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연구초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단재 신채호) - 7

상 상 2011. 9. 15. 09:23

그러나 읍루전에

읍루(挹婁)는 부여(夫餘)에서 동북쪽으로 천 여리 밖에 있는데(挹婁在扶餘東北千餘里)...

언어는 부여나 고구려와 같지 않다.(言語不與扶餘句麗同)...

동이(東夷)들은 음식을 먹을 적에 대부분 조두(俎豆:나무로 만든 그릇)를 사용했으나,

오직 읍루(挹婁)만은 그렇지 못했으니, 그 법도나 풍속이 [동이(東夷) 가운데에서]

가장 기강이 없었다.(東夷飮食類皆用俎豆唯邑婁不法俗最無綱紀)” 라 하니

 

“부여 동북 천여리(扶餘東北千餘里)”가 송화 흑룡 연안의 려신국이 아니냐.

 

“언어가 부여나 고구려와 같지 않다(言語不與扶餘句麗同)”가

후한서 읍루전과 북사 물길전의

“동이 중에서 언어가 홀로 다르다(在東夷中言語獨異)”라 한 려신족이 아니냐.

 

“오직 읍루(挹婁)만은 그렇지 못했으니, 그 법도나 풍속이 [동이(東夷) 가운데에서]

가장 기강이 없었다(唯邑婁不法俗最無綱紀)“가 조선 열국 중 가장 미개한 려신이 아니냐.

그 위치 언어 풍속의 설명이 곧 려신임이 명백하다.

 

그런데 예전(濊傳)에는

예(濊)는 남쪽으로는 진한(辰韓)과, 북쪽으로는 고구려(高句麗)·옥저(沃沮)와 접하였고

(濊南與辰韓北與高句麗沃沮)...

“언어, 법, 풍속이 대체로 고구려와 같다(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이라 하였으니,

남으로 진한을 접하고 북으로 고구려와 옥저를 접한 자가 동부여가 아니냐.

 

언어는 당시 조선 여러나라(列國-열국)이 려신 부락 이외에 모두 동일한 언어 이었지만,

법속이 부여 고구려 양국과 상동한 자가 동부여가 아니냐.

 

이는 그 위치 언어 풍속으로 말미암아 동부여를 예(濊)로 오인함이 명백하거늘

후세 학자들이 삼국지의 잘못(誤-오)을 발견치 못하여 조선사상 또는 동양사상

종족의 경계(界限-계한)을 긋지(劃淸-획청하지) 못하여 허다한 분규를 만들어 냈다

(釀出-양출 하였다.)

 

당(唐)나라 가탐(賈耽)의 “신라 북쪽 경계 명주는 옛 예의 땅이다.

이전 사서에서 부여를 예의 땅으로 생각한 것은 대체로 잘못이다9新羅北界溟州古濊地前史以扶餘爲濊地者蓋誤)”는

다만 북부여가 예(濊)가 아님을 발견할 뿐이요 동부여가 예(濊)가 아님은 여전(依舊-의구)히 발견치 못함이다.

 

혹왈(或曰) “려신이 수초(水草)를 쫒아(逐-축 하여) 옮기는(遷徙-천사하는)

야만족(蠻族-만족)인 고로

삼국사에 나제려(羅濟麗: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의 중간에

잡거(雜居)한 말갈려신도 있으며,

 

고려사에 두만과 압록 등지에 침입하여 살았던(侵據-침거한) 女眞(여진) 려신도 있었은즉,

본지의 예(濊)도 이와 같이 일시 동부여 역내에 침입한 려신됨이 옳다(可-가 하다)”하나

설혹 그렇다 할지라도 주(主)인 동부여를 입전(立傳: 열전을 만듦)하지 않고

객(客)인 예(濊)를 입전(立傳: 열전을 만듦)함은 본지(삼국지)의 잘못(誤-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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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 설 >

1. 본문을 보면 단재선생께서 동이전에서 말하는‘예’가 동부여라고 말씀하시는 근거는

위치와 언어, 법, 풍속입니다.

