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구삼국사(동명왕편)와 위서의 비교(끝)

상 상 2011. 11. 4. 08:58

내용 5: 주몽의 부여탈출 과정과 고구려 건국

구삼국사,舊三國史(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위서((魏書)

가만히 세 어진 벗을 맺으니 / 暗結三賢友

그 사람들 모두 지혜가 많았다 / 其人共多智

 

오이(烏伊)ㆍ마리(摩離)ㆍ협보(陜父) 등 세 사람이었다.

남쪽으로 행하여 엄체수에 이르러 / 南行至淹滯

 

일명 개사수(蓋斯水)인데 지금의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

건너려 하여도 배가 없었다 / 欲渡無舟艤

 

건너려 하나 배는 없고 쫓는 군사가 곧 이를 것을 두려워하여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개연히 탄식하기를,

“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지금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황천과 후토(后土)는 나 고자(孤子)를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배와 다리를 주소서.”하고,

말을 마치고 활로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가 나와 다리를 이루어 주몽이 건넜는데 한참 뒤에 쫓는 군사가 이르렀다.

 

채찍을 잡고 저 하늘을 가리키며 / 秉策指彼蒼

개연히 긴 탄식을 발한다 / 慨然發長喟

천제의 손자 하백의 외손이 / 天孫河伯甥

난을 피하여 이곳에 이르렀소 / 避難至於此

불쌍한 고자의 마음을 / 哀哀孤子心

황천 후토가 차마 버리시리까 / 天地其忍棄

활을 잡아 하수를 치니 / 操弓打河水

고기와 자라가 머리와 꼬리를 나란히 하여 / 魚鼈騈首尾

높직이 다리를 이루어 / 屹然成橋梯

비로소 건널 수 있었다 / 始乃得渡矣

조금 뒤에 쫓는 군사 이르러 / 俄爾追兵至

다리에 오르니 다리가 곧 무너졌다 / 上橋橋旋圮

 

쫓아온 군사가 하수에 이르니 고기와 자라가 이룬 다리가 곧

허물어져 이미 다리에 오른 자는 모두 빠져 죽었다.

 

한 쌍 비둘기 보리 물고 날아 / 雙鳩含麥飛

신모의 사자가 되어 왔다 / 來作神母使

 

주몽이 이별할 때 차마 떠나지 못하니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어미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하고 오곡 종자를 싸 주어 보내었다.

주몽이 살아서 이별하는 마음이 애절하여 보리 종자를 잊어버리고 왔다.

주몽이 큰 나무 밑에서 쉬는데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왔다.

주몽이,“아마도 신모(神母)께서 보리 종자를 보내신 것이리라.”하고, 활을 쏘아 한 화살에 모두 떨어뜨려 목구멍을 벌려 보리 종자를 얻고 나서 물을 뿜으니 비둘기가 다시 소생하여

날아갔다.

 

형세 좋은 땅에 왕도를 개설하니 / 形勝開王都

산천이 울창하고 높고 컸다 / 山川鬱嶵巋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 自坐茀蕝上

대강 군신의 위차를 정하였다 / 略定君臣位

 

왕이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대강 임금과 신하의 위차를 정하였다.

주몽은 이에 오인 오위(烏引·烏違) 등 두 사람과 함께 부여를 버리고 동남쪽으로 도망하였다.

 

중도에서 큰 강을 하나 만났는데, 건너려 하여도 다리는 없고, 부여 사람들의 추격은 매우 급박하였다. 주몽이 강에 고하기를,

 

“나는 태양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길에 추격하는 군사가 바짝 쫓아오니, 어떻게 하면 건널 수 있겠는가?” 하자, 이 때에 고기와 자라가 함께 떠 올라와 그를 위해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주몽이 건넌 뒤

고기와 자라는 금방 흩어져버려

추격하던 기병들은 건너지 못하였다.

 

주몽은 마침내 보술수(普述水)에

이르러 우연히 세 사람을 만났는데,

한 사람은 삼베 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무명 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부들로 짠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주몽과 함께 홀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러 마침내

정착하고 살면서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인하여

성을 고씨(高氏)라 하였다.

  

 

 

 

 

 

 

 

 

 

 

 

 

 

내용 5「주몽의 부여탈출 과정과 고구려 건국」의 비교

 

1) 구삼국사에 나오는 오이(烏伊)를 위서에서는 오인 오위 두 사람으로 잘못 기록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2) 또한 오이(烏伊)ㆍ마리(摩離)ㆍ협보(陜父) 등 세 사람을 위서에서는 오인 오위(烏引·烏違) 등 두 사람으로

   혹은 한 사람으로 잘못 기록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3) 이러한 위서 기록의 부정확성 때문에 삼국사기는 이 부분을 기술할 때,

   전체적으로는 위서를 그대로 재단(오려 붙이기)하여 편집하였지만

   세 사람의 이름은 구삼국사를 채택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하였음을 볼 수 있다.

 

4) 이러한 사실은 삼국사기가 이 부분을 기록할 때 비록 위서를 따르기는 하였지만

   원본은 구삼국사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지명인 「개사수」도 마찬가지이다. 구삼국사에서는 강의 명칭이 「개사수」라고 명확하게 되어 있지만

   위서는 그저 「큰 강」이라고만 되어 있어 불분명하다.

 

  이렇게 한쪽은 기록이 명료하고 다른 쪽은 불명확함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어느쪽이 원본인가?

  바로 기록이 분명한 쪽이 원본이라고 말할 수있다.

 

  따라서 구삼국사가 고구려 시조 이야기의 원본이며 위서는 고구려 시조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전언문(傳言文),

  내지는 파생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6) 구삼국사에서는 “ 나는 천제의 손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반해서 위서는 “나는 태양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도 위서가 전언문(傳言文)임을 알수 있는 증거이다.

   구삼국사를 보면 천제의 아들이 해모수이고, 해모수의 아들이 주몽이다. 따라서 주몽은 천제의 손자이다.

   따라서 구삼국사의 기록이 옳다.

 

그런데 위서는 이러한 주몽의 내력을 모르기 때문에 “태양이 비추어 주몽을 잉태했다”는 말만 전해듣고

드디어 태양의 아들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위서는 고구려 시조의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전해듣고 기록한 전언문(傳言文)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7)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구삼국사는 다음과 같이 8개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1「 해부루와 금와 이야기, 부여의 동천」

내용 2「금와왕과 유화의 만남」

내용 3「주몽의 탄생과 어린시절」

내용 4「대소의 투기와 주몽의 부여탈출 원인」

내용 5「주몽의 부여탈출 과정과 고구려 건국」

내용 6「송양과의 만남과 겨룸 그리고 송양의 항복」

내용 7「성곽과 궁실지음, 주몽 사망」

내용 8「유리왕의 어린시절 일화 및 태자책봉」

 

그런데 위서는 이중에서 3,4,5의 세가지만 있다.

따라서 위서는 구삼국사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기록의 구체성 및 정확성으로 볼때 위서는 구삼국사의 이야기가 전달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구삼국사가 원본이고 위서는 일부 전언문(傳言文), 혹은 일부 전달문(傳達文), 또는 파생문이라고 할 수 있다.

 

8) 삼국사기를 볼수 있는 싸이트: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동명왕편을 볼수 있는 싸이트: 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ndex.jsp?bizName=MK

   위서를 볼수 있는 싸이트: http://db.history.go.kr/url.jsp?ID=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