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해설과 분석)-1

상 상 2011. 10. 27. 08:00

시조 동명성왕

0년 (서기전-BC 35) : 동명성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0년 (서기전 35)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은 성이 고씨(高氏)이고 이름이 주몽(朱蒙)

<추모(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도 하였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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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saki?kind=b

 

2. 해설 및 분석

 

『이름이 주몽(朱蒙) <추모(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도 하였다.>이다.』

 

 

① 이름이 주몽(朱蒙)

삼국사기가 고구려 시조의 이름 주몽(朱蒙)을 첫 번째로 소개한 것은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삼국사기가 구삼국사(舊三國史)를 원본으로 편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② 고구려 시조를 주몽(朱蒙)이라고 부른 최초의 중국 정사(正史)는 위서(魏書)이다.

위서(魏書) 열전(列傳) 고구려(高句麗)전을 보면

『고구려는 부여(夫餘)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선조는 주몽(朱蒙)이라 한다.(高句麗者, 出於夫餘, 自言先祖朱蒙)』라고

되어 있다.그리고 위서(魏書)는 북제(北齊) 문선제(文宣帝) 천보(天保) 2~5년간(年間: 551~554)에 만들어진 사서이다.

 

③ 구삼국사(舊三國史)가 고구려 시조의 이름을 주몽(朱蒙)이라고 한 것을 보면

구삼국사(舊三國史)가 이미 중국 사서를 참고 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구삼국사(舊三國史)가 이미 우리 민족 고유의 사서인 고기(古記)와 중국 사서를 재단(오려 붙임)하는 방법으로

편집하였음을 알 수 있다.

 

④ 광개토대왕 비문에 의해 고구려 시조의 이름이 추모(鄒牟)라고 밝혀진 것을 보면,

삼국사기가 고구려 시조의 이름을 두번째로 소개한 것은 삼국사기의 기록이 정확한 것임을 증명한 것이며 

이는 다른 고기(古記)에서 재단(오려 붙임)하여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고기의 정확성은 놀라울 만 하다.

 

⑤ 따라서 고구려의 시조를 주몽(朱蒙)이라고 첫 번째로 소개하여, 후손들이 고구려의 시조 이름을 주몽이라고 잘못 알게 한 죄는

김부식에 있지 않음이 밝혀졌다.

 

⑥ 중해(衆解)라고 고구려의 시조 이름으로 세 번째 소개한 것은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10년조에 나오는 중모(中牟)와 비교된다.

 

결론적으로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본기 첫 부분을 볼때

삼국사기는 구삼국사(舊三國史)와 고기(古記) 두 종류, 합하여 세종류의 사서를 편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삼국사기는 한가지 사서를 가지고 편집한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사서를 재단(오려 붙임)하여 편집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