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례
1. 수서 본기
2. 수서 고려 열전
3. 자치통감(수기2,5,6 등)
4. 수서 본기분석
5. 수서 고려전 분석
6. 자치통감 수기(隋紀) 분석
7.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
6. 자치통감 수기(隋紀) 분석(자치통감 중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기록 분석)
1) 자치통감을 읽을때 주의할 점.
2) 자치통감 수기2, 문제 개황17년(597년)기사
3) 자치통감 수기2, 문제 개황18년(598년) 기사
4) 자치통감 수기5, 양제 대업8년(612년) 기사
5) 자치통감 수기6, 양제 대업9년(613년) 기사
6) 자치통감 수기6, 양제 대업10년(614년) 기사 및 자치통감 수기7, 양제 대업 12년(616년) 기사
2) 자치통감 수기2, 문제 개황17년(597년)기사
: 수서 고려전을 간추려 쓴 것인데 철저히 수나라에게 유리한 것만 써놓고
조금이라도 고구려에게 유리하게 해석될수 있는 문장은 빼버리고 쓴 것이다. 즉, 철저히 춘추사관에 입각해서 쓴 것이다.
실제 양쪽의 기록을 보고 분석을 해보자.
<자치통감 수기2 문제 개황 17년(597년> 기사
|
597 |
개황17년 12월,고려왕 탕이 진나라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크게 놀라,병사를 정비하고 곡식을 쌓아,막고 지킬 방책으로 하였다. 이해에,(황)상이 탕에게 새서를 주어,책망하기를「비록 번부라고 칭하지만,성절을 다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저들이 있는 한 지방은,비록 땅이 좁고 사람이 적지만,지금 만약 왕을 내친다면,비워둘수 없으니,마침내 다시 관속을 뽑아,저쪽에 나가 안무해야한다. 왕이 만약 마음을 닦고 행동을 바꾸어,법과 제도를 따른다면,이는 곧 짐의 훌륭한 신하가 되는 것이니,어찌 수고롭게 따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보내겠는가!왕은 요수의 폭을 말하고 있지만,어찌 양자강만 하겠는가? 고려의 인구가,진나라보다 많은가 적은가?짐이 만약 품고 기르는데 있지 않고,왕의 지난날 잘못을 나무라는 것이라면,한명의 장군에게 명하면 되지,어찌 많은 힘을 기대할 것인가!은근히 깨우쳐 보여서,왕이 스스로 새롭게 되기를 바랄뿐이다.」탕이 새서를 받고,두려워하여,표문을 바쳐 사죄하려 하였다. 마침 병으로 죽어,아들 원이 이어서 즉위하니,(황)상이 사신으로 하여금 원을 상개부 의동삼사를 배하고,요동공의 작위를 세습하게 하였다. 원이 표문을 바쳐 은혜에 감사하고,왕으로 봉해줄 것을 청하니,(황)상이 허락하였다. |
<수서 고려전>
|
개황 초에는,입조하는 사신이 빈번하게 있었다. 진나라를 평정한 후에 이르러,탕이 크게 두려워하여,군사를 훈련시키고 곡식을 저축하여 방어할 계획을 세웠다. 개황 17년(597년) (황)상이 탕에게 옥새를 찍은 문서를 주며 말했다.“짐이 천명을 받아 사랑으로 기르고 강토를 거느리며, 왕에게 바다 한구석을 맡겨 조정의 교화를 선양하여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저마다의 뜻을 이루게 하고자 하였오. 왕은 사신을 보낼 때마다 매년 늘 조공을 바치면서 번부라고 일컫기는 하지만, 성의와 예절을 다하지 않고 있소. 왕이 남의 신하가 되었으면 모름지기 짐과 덕을 같이 베풀어야 할터인데, 오히려 말갈을 못견디게 괴롭히고 거란을 견고하게 가두었소. 