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대주류왕)- 4

상 상 2011. 11. 20. 21:51

13 년 (AD 30) : 매구곡사람 상수와 동생 위수가 항복해 왔다.

[번역문]

13년(서기 30) 가을 7월에 매구곡(買溝谷) 사람 상수(尙須)가 그 동생 위수(尉須) 및 사촌 동생 우도(于刀)와 함께 항복해 왔다.

 

14 년 (AD 31) : 11월에 천둥이 쳤으나 눈은 내리지 않았다.

[번역문]

14년(서기 31) 겨울 11월에 천둥이 쳤으나 눈은 내리지 않았다.

 

15 년 (AD 32) : 구도, 일구, 분구 등을 서인으로 삼았다.

[번역문]

15년(서기 32) 봄 3월에 대신 구도(仇都)·일구(逸苟)·분구(焚求) 등 세 사람을 쫓아내어 서인으로 삼았다.

 

이 세 사람은 비류부장(沸流部長)이 되었는데 바탕이 욕심많고 야비하여 남의 처첩, 우마, 재화를 빼앗아 마음대로 하고,

주지 않는 자에게는 채찍질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분하고 원망스럽게 여겼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을 죽이려 하였으나, 동명왕의 옛 신하들이었으므로 차마 극형에 처하지 못하고 내쫓아버렸을 뿐이다.

마침내 남부(南部) 사자(使者) 추발소(鄒㪍素)를 대신 부장으로 삼았다.

[추]발소는 부임하여 별도로 큰 집을 짓고 거처하였는데, 구도 등이 죄인이었으므로 당(堂)에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구도 등이 앞에 나와 고하였다.

“저희들은 소인이어서 왕법을 범하여 부끄럽고 후회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공께서는 잘못을 용서하시고, 개과천선할 수 있게 해 주시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추]발소는 그들을 이끌어 올려, 같이 앉아 “사람이 잘못이 없을 수 없습니다.

잘못하여도 고칠 수 있으면 선(善)함이 매우 큰 것입니다.”고 말하고, 그들과 더불어 친구가 되었다.

구도 등이 감격하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악을 행하지 않았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추]발소가 위엄을 쓰지 않고 지혜로써 악을 징계하니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고는

성(姓)을 주어 대실씨(大室氏)라고 하였다.

 

여름 4월에 왕자 호동(好童)이 옥저(沃沮)로 놀러 갔을 때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가 나왔다가 그를 보고서 묻기를

“그대의 안색을 보니 비상한 사람이구나. 어찌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겠는냐?”

하고는 마침내 함께 돌아와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후에 호동은 귀국하여 몰래 사람을 보내 최씨 딸에게 말하였다. “만약 너의 나라의 무기고에 들어가 북과 뿔피리를 찢고 부수면

내가 예로써 맞이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절할 것이다.”

 

이에 앞서 낙랑에는 북과 뿔피리가 있어서 적의 군사가 침입하면 저절로 울었으므로 명령을 내려 격파하였다.

이리하여 최씨 딸이 날 선 칼을 가지고 몰래 창고에 들어가 북의 [가죽]면과 뿔피리의 주둥이를 찢고 [부순 후] 호동에게 알렸다.

 

호동은 왕에게 권하여 낙랑을 치게 하였다. 최리는 북과 뿔피리가 울리지 않았으므로 대비하지 않다가,

우리 군사가 갑자기 성 밑에 다다른 연후에 북과 뿔피리가 모두 부서진 것을 알고 마침내 딸을 죽이고는 나와서 항복하였다.

 

<다른 기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낙랑을 멸하려고 혼인을 청해서 그 딸을 데려다 며느리로 삼은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서 무기를 부수게 하였다.』>

 

겨울 11월에 왕자 호동은 자살하였다.

호동은 왕의 둘째 부인인 갈사왕의 손녀가 낳은 사람이다. 얼굴 모습이 아름다워 왕이 심히 사랑하여 호동이라고 이름 지었다.

 

첫째 왕비는 [그가] 계승권을 빼앗아 태자가 될까 염려하여 왕에게

“호동이 저를 예로써 대접하지 않으니 아마 저에게 음행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고 참언하였다.

 

왕은 “당신은 남의 아이라고 해서 미워하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왕비는 왕이 믿지 않는 것을 알고, 화가 장차 자신에게 미칠까 염려하여 울면서 “청컨대 대왕께서는 몰래 살펴주십시요.

