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례 1. 수서 본기 2. 수서 고려 열전 3. 자치통감(수기2,5,6 등) 4. 수서 본기분석 5. 수서 고려전 분석 6. 자치통감 수기(隋紀) 분석 7.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
6. 자치통감 수기(隋紀) 분석: 자치통감 중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기록 분석 1) 자치통감을 읽을때 주의할 점. 2) 자치통감 수기2, 문제 개황17년(597년)기사 3) 자치통감 수기2, 문제 개황18년(598년) 기사 4) 자치통감 수기5, 양제 대업8년(612년) 기사 5) 자치통감 수기6, 양제 대업9년(613년) 기사 6) 자치통감 수기6, 양제 대업10년(614년) 기사 및 자치통감 수기7, 양제 대업 12년(616년) 기사
3) 자치통감 수기2, 문제 개황18년(598년)기사 분석
① 2월 조 이 부분은 수서 고조 본기 개황18년(598년) 2월 기사와 수서 고려전 개황18년 기사를 기본으로 하고 다른 사서를 보충하여 사실을 약간 더 자세하게 쓴 것이다. 세 개의 사서를 제시하여 직접 보도록 하자.
< 자치통감 >
<수서 고조본기>
<수서 고려전>
② 6월 조(9월조 포함) 이 부분 역시 수서 고조 본기 개황18년 6월, 9월 기사와 수서 고려전 개황18년 기사를 기본으로 하고 다른 사서를 보충하여 사실을 좀더 쓴 것이나 춘추사관이 들어가 있다.
<자치통감>
<수서 고조본기>
<수서 고려전>
⇒ 자치통감을 보면 「군대가 돌아왔는데 10에 8~9이 죽었다」고 되어있는데 그런 군대에게 고구려 왕이 뭐가 두려워 사죄를 하고 ‘요동 더러운 땅에 있는 신’이라고 칭하겠는가?
쳐들어왔다가 몰살당한 군대에게 두려워하는 일도 있는가? 몰살당한 군대가 두려워 사죄하는 경우가 있는가? 승자가 자기를 더러운 땅에 있는 신하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가?
그리고 군대가 돌아왔다고 해놓고 고려왕이 사죄하고 표문을 올려서 군대를 철수 했다는 말은 또 무슨 말인가?
이렇게 앞뒤가 안 맞고 말도 안 되는 것을 글이라고 써 놓은 게 자치통감이다. 자치통감이 이렇게 엉터리가 된 것은 수서 본기와 수서 고려전을 짬뽕으로 뒤섞어 놓다보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글이 나온 것이고 그밖에 다른 사서도 적당히 섞어 싣되 중국인을 올리고 다른 민족을 내리 깎으려는 심보로 문장을 배열하다보니 이런 웃기는 글이 나온 것이다.
사실은 식량이 부족하고 전염병 때문에 군사의 80~90%가 죽은 것이 아니라 고구려에게 대패해서 군사의 80~90%가 죽은 것이고, 주라후가 바다로 평양에 갔으나 바람 때문에 배가 대부분 침몰한 게 아니고 고구려 해군에게 대패해서 배가 대부분 침몰한 것이 아니겠는가?
수나라의 수륙 양군 모두 고구려에게 참패하여 몰살당한 것이 창피하니 그것을 감추고 식량부족과 전염병 바람 탓으로 둘러댄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철저히 춘추필법으로 쓴 것이 자치통감이라고 볼수 있다.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166<수나라때, 자치통감 수기(隋紀) 분석-5> (0) | 2013.10.18 |
|---|---|
|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165<수나라때, 자치통감 수기(隋紀) 분석-4> (0) | 2013.10.16 |
|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163<수나라때, 자치통감 수기(隋紀) 분석-2> (0) | 2013.10.11 |
|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162<수나라때, 자치통감 수기(隋紀) 분석-1> (0) | 2013.10.07 |
|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161(수나라때, 수서 고려전 분석-3) (0) | 2013.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