여러 번국이 머리를 조아려 나에게 신첩 노릇을 하는게 [무엇이 나쁘다고 그처럼] 착한 사람이 의리를 사모하는 것을 분개하여 어찌 해치는 뜻이 (그렇게)심하오? 태부의 공인은 그 수가 적지 않으니, 왕이 반드시 써야 한다면 [나에게] 알리는 게 스스로 가능한데, 이전에는 몰래 재물을 뿌려 소인을 움직여, 사사로이 쇠뇌의 기술자를 그대 나라로 빼어 갔소. 이 어찌 병기를 수리하는 목적이 나쁜 생각에서 나온 까닭에 남이 알까 봐 두려워서 [사람을] 훔쳐 간 것이 아니겠소? 그때 사자를 보내어 그대 번국을 위무한 것은 본래 그대들의 인정을 살펴보고, 정치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자 함이었소. 그린데 왕은 사자를 빈 객관에 앉혀 놓고 엄하게 막아 지키며, 눈과 귀를 막아 영영 듣고 보지도 못하게 하였소. 무슨 음흉한 계획이 있기에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관원을 금제하면서까지 방문해 살펴보는 것을 두려워하오? 또 여러번 기마병을 보내어 변경 사람을 살해하고, 여러 차례 간계를 부려 그릇되고 바르지 않은 말을 지어 내었으니, 마음에는 따르는 바가 없었소. 짐은 창생을 모두 적자와 같이 여겨 왕에게 하늘 아래(의 귀퉁이)를 주고, 벼슬을 주어, 깊은 은혜와 남다른 혜택을 원근에 드러내려 하였소. 왕은 오로지 불신감에 젖어 언제나 시의(猜疑)하여 사신을 보낼 때마다 소식을 밀탐하여 가니, 순수한 신하의 뜻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소? 이는 모두 짐의 훈도가 밝지 못한 연유이므로, 왕의 과실을 모두 너그러이 용서하겠으니, 오늘 이후로는 반드시 고치기 바라오. 번신의 예절을 지키고, 조정의 정전을 받들어, 스스로 그대 나라를 교화시키고, 남의 나라를 거역하지 않는다면, 길이 부귀를 누릴 것이며, 진실로 짐의 마음에 맞는 것이오. 그곳은 비록 땅이 협소하고 사람은 적지만, 하늘 아래 온세상 밑은 다 짐의 신하가 되는 것이오. 이제 만약 왕을 내쫓는다면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으므로, 결국은 관속을 다시 가려뽑아 그곳을 안무하게 될 것이오. 왕이 만약 마음을 씻고 행동을 바꾸어, 헌장을 그대로 따른다면 곧 짐의 좋은 신하가 되는 것이니, 무엇 때문에 수고롭게 따로 재주있는 선비를 보내겠소. 예전에 제왕은 법을 마련할 적에 인과 신을 우선으로 하여, 선이 있으면 반드시 상을 주고, 악이 있으면 반드시 벌을 주니, 사해의 안이, 함께 짐의 뜻을 들었소. 만약 왕이 죄가 없는 데도, 짐이 갑자기 병사로 친다면, 나머지의 번국들이 나를 어떻게 말하겠소! 왕은 반드시 마음에 거리낌없이 짐의 이 뜻을 받아들여, 부디 의혹을 갖지 말고, 다른 의도를 품는 것을 고쳐주시오. 지난 날 진숙보는 여러 대에 걸쳐 강(江)[남(南)]에 있으면서 인민을 잔해(殘害)하고 우리의 봉후(烽候)를 놀라게 하며 우리의 변경을 약탈하였었소. 짐이 타이르고 훈계하기를 10년이나 하였으나, 그는 장강의 바깥이라는 것만 믿고 한 구석의 무리를 모아 미친듯이 거들먹거리며 짐의 말을 좇지 않았소. 때문에 장수에게 명하여 군사를 출동시켜 흉역을 제거토록 하였는데, 오가는 날짜는 한달이 못되었고 군사도 수천명에 지나지 않았었소. 역대의 포구를 하루 아침에 말끔히 소탕하니, 원근이 안녕을 누리고 사람과 귀신이 모두 기뻐하였소. 그런데 왕 만이 이를 한탄하고 마음 아파한다는 말이 들리고 있소. 관원의 성적이 좋은 사람을 승진시키고, 공적이 없는 사람을 내쫓는 것은, 담당 집행관리의 직무이나, 왕에게 죄를 준다 하여도 진이 멸망되어서가 아니고, 왕에게 상을 내린다 하여도 진이 존재하여서가 아닌데, 어찌하여 그처럼 화를 즐기고 난을 좋아하고 있소? 