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52, 당나라때-76 (18. 신구당서 동이열전 분석 및 해설⑤)
차례
1. 구당서 돌궐전 2. 구당서 고조본기 3. 구당서 태종본기(상) 4. 구당서 태종본기(하) 5. 구당서 고종본기(상) 6. 구당서 고종본기(하) 7. 구당서 동이열전 8.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당과의 관련부분) 9. 신당서 돌궐전 10. 신당서 고조본기 11. 신당서 태종본기 12. 신당서 고종본기 13. 신당서 동이열전 14. 신구당서 돌궐전 분석 및 해설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 16. 신구당서 태종본기 분석 및 해설 17. 신구당서 고종본기 분석 및 해설 18. 신구당서 동이열전 분석 및 해설 19.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석 및 해설 20.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
18. 신구당서 동이열전 분석 및 해설⑤
일곱째, 기타 전쟁 전후의 기록
그 뒤에 나오는「정관 20년(646년)에 고려가 사신을 보내와 사죄를 하고, 아울러 두 미녀를 바쳤다.」는 구당서 동이전 기록도 이와같은 연장선에서 볼수 있다. 거짓이라는 말이다. 전쟁에서 이긴 전승국이 패전국에게 사죄를 하는 경우가 있는가? 개가 웃을 일이다. 그런데도 이런 기록이 중국 정사라는 사서에 버젓이 나오고 있다.
또한, 구당서 동이열전은 「정관 19년(645년)에 형부상서 장량을 평양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 장군 상하 등과 강(江)· 회(淮)· 영(嶺)· 협(硤)의 강한 군사 4만명· 전선(戰船) 5백척을 이끌고 내주(萊州)에서 바다를 건너 평양으로 향하게 하였다. 또 특진 영국공 이적을 요동도행군대총관으로 삼고, 예부상서 강하왕 (이)도종을 부총관으로 삼아서 장군 장사귀 등과 보병과 기병 6만을 이끌고 요동으로 나아가게 했다. 양군이 합세하도록 한 다음, 태종은 친히 6군(軍)을 거느리고 가서 [전군을] 합류하기로 했다.」는 기사와 신당서 동이열전 「태종은 낙양에 거동하여 장량을 평양도 행군대총관으로 삼고, 상하· 좌난당을 부총관으로, 염인덕· 유영행· 장문간· 방효태· 정명진을 총관으로 삼아서, 강(江)· 오(吳)· 경(京)· 낙(洛)에서 모은 군사 4만과 오(吳)의 전선(戰船) 5백척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평양으로 진격하게 하였다. 이적을 요동도행군대총관으로 삼고, 강하왕 도종을 부총관으로, 장사귀· 장검· 집실사력· 계필하력· 아사나미사· 강덕본· 국지성· 오흑달을 행군총관으로 삼아 예속시켜서, 기사(騎士) 6만을 이끌고 요동으로 진격하게 하였다. 」는 기사를 보면 수군이 4만, 육군은 6만을 처음 떠나보낸 것이고, 당태종은 따로 6군(軍:7만5천명)을 거느리고 가서 나중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즉, 장량의 수군과 이적의 육군을 먼저 보내고 당태종은 따로 6군을 거느리고 갔다. 이런 것을 보면 전체 17만 5천의 군사를 끌고 고구려를 침략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당태종이 도주하여 당나라로 돌아갔을 때 신당서 동이열전은「처음 떠날 적에는 병사가 1십만· 말이 1만 필이었다. 돌아올 때에는 사람은 겨우 1천명 죽었으나 말은 열에 여덟은 죽었다. 선사(船師)는 7만 명 중 역시 수백 명이 죽었다.」라고 되어 있어 처음 떠날 때 육군 10만, 선사(船師: 수군) 7만으로 수군에서 3만명, 육군에서 4만명이 차이난다. 그리고 당태종이 거느린 6군(軍:7만5천명)을 더하면 24만 5천으로 처음 떠날 때의 기록과 비교하면 7만명의 차이가 나서. 신구당서 동이열전이 스스로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이라고 증명하고 있다.
이와같이 중국 정사(正史)는 중국 정사에 의해 거짓 기록임을 증명할 수 있고, 따라서 중국 정사(正史)는 거짓과 사기로 얼룩진 엉터리 기록임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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