가 모두 바라는 것으로, 화평이 영원하기를 구해야 한다고 여겨, 이미 과거에 결맹한 예를 들어, 지금 그것을 쓰고자 청하였다. 국가는 힘써 변경의 백성이 쉴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옛 영토는 논외로 하며, 이로움을 버리고 도의를 쫓아 굳건하게 맹약을 따라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지키는 국경은 다음과 같으니, 경주(涇州: 섬서성 경천) 서쪽에서 탄쟁협(섬서성 화정현 평량 서쪽?) 서쪽 입구에 이르고, 농주(隴州) 서쪽에서 청수현(淸水縣: 감숙성 청수현)에 이르며, 봉주(鳳州: 감숙성 보계시 서남쪽 봉현) 서쪽에서 동곡현(同谷縣)에 이르고, 아울러 검남(劍南)의 서산(西山: 사천성 성도 서쪽) 대도하(大渡河) 동쪽은 중국(漢)의 영역이다. 토번국의 변경 군영은 난(蘭), 위(渭), 원(原), 회(會)에 있고, 서쪽으로 임조(臨洮)에 이르며, 동쪽으로는 성주(成州: 진주의 남쪽, 봉주의 서쪽, 민주 예현의 남동에 위치)에 이르는데, 곧바로 검남(劍南) 서쪽 경계에 있는 마사(磨些: 모소, 현재까지 모계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민족 집단)등 여러 만(蠻)족과 경계를 이루고, 대도수(大渡水) 서남을 토번의 경계로 삼는다. 군대가 주둔하는 곳에 살고 있는 주현(州縣)의 주민, 그리고 토번과 당의 변경 지역에 살고 있는 당(唐) 측에 소속된 여러 만(蠻)족은 오늘 획정된 경계선에 의거하여 거주지를 정하도록 한다. 황하(黃河) 이북은 옛 신천군(新泉軍: 감숙성 정원현 서북 300리)에서 곧장 북쪽으로 대적(大磧)까지, 그리고 곧장 남쪽으로 하란산(賀蘭山) 낙타령(駱駝嶺)까지를 경계로 하고, 중간은 모두 빈 땅으로 비워둔다. 맹서의 글에 실려 있지 않은 곳, 토번의 병마가 있는 곳은 토번이 지키고, 중국의 병마가 있는 곳은 중국이 지켜서, 모두 현재 지키고 있는 곳을 따라 서로 침범하지 않기로 한다. 이전부터 병마가 없던 곳에는 새로 병마를 둘 수 없고 아울러 성채를 쌓고 농사지을 수 없다. 지금 두 나라의 장수와 재상들이 명령을 받들어 한 곳에 모여, 몸을 정결히 하고 제사지내면서 천지와 산천의 신령에게 고하니, 오로지 신령이 살피시어 그릇되고 위반함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맹서의 글은 종묘에 두고, 부본(副本)은 해당 관청에 두어, 두 나라의 결맹이 영원히 유지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상결찬도 또한 맹서의 글을 꺼냈으나, 구덩이에 넣지 않고, 다만 희생만 묻고 그쳤다. 회맹을 마친 뒤, 결찬은 장일에게 청하기를, 단상의 서남쪽 귀퉁이에 있는 불상을 모신 천막에 들어가서 향을 살라 맹세하자고 했다. 맹세를 마친 뒤, 다시 단상에 올라 술을 마셨다. 술을 바치는 예절은 각기 상대방의 그릇을 사용함으로써 서로 후의를 보이고 돌아갔다. 경주(涇州: 섬서성 경천) 서쪽에서 탄쟁협(섬서성 화정현 평량 서쪽?) 