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위만조선(3) - 사기 조선열전(3)

상 상 2011. 3. 21. 19:28

7)○ 천자(天子)는 양장군(兩將軍)의 전세(戰勢)가 유리하지 않다고 여기고,

위산(衛山)으로 하여금 군사의 위엄을 갖추고 가서 우거(右渠)를 달래게 하였다.

 

우거는 사자(使者)를 보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기를,

“항복하기를 원하였으나 양(兩)장군이 신을 속여서 죽일까 두려워했는데,

이제 신절(信節)을 보았으니 항복하기를 청합니다.”

하고, 태자를 보내 들어가 사죄하게 하고,

말 5천필을 바침과 아울러 군량미(軍糧米)를 내주었다.

 

무리 만여인(萬餘人)이 무기를 지니고 막 패수(浿水)를 건너려 할 때

사자(使者)와 좌장군은 그들이 변을 일으킬까 두려워 태자에게 말하기를,

“이미 항복했으니 사람들에게 병기를 버리라고 명(命)하시오.” 라고 하였다.

태자도 역시 사자와 좌장군이 자기를 속이고 죽일까 의심하여 끝내

패수를 건너지 않고 사람들을 이끌고 돌아가버렸다.

 

[위(衛)]산(山)이 돌아와 천자께 보고하니 천자는 산(山)을 주살(誅殺)하였다.

 

 

8)○ 좌장군이 패수(浿水) 위의 군사를 격파하고 전진하여

[왕검(王險)]성(城) 아래 이르러 서북쪽을 포위했다.

누선(樓船)[군(軍)]도 또한 가서 합세하여 성의 남쪽에 주둔하였다.

 

우거가 끝내 성을 굳게 지키므로 몇 달이 되어도 함락시킬 수 없었다.

 

좌장군은 본시 시중(侍中)으로 천자의 총애를 받고 있는 데다가

연(燕)과 대(代)지방의 군사를 거느렸으므로 굳세었는데,

싸움에 이긴 기세를 타고 군사들이 더욱 교만해졌다.

 

누선[장군]은 제(齊)나라 병사들을 이끌고 바다로 출병하였으나,

이미 여러번 싸움에 패하고 군사를 잃었으며,

앞서 우거와의 싸움에서 곤욕을 치른 패잔한 군사들이라 군사들은 모두 두려워 하고

장군은 부끄럽게 여겨 우거를 포위하고도 항상 화평을 유지했다.

 

 

9)○ 좌장군이 맹렬히 성을 공격하니,

조선대신(朝鮮大臣)들은 몰래 사람을 보내 사사로이 누선[장군]에게 항복을 약속했으나,

말만 오고 갈 뿐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좌장군은 여러 차례 누선과 싸울 시기를 정하였으나

누선은 [조선(朝鮮)과의] 약속을 급히 이루려고 싸움에 나가지 않았다.

 

좌장군 또한 사람을 보내 조선이 항복해 올 때를 탐문하였으나,

조선은 이를 반기지 않고 누선쪽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로 인해 양(兩)장군은 서로 반목하게 되었다.

좌장군은 마음속으로 ‘누선은 전에 군사를 잃은 죄가 있는 데다가

지금은 조선과 사사로이 잘 지내고 있으며, [조선] 또한 항복하지 않으니

반계(叛計)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 하였으나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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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국정사 조선전 중 사기 조선열전(국사편찬위원회)

중국정사 조선전: http://db.history.go.kr/url.jsp?ID=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