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자조선의 허구성에 대한 북한의 설명

상 상 2011. 3. 18. 19:23

북한에서는 기자조선을 전설이며 낭설이고 위작이며 완전한 날조라고 말한다.

북한의 역사학 중심기관인 북한 사회과학원에서 발행하고 한국의 출판회사인 도서출판 중심이 2001년에 펴낸

‘고조선 력사개관’이라는 책을 보면 기자조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기자조선설에 대하여

 

『《기자 조선설》이란 중국 은나라의 왕족인 《기자(箕子)》라는 인물이 조선 땅에 피신해 와서

《나라를 세우고 조선을 문명개화하게 하였다》는 만들어낸 《전설》이다.

 

 

그런데 《고려사》와 《세종실록》 지리지들에서는 이 가공적인 《전설》을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

단군조선을 계승한 후조선을 《기자조선》이라고도 불렀다.』

 

 

 

2. 기자조선이 허구인 증거에 대하여

 

1) 문헌적 증거

『기자가 조선에 온 일에 없었다는 것은

우선 《기자의 무덤이 량국 몽현(오늘날 하남성 상구현)에 있다.》고 한

진나라 두여의 말에 의하여 (《사기집해》송세가의 주석)』

 

 

2) 유물 유적 증거

『그리고 평양 모란봉의 《기자묘》를 발굴한 결과 벽돌쪼각, 사기쪼각밖에 나온 것이 없었다는 사실에 의하여 중명된다.

 

 

기자가 조선에 온 일에 없었다는 것은 조선반도 서북지방에 은 나라(말기까지)의 문화유물이 전혀 나온 일이 없고

료동지방에도 거의 나온 일이 없다는 것으로써도 증명된다.

 

 

어떤 사람들은 기자조선이 료서지방에 있었다고 보지만

거기에도 중국 은 나라의 문화유물이 하나의 문화류형으로서 하나의 문화종태를 이룬 일괄유물로서 나타난 일은 없다.』

 

 

3) 당시 국제적 정황증거

『다음으로 기자가 《조선에 왔다》든가 또는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것은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로 보아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원전 12~11세기라면 고조선(후조선)이 강대한 나라로서 대릉하, 료하의 상류지역까지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므로 주 무왕이 제나라도 아닌 고조선 땅에 가서 임금노릇을 하라고《책봉》했다든가

기자 자신이 스스로 와서 임금노릇을 했다든가 하는 것은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꾸며낸 랑설에 지나지 않는다.』

 

 

4) 요서지방의 기국에 대하여

『일부 사람들은 《기자》란 기국의 자(子, 제후가 받은 작위의 하나)이며

그는 《기족》의 대표자인데 료서지방에도 기족 거주지 《기국》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볼수 있다고 하며

(《중 조변계사》 길림문사출판사,1993년 12~13페지)

또는 료서지방에 있던 기자의 후손이 수백년 후에 평양으로 옮겨왔을 것이라고 하는 주장들을 내놓고 있으나

이것 역시 같은 리유에 의하여 전혀 성립될 수 없는 주장이다.』

 

 

따라서 기자조선이란 전설이며 낭설이고 위작이며 완전한 날조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