왕은 요수의 폭이 장강과 어떠하며, 고려의 인구가 많고 적음이 진나라와 어떠하다고 보고 있소? 짐이 만약 포용하여 길러 주려는 생각을 버리고 왕의 지난날의 허물을 문책하고자 하면 한명의 장수로도 족하지 무슨 많은 힘이 필요하겠소! 간절히 깨우쳐 주어 왕 스스로 새롭게 되기를 허용하니, 마땅히 짐(朕)의 뜻을 알아서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기 바라오.” 탕(湯)은 이 글을 받고 두려워하여 표문(表文)을 올려 사죄하려 하였으나, 마침 병으로 죽었다. 아들 원(元)이 이어서 즉위하니, 고조는 사신으로 하여금 원에게 상개부 의동삼사를 부여하고 요동군공의 작위를 이어받게 하며 옷 한 벌 일체를 주었다. 원이 표문을 올려 사례함과 아울러 상서(祥瑞)를 축하하면서 왕으로 봉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고조는 원을 우선 책봉하여 왕으로 삼았다. |
고구려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해석할수 있는 문장의 예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치통감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전부 다 빼버렸음)
(1)「말갈을 못견디게 괴롭히고 거란을 견고하게 가두었소. 여러 번국이 머리를 조아려 나에게 신첩 노릇을 하는게 [무엇이 나쁘다고 그처럼] 착한 사람이 의리를 사모하는 것을 분개하여 어찌 해치는 뜻이 (그렇게)심하오?」
⇒ 이것은 고구려와 수나라가 말갈과 거란을 두고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수나라가 말갈과 거란을 끌어들여 자기들의 신첩(臣妾) 노릇을 하였는데
고구려가 말갈과 거란을 힘으로 굴복시켜 고구려의 세력 안으로 끌어들이니
수문제가 고구려 왕에게 그 행위를 중지해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2)「왕은 사자를 빈 객관에 앉혀 놓고 엄하게 막아 지키며, 눈과 귀를 막아 영영 듣고 보지도 못하게 하였소」
⇒ 고구려가 수나라의 사신을 엄하게 감시 감독하고 있음을 수문제가 증언하고 있다.
수나라의 사신이 함부로 행동하거나 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음을 수문제가 증언하고 있다.
이것으로 고구려와 수나라는 수직적 관계가 아닌 서로 수평적인 대등한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것은 고구려와 수나라 관계에서 감히 조공 책봉체계라는 말을 꺼낼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3) 「기마병을 보내어 변경 사람을 살해하고, 여러 차례 간계를 부려 그릇되고 바르지 않은 말을 지어 내었으니,
마음에는 따르는 바가 없었소」
⇒ 고구려가 수나라를 마음대로 공격하였고, 고구려가 수나라를 추종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본바와 같이 자치통감과 수서 고려전을 비교하면
자치통감은 수서 고려전을 간추려 쓴 것임을 알수 있고,
조금이라도 고구려에게 유리하게 해석될수 있는 문장은 빼버리고 쓴 것임을 알수 있다.
즉, 철저히 춘추사관에 입각해서 쓴 것임을 알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