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년 (AD 44) : 민중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민중왕(閔中王)은 이름이 해색주(解色朱)이고 대무신왕의 아우이다.
대무신왕이 죽었으나 태자가 어려서 정사를 맡아볼 수 없었다.
이리하여 나라 사람들이 [그를] 추대하여 [왕으로] 세웠다.
겨울 11월에 크게 사면하였다.
2 년 (AD 45) : 동쪽 백성들이 굶주리자 진휼하였다.
[번역문]
2년(서기 45) 봄 3월에 여러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여름 5월에 나라 동쪽에 홍수가 나서 백성들이 굶주리자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
3 년 (AD 46) : 11월에 살별이 남쪽에 나타났다
[번역문]
3년(서기 46) 가을 7월에 왕은 동쪽으로 사냥나가 흰 노루를 잡았다.
겨울 11월에 살별[星孛]이 남쪽에 나타났다가 20일만에야 없어졌다.
12월에 서울에 눈이 내리지 않았다.
4 년 (AD 47) : 여름 4월에 왕은 민중원에서 사냥하였다.
[번역문]
4년(서기 47) 여름 4월에 왕은 민중원(閔中原)에서 사냥하였다.
가을 7월에 또 사냥하다가 석굴을 보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내가 죽으면 반드시 이곳에 장사지낼 것이며, 절대로 새로 능묘(陵墓)를 짓지 말라.”
9월에 동해 사람 고주리(高朱利)가 고래를 바쳤는데 [고래의] 눈이 밤에 빛이 났다.
겨울 10월에 잠지락부(蠶支落部)의 대가(大家) 대승(戴升) 등 1만여 가(家)가 낙랑으로 가서 한나라에 투항하였다.
<후한서(後漢書)에는 『대가(大加) 대승(戴升) 등 만여 구(口)』라고 하였다.>
5 년 (AD 48) : 왕이 죽어 석굴에 장사지냈다.
[번역문]
5년(서기 48)에 왕이 죽었다.
왕후와 여러 신하들이 유명(遺命)을 어기기 어려워 석굴에 장사지내고 왕호를 민중왕이라고 하였다.
=========================================================================
1) 제4대 민중왕은 재위 5년이라 짧습니다.
먼저 민중왕을 나라사람들이 추대하여 왕으로 세웠다는 기록이 눈에 띕니다.
이 기록으로 고구려는 왕을 나라사람들이 추대하는 제도가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런 제도는 나중에 몽고의 원나라에서도 있었고 초기 청나라에서도 있었습니다.
2) 또, 여기서 민중왕의 이름이 눈에 띄입니다.
‘해색주(解色朱)’ 이 이름은 원래 고구려가 부여에서 나올 때 부여 임금 이름이 해부루(解夫婁)이니
무엇인가 연관관계가 있을 듯한데 그 관계를 밝힐수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3) 다음, 왕호를 민중원 석굴에 묻었다고 해서 ‘민중왕’ 이라고 했다는 기록은 앞으로도 많이 나옵니다.
즉, 왕이 죽어 묻은 곳을 왕의 이름으로 하는 고구려의 관습이 여기 민중왕부터 시작됩니다.
'고구려 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구려 제6대 태조대왕(太祖大王)- 1 (0) | 2011.11.24 |
|---|---|
| 고구려 제5대 모본왕 본기 (0) | 2011.11.23 |
| 삼국사기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대주류왕)- 5 (0) | 2011.11.21 |
| 삼국사기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대주류왕)- 4 (0) | 2011.11.20 |
| 삼국사기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대주류왕)- 3 (0) | 2011.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