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중국의 관계-253, 당나라때-77 (18. 신구당서 동이열전 분석 및 해설⑥)
차례
1. 구당서 돌궐전 2. 구당서 고조본기 3. 구당서 태종본기(상) 4. 구당서 태종본기(하) 5. 구당서 고종본기(상) 6. 구당서 고종본기(하) 7. 구당서 동이열전 8.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당과의 관련부분) 9. 신당서 돌궐전 10. 신당서 고조본기 11. 신당서 태종본기 12. 신당서 고종본기 13. 신당서 동이열전 14. 신구당서 돌궐전 분석 및 해설 15. 신구당서 고조본기 분석 및 해설 16. 신구당서 태종본기 분석 및 해설 17. 신구당서 고종본기 분석 및 해설 18. 신구당서 동이열전 분석 및 해설 19.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석 및 해설 20.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
18. 신구당서 동이열전 분석 및 해설⑥
여덟째, 평양 함락과 그후의 상황
이렇게 고구려가 당태종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당나라는 정관 20년(646년), 정관 22년(648년), 영휘 6년(655년), 현경 3년(658년), 용삭 원년(661년)의 5차례에 걸쳐 고구려를 침략하였는데 전부 고구려가 승리하였다.
그런데 그 이후 우리 역사에 비극이 닥쳐왔다. 즉, 고구려에게 패하여 당태종은 죽고 당 고종이 그 뒤를 잇고 있었는데 연개소문이 죽었고 그 뒤에 그의 아들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맏형인 연남생이 아우들에게 쫒겨나 국내성에 웅거하고 그의 아들 연헌성을 당나라에 보내 군대를 요청하였다. 이렇게 돌궐의 경우처럼 고구려에서 내분이 일어나자 당나라는 대대적으로 군대를 보내고 남산을 압잡이 세워 평양을 함락하였던 것이다. 고구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았기 때문에 고구려에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668년(총장 원년)이다.
이후 고구려 유민들과 신라가 힘을 합쳐 당나라와 싸우니, 「의봉 연간(676∼678년)에 고종은 고장(高藏: 보장왕)에게 개부의동삼사 요동제독을 제수하고 조선왕에 봉하여, 안동에서 살며 본번(本蕃)을 진무하는 (군)주(主)로 삼았다.」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고구려가 조선이라는 사실이다. 고구려 유민들이 들고 일어나 당나라 군대와 싸우니 보장왕을 또다시 고구려 왕이라는 못하고 조선왕으로 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구려 왕이라고 하면 또다시 고구려가 살아나니 고구려왕이라고는 못한 것이다. 그대신 고구려의 그 이전 이름인 조선의 왕이라고 한 것이다. 다시말해서 당나라 사람들은 고구려가 그 이전에는 조선이었음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조선이란 우리들이 말하는 고조선이다) 즉, 고구려가 고조선(조선)을 이은 나라이며 고조선(조선) 사람이 바로 고구려 사람임을 당나라 사람들이 증명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 이후에 또다시 「수공 2년(686년)에 또 고장(高藏: 보장왕)의 손자 고보원을 조선군왕으로 봉하였다」는 기록으로 다시한번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고구려 유민의 줄기찬 투쟁과 당나라 군에 대한 신라의 반격으로 668년 12월 평양에 설치하였던 안동도호부를 옛 요동성으로 옮기더니(상원 3년, 676년 2월) 다시 신성으로 옮겼다.(의봉 2년, 677년) 그 다음 또다시 평주로 옮기고(개원 2년, 714년), 다시 요서 옛 군의 성에 옮겨 설치하더니(천보 2년, 743년) 결국 지덕(756~758년) 후에 폐지하고 말았다.
이렇게 고구려 유민과 신라 연합군의 힘으로 안동도호부는 옮겨졌고 그 이후 결국 폐지되었던 것이다.
※평양 함락과 그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더욱 자세히 분석한 글을 올릴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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