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위만조선(2) - 사기 조선열전(2)

상 상 2011. 3. 21. 19:22

5)○ 원봉(元封) 2년(B.C.109)에 한(漢)나라는 사신(使臣) 섭하(涉何)를 보내어

우거(右渠)를 꾸짖고 회유하였으나,

[우거(右渠)는] 끝내 [한(漢)나라] 천자(天子)의 명(命)을 받들려고 하지 않았다.

 

섭하(涉河)가 돌아가면서 국경인 패수(浿水)에 이르러서

마부를 시켜 전송나온 조선(朝鮮)의 비왕(裨王) 장(長)을 찔러 죽이고

바로 [패수를] 건너 요새 안으로 달려 들어간 뒤,

드디어 천자(天子)에게 ‘조선(朝鮮)의 장수(將帥)를 죽였다’고 보고했다.

 

천자(天子)가 그 공(功)을 기려 꾸짖지 않고

[섭(涉)]하(何)에게 요동동부도위(遼東東部都尉)의 벼슬을 내렸다.

 

이에 조선(朝鮮)은 하(何)를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켜 기습공격해 하(何)를 죽이니,

천자(天子)는 죄인을 모집하여 조선(朝鮮)을 치게 하였다.

 

 

6)○ 그 해 가을에,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㒒)을 파견하여 제(齊)로부터

배를 타고 발해(渤海)를 건너게 하고

군사 5만으로 좌장군(左將軍) 순체(荀彘)는 요동에서 출격하여 우거(右渠)를 토벌하게 하였다.

우거(右渠)는 군사를 일으켜 험준한 곳에서 대항하였다.

 

좌장군(左將軍)의 졸정(卒正)인 다(多)가 요동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출진하였으나,

싸움에 패하여 군사는 흩어지고 다(多)도 도망하여 돌아왔으므로 법(法)에 따라 참형(斬刑)을 당하였다.

 

누선(樓船)[장군(將軍)]은 제(齊)나라 병사 7천인을 거느리고 먼저 왕검(王險)에 이르렀는데,

우거(右渠)가 성을 지키고 있으면서, 누선(樓船)의 군사가 적음을 엿보아 알고,

곧 성(城)을 나와 누선(樓船)[군(軍)]을 치니 누선군(樓船軍)은 패해 흩어져 도망갔다.

 

장군(將軍) 양복(楊㒒)은 그의 군사(軍士)를 잃고

10여일을 산중에 숨어 살다가 점차 흩어진 병졸들을 다시 거두어 모아들였다.

 

좌장군(左將軍)도 조선(朝鮮)의 패수(浿水) 서군(西軍)을 쳤으나 깨뜨리고 전진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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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국정사 조선전 중 사기 조선열전(국사편찬위원회)

중국정사 조선전: http://db.history.go.kr/url.jsp?ID=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