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유적의 부재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A%B8%B0%EC%9E%90%EC%A1%B0%EC%84%A0
1102년(고려 숙종 7년)에 고려의 왕이 평양에서 기자의 무덤을 찾아내고
기자묘와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그 외에도 정전(井田)과 같은 기자와 관련된 유적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실제 고고학 조사 결과 이들 유적은 모두 고려·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준왕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익산의 무강왕릉이 나타나는데, 이 무덤은 실제 발굴 결과
백제의 무덤 양식으로 만들어진 것임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또한 황하 유역과 요하 동쪽 지방의 신석기·청동기 문화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도 주요한 논점이다.
중국의 청동기와 고조선 영역인 랴오닝(요녕) 성 및 한반도의 청동기는
양식이 전혀 다르며 성분 또한 크게 다르다.
기자가 상나라의 왕족으로 조선의 왕이 되었다면
상나라와 관계가 있는 청동 유물 등이 나타나야 하나
실제 고고학 발굴 결과는 두 지역 사이에 문화가 크게 다르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기자조선의 허구성에 대한 북한의 설명 (0) | 2011.03.18 |
|---|---|
| 기자조선의 허구성에 대한 단재선생의 말씀 (0) | 2011.03.15 |
| 기자조선의 허구성 (0) | 2011.03.11 |
| 세종실록 지리지에 있는 단군 이야기 (0) | 2011.03.10 |
| 단군 조선의 유물 유적 증거(2) (0) | 2011.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