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54, 당나라때-78 (19.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석 및 해설)

상 상 2014. 7. 16. 17:34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54, 당나라때-78 (19.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석 및 해설)

 

차례

 

1. 구당서 돌궐전

2. 구당서 고조본기

3. 구당서 태종본기()

4. 구당서 태종본기()

5. 구당서 고종본기()

6. 구당서 고종본기()

7. 구당서 동이열전

8.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당과의 관련부분)

9. 신당서 돌궐전

10. 신당서 고조본기

11. 신당서 태종본기

12. 신당서 고종본기

13. 신당서 동이열전

14. 신구당서 돌궐전 분석 및 해설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

16. 신구당서 태종본기 분석 및 해설

17. 신구당서 고종본기 분석 및 해설

18. 신구당서 동이열전 분석 및 해설

19.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석 및 해설

20.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

 

 

19.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석 및 해설

 

여기서 살펴보고자 하는 사항은 평양 함락에 대해서이다.

먼저 평양 함락과정이 담겨있는 삼국사기 고구려 보장왕 본기는 신구당서 고종본기와 신구당서 동이열전에 없는 내용들도 많이 있다. 이런 것들은 대개 통전같은 것에서 베낀 것으로 보이고 내용들은 대개 당나라의 우월감을 나타내는 내용들과 우리역사를 폄훼하는 내용들이다. 이렇게 중국 정사에도 없는 더러운 기사를 삼국사기에 마구 실음으로서 삼국사기가 사대주의에 빠졌다고 욕먹는 것이며 김부식도 사대주의자라고 욕먹는 것이다.

 

이제 평양함락 과정에 대해서 하나하나 살펴보자........

 

한때 당나라를 속국으로 삼았던 돌궐을 무너뜨린 당태종마저 고구려에 패해 부상을 입고 결국 죽을 만큼 고구려는 당시 동아시아의 최대 강국이었다.

그러한 강대국 고구려가 어떻게 망했는가?

 

다들 알다시피 내분 때문이었다. 고구려는 내분으로 망한 것이지 당나라의 힘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을 살펴볼 차례이다............

1) 666

연개소문이 죽자 장남인 남생이 막리지가 되었고,

국정을 살피려고 국내의 여러 성을 둘러보러 나가면서 국가권력을 동생인 남건, 남산에게 맡겼다.

 

이때에 간신들이 두 동생들에게 형인 남생이 두 동생을 제거하려고 하니 먼저 손을 쓰라고 충동질하였으나 두 동생들은 믿지 않았다.

 

한편 형인 남생쪽의 간신들도 두 동생들이 권력을 빼앗을까봐 형(남생)을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고 충동질 하자 형인 남생은 의심스러워 사람을 보내 평양을 살펴보게 하였는데 이것을 두 동생이 덮쳐 잡았다.

이래서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두 동생들은 형인 남생이 진짜로 자기들을 죽이려고 한다고 믿게 되었다.

 

이래서 내분이 현실화 되어 두 동생은 왕명으로 큰 형 남생을 불러들였으나 남생은 감히 돌아오지 못한다.

이렇게 되니 둘째인 남건이 스스로 막리지가 되어 큰 형 남생을 토벌하니 남생은 국내성으로 도망가

자기 아들 ()헌성을 당나라로 보내 군사적 지원을 요청한다.

 

이에 당 고종은 고구려에서 내분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리고

6월에 계필하력을 보내 ()남생을 맞이하니 남생이 당나라로 달아났다.

 

이렇게 되니

8월에 (보장)왕은 (둘째) 남건을 막리지로 삼아 서울과 지방의 군사의 일을 맡기고

9월에는 당 고종이 남생에게 고구려 공격의 임무를 부여한다.

이어서 12월에 이세적에게 군대를 주어 고구려 공격의 명령을 내린다.

이때 같이 보낸 인물들이 학처준, 방동선, 계필하력, 두의적, 독고경운, 곽대봉 등이다.

 

2) 667

9월에 이적이 신성을 함락시키니 그 휘하 16성이 모두 함락되고 계필하력을 시켜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방동선과 고간이 신성에 있었는데 연남건(막리지가 된 둘째)이 군사를 보내 그 진영을 습격하니,

설인귀가 이를 공격하여 깨뜨렸다.

고간이 금산(金山)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와 싸우다가 패하자,

고구려 군사는 이긴 기세를 타고 적을 추격하여 패주시켰으나,

설인귀가 군사를 이끌고 측면에서 공격하여 고구려 군사 5만 여 명을 죽이고,

남소[목저[창암[]의 세 성을 함락시키고 (고구려를 공격 중이던) 연남생 군사와 합하였다.

 

곽대봉은 수군을 데리고 평양으로 갔는데 보급선이 부서져 []대봉의 군사들이 굶주렸다

곽대봉은 이적에게 글을 보내 군량과 병장기를 보급받았다.

 

이때 당나라 관리 원만경이 격문을 지어 압록강의 험한 곳을 지킬 줄 모른다.”고 연남건에게 보내자

연남건(막리지가 된 둘째)이 이를 알아채고 군사를 옮겨 압록강 나루에서 웅거하니,

당나라 군사들이 건널 수 없었다.

학처준은 안시성 밑에서 고구려군의 기습을 받았으나 물리쳤다.

이렇게 1년간에 걸친 고구려 당나라의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3) 668

1, 당나라는 다시 유인궤에게 군대를 주어 고구려 공격을 시도한다.

이때 같이 보낸 인물이 학처준과 김인문(신라 문무왕의 동생)이다.