 

1) 위치에 대하여

『예(濊)는 남쪽으로는 진한(辰韓)과, 북쪽으로는 고구려(高句麗)·옥저(沃沮)와 접하였고

(濊南與辰韓北與高句麗沃沮)...』라고하는 삼국지 동이전 예전을 근거로

 

“남으로 진한을 접하고 북으로 고구려와 옥저를 접한 자가 동부여가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으신데

 

그 이유를 삼국사기 내용 중심으로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① 부여왕 해부루는 재상 아란불의 권유에 따라 도읍을 동쪽으로 옮겨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고 함

② 옛 도읍지에는 해모수가 와서 도읍하였다(나라를 세웠다 - 북부여)

③ 해부루 왕의 손자, 동부여 왕 대소는 전쟁으로 대무신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나라가 망함.

부여왕 대소의 아우가 갈사수(曷思水) 가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왕을 칭하였다.

...(중략)...이 사람이 갈사국왕(曷思國王)이 되었다.

 

⇒ 여기에 나오는 갈사국을 단재선생께서는 ‘남동부여’라고 말씀하시며

본문에 나와있는 동부여는 이 남동부여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삼국지에서 말하는 ‘예’는 동부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상세한 내용은 삼국사기 동명성왕 본기, 대무신왕 본기,

여기에 근거한 단재선생의 부여 역사에 대한 설명을 알아야 합니다.)

 

2) 언어 풍속에 대하여

본문을 보면

『예전(濊傳)에는

“언어, 법, 풍속이 대체로 고구려와 같다(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라 하였으니,

언어는 당시 조선 여러나라(列國-열국)이 려신 부락 이외에 모두 동일한 언어 이었지만,

법속이 부여 고구려 양국과 서로 같은(상동한) 자가 동부여가 아니냐.』

이렇게 되어 있는데

 

먼저, ‘북사 열전 물길전’을 보면

『그들은 굳세고 흉폭하여 동이(東夷) 중에서 제일 강하며, 언어(言語)도 그들만이 다르다』 이렇게 되어 있으니

물길만이 언어가 다르고 나머지 동이(東夷)들은 언어가 다 같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물길은 려신이니“언어는 당시 조선 여러나라(列國-열국)가 려신 부락 이외에 모두 동일한 언어”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어가 고구려와 같은 것은 물길(=려신)을 제외한 당시 조선 여러나라(예: 부여, 삼한)이고

그중에서 법과 풍속이 부여 고구려 양국과 서로 같은 것은 동부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삼국지에서 말한‘예’는 동부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지 동이전 예전에 나오는

『언어 법 풍속이 대체로 고구려와 같다』는 구절과

그 나라의 노인들은 예부터 스스로 일컫기를 ‘[고(高)]구려(句麗)와 같은 종족이다’

라고 하였다. 라는 구절을 가지고

‘예’가 우리민족이고 따라서 우리역사에 넣고 있으나

바로 그 두 구절이 ‘예’가 아니고 ‘동부여라는 증거’라는 것이

단재선생의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단재선생의 말씀에 의하면,

잘 따져보지도 않고 만주족의 조상인 남의 민족을 우리조상이다, 우리민족이다.

우리는‘예’의 후손이다 라고 잘못 알고 있으며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엉뚱한 산소에 가서 절을 하는 꼴입니다...

이는 분명한 논의를 거쳐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3. 이것을 바로잡지 못해

“후세 학자들이 삼국지의 잘못을 발견치 못하여 조선사상 또는 동양사상 종족의 경계를

명확히 긋지(劃淸-획청하지) 못하여 허다한 분규를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을 아직도 예맥족이니 뭐니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예맥족은 우리민족이 아니며, 우리민족을 지칭하는 말도 아니고

읍루 말갈 여진으로 이어지는 만주족의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