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연구초

삼국사기 중 동서 양자의 상환 고증(三國史記中 東西 兩字相換 考證: 단재 신채호) - 1

상 상 2011. 8. 31. 09:41

삼국사기 중 동서 양자의 상환 고증(三國史記中 東西 兩字相換 考證)

  :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두 글자(兩字-양자)가 서로 바뀐(相換) 것에 대한 고증(考證)

 

 차    례

1. 동유낙랑(東有樂浪)의 시비

2. 삼국사기에 바뀐 동서 양자(東西 兩字)

3. 동서양자(東西兩字)의 바뀐 원인의 가정

4. 가정부터 실예(實例)

5. 양종사책(兩種史冊)의 부동(不同)

6. 김부식의 호도(糊塗)

 

 

 

1. 東有樂浪(동유낙랑)의 시비

   : 東有樂浪(동쪽에 낙랑이 있다)의 시비(是非: 옳고 그름)

 

낙랑은 평양의 별명이요, 평양은 백제의 서북 이어늘,

이제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3년조를 보면 “나라 동쪽에 낙랑이 있다(國家東有樂浪)” 라는 1구가 있다.

그리하여 여태까지(역래-歷來) 사가(史家)의 논제(論題)가 되었다.

 

안순암(安順菴: 안정복)은 “낙랑이 비록 백제의 서북이지만 낙랑국(최씨)이 강성할 때(盛時-성시에)

강원도 반쪽(반폭-半幅)이 거의 낙랑의 속지(屬地)가 된 고로

백제가 강원도 부분의 낙랑을 가리켜 「동쪽에 있다.(동유-東有)」라고 하였다” 하고,

 

정다산(정약용)은 “오른쪽(右-우: 동쪽)의 낙랑은 춘천 낙랑이요 평양 낙랑이 아니니,

대개 춘천의 토착 추장(土酋-토추) 최씨가 우뚝 서서(굴기-堀起하여) 낙랑국이라 칭하고

늘(매양) 신라와 백제를 침범(침)하므로 신라 백제 양국의 초엽에 보인 낙랑은

모두 춘천 낙랑이니, 춘천낙랑인 고로 「동쪽에 있다.(東有-동유)」고 하였다” 하나,

 

낙랑의 본부가 평양인즉, 백제인(百濟人)이 낙랑을 거론할 때에 본부를 버리고(사-捨하고)

그 부분인 강원도 낙랑을 말할 리가 없으므로 나는 순암 선생의 말을 좇으려 아니한다.

 

춘천이 한(漢)의 낙랑 동부가 되었단 주장은 있으나 춘천을 낙랑이라 칭한 때는 없으며,

또는 삼국사기에 의거하면 신라와 백제의 초년에 모두 낙랑국의 침입(侵寇-침구)으로

인하여 비상히 고생(곤고-困苦)하다가 고구려 대무신왕 17년에 낙랑을 멸하고

20년에 낙랑을 다시 한(漢)에게 빼앗김(견탈-見奪함)으로부터 낙랑의 침입(侵寇-침구)이

나제(羅•濟: 신라 백제) 양국 역사(兩國史-양국사)에 보이지 아니하였은즉,

 

그 각각의 글(各文-각문)에 보인 낙랑들이 곧 1개의 낙랑임이 명백하여,

한(漢)이 낙랑을 취하여 살수 이남이 한에게 속하였다 한즉

그 낙랑들이 모두 지금(今-금) 평양임이 명백하다.

그리하여 나는 다산 선생의 말도 좇으려 아니한다.

 

그러면 東有(동쪽에 있다)의 두 자(兩字-양자)를 어떻게 해석하려 하는가?

다음 절(次節-차절)에 이를 해설하려 한다.

----------------------------------------------------------------

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