 

2월에 설인귀가 금산에서 고구려 군사를 깨뜨리고 이긴 기세를 타서 3천 명을 거느리고

부여성을 공격하여 부여성을 함락시키니 부여주(扶餘州) 안의 40여 성이 모두 항복한다.

 

이즈음 시어사 가언충(賈言忠)이 사신으로 왔다가 요동으로부터 돌아가니

당 고종이 군대 안은 어떠한가?” 하고 물으므로 [그가] 대답한다.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예전에 선제께서 죄를 물을 때에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적이 아직 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속담에 군대에 중매가 없으면 중도에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남생의 형제가 다투어 우리의 길잡이가 되었으므로 적의 진실과 허위를 우리가 모두 알고,

장수는 충성되며 군사는 힘을 다하기 때문에, 신이 반드시 이긴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또 고구려비기(高句麗秘記)900년이 되기 전에 마땅히 팔십(八十) 대장이 멸망시킬 것이다.고 하였는데,

고씨(高氏)가 한나라 때부터 나라를 세워 지금 900년이 되었고, 이적의 나이가 80입니다.

 

적은 거듭 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빼앗아 팔고, 지진이 나서 땅이 갈라지고,

이리와 여우가 성으로 들어가며, 두더지가 문에 구멍을 뚫고, 인심이 위태하여 놀라니,

이번 걸음으로 다시 거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연남건(막리지가 된 둘째)이 다시 군사 5만 명을 보내 부여성을 구하려고 하였으나,

이적 등과 설하수(薛賀水)에서 만나 어울려서 싸우다가 패하였다.

[]적은 대행성(大行城)으로 진격하였다.

 

9월에 이적이 이미 대행성에서 이기자, 다른 길로 나왔던 여러 군대가 모두 []적과 합쳐 진격하여

압록책(鴨淥柵)에 다달았다.

 

고구려 군사가 맞서 싸웠으나 []적 등이 이를 패배시키고,

200여 리를 쫓아와서 욕이성(辱夷城)을 함락시키니, 여러 성에서 도망하고 항복하는 자들이 이어졌다.

계필하력이 먼저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 밑에 이르니,

[]적의 군대가 뒤를 이어 와서 한 달이 넘도록 평양을 포위하였다.

 

보장왕은 연남산(셋째)을 보내 수령 98명을 거느리고 흰 기를 들고 []적에게 나아가 항복하였다.

그러나 연남건(막리지가 된 둘째)은 오히려 문을 닫고 항거하였다.

여기서 []남건은 군사의 일을 중 신성(信誠)에게 맡겼는데,

신성은 소장(小將) 오사와 요묘 등과 함께 몰래 []적에게 사람을 보내 내응하기를 청하였다.

 

5일이 지난 후 신성이 성문을 열어 당나라군이 성안으로 공격하니, 연남건(막리지가 된 둘째)은 스스로 찔렀으나 죽지 않았으며 왕과 연남건 등은 당나라 군사에게 사로잡혔다.

 

 

이것이 평양 함락의 전모이다.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당나라가 고구려를 이긴 것은 고구려의 내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증거가 시어사 가언충의 말이다.

 

당 고종이 가언충에게 전쟁의 승패에 대해서 묻자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하면서 그 이유가

예전에 선제(당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하였을 때 성공하지 못한 것은 적이 아직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나 지금은 남생의 형제가 다투어 당나라의 길잡이가 되었으므로 적의 진실과 허위를 우리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내분이 일어나 남생이 길잡이가 되어 고구려의 허실을 당나라가 모두 알기 때문에 당나라가 이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고구려는 내분으로 망했다.

내분도 이중 삼중의 내분이 일어나 망했다.

 

첫째는 남생 남건 남산 형제의 내분이며

둘째는 평양이 포위 당했을 때 보장왕과 남산이 남건을 배반하고 당나라에 항복한 것 내분이고

셋째는 중 신성이 이세적에게 내응하여 배반을 한 내분이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내분은 민족과 나라를 멸망시킨다.............

 

내분을 일어나지 않도록 각자가 올바른 행동을 해야하고

내분이 났더라도 국내에서 그쳐야지 외국으로 나가 외세를 끌어들여 자기 조국을 공격해서는 않된다.

 

왜 이런 형제간의 내분이 일어났을까?

여기서 되돌아 볼 일이 바로 10대 산상왕의 행위이다.

 

고구려 제9대 고국천왕이 죽었는데 아들이 없어 동생이 그 뒤를 이어야 했다.

그래서 둘째인 발기는 당연히 자기가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국천왕의 왕후이자 발기의 형수인 우씨는 자기의 지위를 보전을 위하여 밤에 발기에게 찾아갔다가

발기가 여자가 밤에 남자를 찾았다고 무안을 주자 셋째인 연우에게 찾아가 자신을 부탁하니 연우는 왕위를 차지할 욕심으로 형수와 야합하고 다음날 아침 왕후이며 형수인 우씨가 연우를 왕으로 세웠다.

이가 바로 10대 산상왕이다. 이에 형인 발기는 산상왕을 공격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공손도에게 도망가 군사를 요청해 자기 조국 고구려를 공격한 일이 있었다.(물론 실패하였다)

 

이렇게 고구려 역사에 동생이 형을 내쫒고 왕위와 권력을 차지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남생 남건 남산 형제 사이에 서로 의심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고 결국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다시말해서 고구려 멸망의 근본적 원인은 산상왕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산상왕의 잘못된 행동이 남생 남건 남산 형제의 내분을 가져왔고

남생 남건 남산 형제의 내분이 고구려 멸망을 가져온 것이다.

 

산상왕의 잘못된 행동은 우리민족에게 엄청나고 크나큰 상처를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