만약 이런 일이 없다면 첩이 스스로 죄를 받겠습니다.”고 고하였다.

 

이리하여 왕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호동에게] 죄주려 하였다.

어떤 사람이 호동에게 “당신은 왜 스스로 변명하지 않느냐?” 하고 물었다.

 

[호동은] 대답하였다.

“내가 만약 변명을 하면 이것은 어머니의 악함을 드러내어 왕께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이것을] 어떻게 효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칼에 엎어져 죽었다.

 

사론(史論): 이제 왕이 참소하는 말을 믿고 사랑하는 아들을 죄없이 죽였으니, 그가 어질지 못한 것은 족히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호동도 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들을 때에는

마땅히 순(舜)이 고수(瞽瞍)에게 하듯이 하여, 회초리는 맞고 몽둥이면 달아나서, 아버지가 불의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호동이 이렇게 할 줄 모르고 마땅하지 않은 데서 죽었으니, 작은 일을 삼가는 데 집착하여 대의에 어두웠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공자(公子) 신생(申生)에게 비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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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여기서는 ‘구도, 일구, 분구’ 라는 세 사람의 전횡과 처벌사건 그리고 지혜로운 ‘추발소’라는 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2) 그러나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입니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는 우리민족이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인데

여기 삼국사기에 정사로 나와 본인도 이 부분을 처음 읽을 때 놀랐습니다.

‘호동왕자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로구나!...’하고 말입니다.

 

호동왕자는 낙랑을 멸하는데 공을 세우지만, 비극적으로 생을 마칩니다.

유리왕 때 둘째 왕자로써 태자가 된 해명을 아버지인 유리왕이 자결시킨 이래 또다시 왕자가 비극적으로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나오는 ‘사론’은 삼국사기의 작자 김부식이 쓴 것입니다.

 

3) 본문에 보면 남부(南部)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에 대해서 설명드립니다

고구려는 5부로 구성되어있는데 5부를 방향으로 말하면 동,서,남,북,중(東,西,南,北,中)

즉,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東部, 西部, 南部, 北部, 中部) 이렇게 불렀습니다.

 

다른말로 하면 전,후,좌,우,중(前,後,左,右,中) 즉 전부 후부 좌부 우부 중부(前部, 後部, 左部, 右部, 中部)로도 불렀습니다.

이것은 평상시에는 부락의 명칭이나 전쟁시에는 전투대형입니다.

이러한 예는 고구려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이것을 본받아 중국 북방민족의 여러나라에서도 썼습니다.

 

4) 역시 고구려 5부의 고유의 명칭에 대해서는 단재 선생 말씀인 ‘조선상고사’에서 인용합니다.

전국을 동·서·남·북·중 5부(部)로 나누어

동부는 `순라', 남부는 `불라', 서부는 `열라',

북부는 `줄라', 중부는 `가우라'라 하니,

순나(順那)· 관나(灌那)· 연나(椽那)· 절나(絶那)· 계안나(桂安那)는

곧 `순라·불라·열라·줄라·가우라'의 이두자인데,

관나의 `관(灌)'은 뜻을 취하여 `불(灌은 본래 부을관)'로 읽을 것이고,

그 별명인 `비류나(沸流那)'의 비류(沸流)는 음을 취하여 `불'로 읽을 것이니,

지나사의 `관나(灌那)'는 곧 고구려의 이두자를 직접 수입한 것인데,

삼국사기에는 관(灌)을 관(貫)으로 고쳐 그 뜻을 잃었다.

그 밖의 순(順)· 연(涓)· 절(絶)· 계(桂)의 네 나(那)는 모두 음을 취하여

이두문자로 쓴 것이다.

(※ 단재선생은 방향을 시계방향 순서로 읽고 있음에 유의)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동부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읽음)

구분

동부

남부

서부

북부

중부

명칭

순라

불라

열라

줄라

가우라

이두자

순나(順那)

관나(灌那)

연나(椽那)

절나(絶那)

계안나(桂安那)

삼국지

순노부(順奴部)

관노부(灌奴部)

연노부(灌奴部)

절로부(絶奴部)

계루부(桂婁部)

 

즉, 남부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명칭으로는 관나부이고 삼국지에 나오는 명칭으로는 관노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