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소개한 ‘고조선 력사개관’을 보면 북한에서는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사대주의자들 때문이다.
『사대주의 사상에 물젖어 있던 조선의 봉건사가들은
중국에서 어진 사람으로 이름난 《기자 》가 조선에 와서
단군조선을 뒤이은 후조선 국가를 세우고 조선을 문명하게 해주었다고 하면서
그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1102년(고려 숙종 7년)에는 국왕이 평양에서 그의 무덤을 찾아내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그 후 《기자묘》를 만들고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2) 위작으로 인한 것이다.
『기자가 《조선에 갔다》는 것은 중국 봉건사가들의 위작에 불과하다.
중국 봉건사가들은 흔히 주변나라와 지역의 시조, 우두머리들이
중국에서 간 사람들이라고 꾸며대기를 좋아했다.
례컨대 흉노의 시조라는 순유는 하 나라 걸왕의 후손이고
서융은 하 나라 말기에 이주해간 사람들이라 하며
또 선비족의 조상은 유웅씨의 후손이고
서강의 조상은 유우씨의 후손이라고 하며
또 왜의 조상은 오 나라 태백의 후손이라고 한 것 등이다.
《기자 조선설》(《기자 동래설》)은 이처럼 허무맹랑한 것이다.
그런데 리조 말기까지 조선의 봉건 사기들은 사대주의적 립장에서
기자와 관련된 각종 허구를 만들어냈으며,
거기에 그 어떤 력사적 사실의 편린이라도 있는가 하고 생각한 사람들은
기자의 후손이 조선 땅에 왔던 일이 있지 않는가고 머리를 기웃거렸다.
또 다른 나라의 일부 학자들은 오늘도 기자와 관련된 위작, 날조된 기록들을
수많이 인용함으로써 《기자조선》이 있었던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허구 우에 또 허구를 쌓는 부질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후조선은 조선 사람 자신에 의하여 세워진
단군조선의 계승국이며 기자가 생존하였던 기원전 12~11세기보다도
훨씬 앞서 세워진 나라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후조선을 일명《기자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부당하며 완전한 날조이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위만조선(2) - 사기 조선열전(2) (0) | 2011.03.21 |
|---|---|
| 위만조선(1) - 사기 조선열전(1) (0) | 2011.03.21 |
| 기자조선의 허구성에 대한 북한의 설명 (0) | 2011.03.18 |
| 기자조선의 허구성에 대한 단재선생의 말씀 (0) | 2011.03.15 |
| 기자조선의 허구성(2) (0) | 2011.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