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연구초

이두문 해석법(단재 신채호) - 12(끝)

상 상 2011. 8. 29. 09:10

                                          古史上(고사상) 이두문 명사 해석법

                                                                 : 옛 사서상에 나오는 이두문 명사 해석법 

 

3) 앞 사람(前人-전인)이 위증한 것(者-자)을 교정할 수 있으니,

역옹패설에 신라 진흥대왕이 벽골제(속칭 김제만경-金堤萬頃 외밤이들)를 짓고

벼(도-稻)를 파종(種-종)하므로

후세 사람(후인)이 그 은덕을 생각하여 벼(稻-도)를 나록(羅祿: 나락)이라 하다 하였으나,

나록(羅祿: 나락)의 풀이(解-해)도 고린 한문쟁이((漢文쟁이)의 해석이어니와,

완산(完山)에 그친 진흥(眞興)의 족적이 어찌 김제의 벽골제에 가서 벼(稻-도)를

파종(種-종)하리요.

 

백제 지리지에 의거하면 벽골(碧骨)은 곧 김제의 옛 이름(古號-고호)요 백제의 군(郡)이니,

 

벽골(碧骨)은 베골(稻邑-도읍)이니 백제가 이 제방(堤-제)를 쌓아 논(稻田-도전)을 만들고(作-작하고)

그 이익이 대단히 많음(多大-다대함)을 기념하여 “베골”이란 군 이름(郡名-군명)을 냄이 명백하다.

 

백제본기에 논(稻田-도전)을 기록(記-기)한 것(者-자)이 둘이니,

하나는 다루왕 6년의 "논을 만들기 시작하였다(始作稻田-시작 도전)"가 그것(是-시)이요

두번째는 고이왕 9년의 "남택에 논을 개간하였다(開稻田於南澤)"가 바로 그것(是-시)이니

벽골은 곧 두번째에 속한 남택의 논(稻田-도전)이 될지니라.

 

 

4) 이전 사서(前史-전사)에 두찬(杜撰: 근거나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문자를 쓰거나 오류가 많음)을 타파할 수 있으니

 

삼국사기에 석탈해는 금궤(金櫝-금독)에서 탈출한 고로 이름을 탈해라 하고,

까치 울음(작명-鵲鳴)의 상서로움(瑞-서)이 있었으므로

작(鵲: 까치)자(字) 좌변의 昔(석)을 빌려(차-借하여) 성을 석씨(昔氏)라 하였다 하며,

 

동사회통에 고주몽은 나라안의 모든 사람(거국)이 높이 우러러 보았기 때문에(고앙-高仰한 고로) 성을 고씨(高氏)라 하였다 하며,

 

문헌비고에 여수기(余守己)가 단군의 9부 군장이 되어 많은 사람(중인-衆人)이 붙으므로(부-附)

중인변(衆人邊)을 더하여(加-가하여) 서씨(徐氏)가 되었다 하여,

각종의 괴설이 분분하나,

 

그러나 삼국 중엽 이전에는 인명(人), 지명(地), 관명(官) 등 각종의 명사를 모두 우리말로 짓고 이두문으로 쓴 것이니,

어디 이 같은 한자 파자(漢字 破字)의 괴벽스러운 습속(벽습-僻習)이 있었으랴.

 

이따위 파자(破字)가 여조(麗朝- 고려조, 고려시대) 중엽에 성행하여

황규(黃葵:노란 해바라기)가 황규(皇揆: 황제의 법, 황제의 신하)가 되고,

계명성(鷄鳴聲: 닭울음-꼬끼오)이 고귀위(高貴位: 높고 귀한 지위)가 되고,

無古之那(무고지나: 탈없이 편히 지냄)가 無古之難(무고지난:오래지속된 어려움이 없어짐)이 되고

身負三椽(신부삼연: 몸에 세개의 서까래를 지다)이 王(왕)자가 된다는 등등의 설(等說-등설)이

고려사에 보인 것(者-자)이 허다한 바,

 

이 시대의 이 습관을 잘 아는 문사들이 고기(古記)를 수습하다가 말로 지은 명사를 한자의 뜻으로 풀어(解-해하여)

옛 역사(古史-고사)의 면목을 더럽히고 손상함(汚損-오손함)이 적지 아니하니라.

 

이두문적 명사의 해석이 이와 같이 옛 역사(古史-고사) 연구에 유익하나,

그러나 반드시 독단을 피함이 옳으니(可-가하니),

 

예하면 연개소문의 蘇文(소문)은 '신'으로 읽음(讀-독함)이 옳으나(가하나)

을지문덕의 文德(문덕)은 '묵'인지 '묻'인지 '무드'인지 알 수 없음은

전자(前者)는 삼국사기의 그 본주(本註)의 일명 개금(一名蓋金)이 그 해석을 전하거니와,

후자(後者)는 그 해석을 잃어버린(失-실한) 까닭이라.

 

고자미동(古資彌凍)의 고자(古資)는 구지(半島)로 읽음이 옳으나(讀-독함이 可-가하나),

마리미동(彌難彌凍)의 마리(彌難)는 '밀'인지 '미리'인지 '머리'인지 알 수 없음은

전자(前者- 앞에 것)는 고자군(古自郡: 田城-전성의 古號-고호: 옛 호칭)의 지형과 역사의 연혁이

그 설명을 주거니와(與-여하거니와)

후자는 그 증거가 없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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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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