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조선설이란 기자가 고조선에 왕으로 봉해져서( 고조선의 왕이 되어) 고조선을 다스렸다는 설이다
이것의 근거는 무엇일까?
사서로서는 사기 송미자 세가에 나오는 기록 딱 한 줄과
사서가 아닌 것으로는 상서대전에 나오는 기록 뿐이다.
그 이외의 기록은 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삼은 것이다.
사기 송미자 세가에 나오는 기록을 보면 이렇다.
『그래서 무왕은 기자를 조선(朝鮮)에 봉하고 신하로 여기지 않았다.』
원문) 於是武王乃封箕子於朝鮮而不臣也。
그런데 송미자 세가에 나오는 이 글귀 앞의 내용을 보면
주 무왕이 은(殷)을 멸한 후에 기자를 방문하여 하늘의 상도를 실현시키는 방법을 물으니
기자가 그 대답으로 홍범구주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무왕은 기자를 조선(朝鮮)에 봉하고 신하로 여기지 않았다’고 하고 있다.
하늘의 도를 묻고 대답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구를 어디에 왕으로 봉했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두 사람의 언행을 보았을때 앞뒤가 맞지 않는 기록이다.
그 다음 상서대전의 내용을 보면 더욱 엉터리이다.
『은나라를 이긴 무왕이 옥에 갇혀 있는 기자를 놓아주니,
기자는 주 나라에 의하여 석방된 것을 감수할 수 없어서 조선으로 도망가니,
무왕은 그 소식을 듣고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
원문) 武王勝殷繼公子祿父釋箕子之囚 箕子不忍爲周之釋 走之朝鮮 武王聞之 因爲朝鮮封之
기자가 조선으로 달아나니까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것인데
남의 나라로 도망 간 사람을 남의 나라 왕으로 봉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면 한국사람이 중국으로 도망가니 중국의 왕으로 봉했다는 말도 성립하는가?
한국사람이 미국으로 도망가니 미국 대통령으로 임명하면 미국 대통령이 되는가?
상서대전의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말도 되지 않는 말)이다.
따라서 이 이후에 나온 사서를 보면 위의 두 기록을 바르게 고쳐 쓰고(정정) 있음을 볼 수 있다.
첫째, 한서지리지(漢書 地理志)를 보면
『은나라가 쇠퇴하자 기자는 조선으로 가
그 사람들에게 예의, 농사, 양잠 그리고 길쌈을 가르쳤다.』
원문) 殷道衰,箕子去之朝鮮,教其民以禮義,田蠶織作。
이렇게 되어 있다. 따라서 조선에 왕으로 온 게 아니라 조선으로 그냥 간 것이다.
망명한 것이다. 개인 자격으로 망명해온 망명객일 뿐이다.
따라서 기자가 왕이 되어 온 것이 아니니 기자조선이란 거짓말이다.
둘째,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을 보면,
『옛날 기자가 쇠망하는 은나라의 운수를 피하여 조선 땅에 피난하였다.』
원문) 昔箕子違衰殷之運, 避地朝鮮.
이렇게 더욱 자세하게 나와있다.
명백하게 기자는 조선 땅에 피난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자는 조선 땅에 피난 온 것이지 왕으로 온 게 아니다.
기자는 피난민으로 조선에 온 것이다.
따라서 기자조선이란 거짓말이다.
셋째, 삼국지(三國志)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에도
『일찍이 기자가 조선에 가서 8조의 교훈을 만들어 그들을 가르치니...』
원문)昔箕子既適朝鮮,作八條之教以教之,
이렇게 조선에 그냥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기자가 조선에 왕으로 갔다는 기자조선설은 허구다.
넷째, 북사 열전에도
『기자가 조선으로 피하여 가고부터는 비로소 팔조의 금법을 두니...』
원문) 曁箕子避地朝鮮, 始有八條之禁,
이렇게 기자가 조선으로 피하여 갔다고 했다.
즉, 피난 간 것이다. 기자는 조선으로 피난민으로 간 것이지,
왕으로 간 것이 아니다.
따라서 조선의 왕이 되었다는 기자조선설을 거짓말이다.
다섯째, 수서 동이열전에도
『기자가 조선으로 피하여 가고부터는 비로소 팔조의 금법을 두니...』
원문) 曁箕子避地朝鮮, 始有八條之禁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기자는 조선으로 피난 간 것이다.
따라서 기자가 조선의 왕으로 갔다는 기자조선설은 가짜이며 허구이다.
이상의 중국정사 기록을 종합하여 보면 기자조선은 거짓말이며 허구임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기자조선의 허구성에 대한 단재선생의 말씀 (0) | 2011.03.15 |
|---|---|
| 기자조선의 허구성(2) (0) | 2011.03.14 |
| 세종실록 지리지에 있는 단군 이야기 (0) | 2011.03.10 |
| 단군 조선의 유물 유적 증거(2) (0) | 2011.03.08 |
| 단군 조선의 유물, 유적 증거(1) (0) | 2011.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