서쪽 입구에 이르고, 농주(隴州) 서쪽에서 청수현(淸水縣: 감숙성 청수현)에 이르며, 봉주(鳳州: 감숙성 보계시 서남쪽 봉현) 서쪽에서 동곡현(同谷縣)에 이르고, 아울러 검남(劍南)의 서산(西山: 사천성 성도 서쪽) 대도하(大渡河) 동쪽은 중국영역이고 토번국의 변경 군영은 난(蘭), 위(渭), 원(原), 회(會)에 있고, 서쪽으로 임조(臨洮)에 이르며, 동쪽으로는 성주(成州: 진주의 남쪽, 봉주의 서쪽, 민주 예현의 남동에 위치)에 이르는데, 곧바로 검남(劍南) 서쪽 경계에 있는 마사(磨些: 모소, 현재까지 모계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민족 집단)등 여러 만(蠻)족과 경계를 이루고, 대도수(大渡水) 서남을 토번의 경계로 삼는다. 황하(黃河) 이북은 옛 신천군(新泉軍: 감숙성 정원현 서북 300리)에서 곧장 북쪽으로 대적(大磧)까지, 그리고 곧장 남쪽으로 하란산(賀蘭山) 낙타령(駱駝嶺)까지를 경계로 하고, 중간은 모두 빈 땅으로 비워둔다. 맹서의 글에 실려 있지 않은 곳, 토번의 병마가 있는 곳은 토번이 지키고, 중국의 병마가 있는 곳은 중국이 지켜서, 모두 현재 지키고 있는 곳을 따라 서로 침범하지 않기로 한다. 이전부터 병마가 없던 곳에는 새로 병마를 둘 수 없고 아울러 성채를 쌓고 농사지을 수 없다. 지금 두 나라의 장수와 재상들이 명령을 받들어 한 곳에 모여, 몸을 정결히 하고 제사지내면서 천지와 산천의 신령에게 고하니, 오로지 신령이 살피시어 그릇되고 위반함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맹서의 글은 종묘(宗廟)에 두고, 부본(副本)은 해당 관청에 두어, 두 나라의 결맹이 영원히 유지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결찬도 또한 맹서의 글을 꺼냈으나, 구덩이에 넣지 않고, 다만 희생만 묻고 그쳤다. 회맹을 마친 뒤, 결찬은 장일에게 청하기를, 단상의 서남쪽 귀퉁이에 있는 불상을 모신 천막에 들어가서 향을 살라 맹세하자고 했다. 맹세를 마친 뒤, 다시 단상에 올라 술을 마셨다. 술을 바치는 예절은 각기 상대방의 그릇을 사용함으로써 서로 후의를 보이고 돌아갔다. | 四年正月,詔張鎰與尚結贊盟于清水。將盟,鎰與結贊約,各以二千人赴壇所,執兵者半之,列於壇外二百步,散從者半之,分立壇下。鎰與賓佐齊映、齊抗及會盟官崔漢衡、樊澤、常魯、于頔等七人皆朝服;結贊與其本國將相論悉頰藏、論臧熱、論利駞、斯官者、論力徐等亦七人,俱升壇為盟。初約漢以牛,蕃以馬,鎰恥與之盟,將殺其禮,乃謂結贊曰:「漢非牛不田,蕃非馬不行,今請以羊、豕、犬三物代之。」結贊許諾。塞外無豕,結贊請出羝羊,鎰出犬及羊,乃於壇北刑之,雜血二器而歃盟。文曰:唐有天下,恢奄禹跡,舟車所至,莫不率俾。以累聖重光,歷年為永,彰王者之丕業,被四海之聲教。與吐蕃贊普,代為婚姻,固結隣好,安危同體,甥舅之國,將二百年。其間或因小忿,棄惠為讎,封疆騷然,靡有寧歲。皇帝踐祚,愍茲黎元,俾釋俘隸,以歸蕃落。蕃國展禮,同茲叶和,行人往復,累布成命。是必詐謀不起,兵車不用矣。彼猶以兩國之要,求之永久,古有結盟,今請用之。國家務息邊人,外其故地,棄利蹈義,堅盟從約。今國家所守界:涇州西至彈箏峽西口,隴州西至清水縣,鳳州西至同谷縣,暨劍南西山大渡河東,為漢界。蕃國守鎮在蘭、渭、原、會,西至臨洮,東至成州,抵劍南西界磨些諸蠻,大渡水西南,為蕃界。其兵馬鎮守之處,州縣見有居人,彼此兩邊見屬漢諸蠻,以今所分見住處,依前為定。其黃河以北,從故新泉軍,直北至大磧,直南至賀蘭山駱駝嶺為界,中間悉為閒田。盟文有所不載者,蕃有兵馬處蕃守,漢有兵馬處漢守,並依見守,不得侵越。其先未有兵馬處,不得新置,并築城堡耕種。今二國將相受辭而會,齋戒將事,告天地山川之神,惟神照臨,無得愆墜。其盟文藏于宗廟,副在有司,二國之成,其永保之。結贊亦出盟文,不加於坎,但埋牲而已。盟畢,結贊請鎰就壇之西南隅佛幄中焚香為誓。誓畢,復升壇飲酒。獻酬之禮,各用其物,以將厚意而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