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史上(고사상) 이두문 명사 해석법
: 옛 사서상에 나오는 이두문 명사 해석법
무릇 옛 사서상(古史上-고사상) 이두문으로 쓴 명사의 해석에 허다한 곤란이 있으니
대개 이두문은
한자의 전체 음(全音-전음), 전체 뜻(全意-전의),
혹은 반쪽 음(半音-반음), 반쪽 뜻(半意-반의)으로 만든
일종의 문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두문이 구역문(口譯文: 소리로 번역한 글)으로 되기 전에는
자모(字母:자음과 모음)의 발견만 않된 게 아니라 일정한 법칙도 없어서,
같은 백(白)자 이지만 무슨 까닭으로 上白是(아래 ① 참조)의 白은
그 전체 뜻(全意)을 읽어 “살”이라 하면서
白良(아래 ② 참조)의 白은 그 반음을 읽어“바”라고
하느냐 하면 그 해답이 없으니 그 곤란이 첫번째요.
한자로 지은 주, 군, 현의 이름은 경덕왕이 시작(始-시)한바,
그 변경의 때(際-제)에 밀불(推火-추화)이 밀성(密城)이 되고,
거물라(今勿奴)가 흑양(黑壤)이 된 것 같이
옛 이름(古名-고명)을 번역하여 사용(譯用-역용)한 것도 있지만,
퇴화(退火)가 의창(義倉)이 되며, 비화(比火)가 안강(安康)이 되어
아주 옛 이름(古名-고명)의 본래 뜻(本義-본의)을 버리고 한자로 지은 지명이 더 많으며,
중국의 관명(官名)을 모방함은 궁예 왕에서 시작하여 고려 광종에서 완성이 되었으나,
이는 또 한 개도 옛 이름(古名-고명)을 번역해서 사용(譯用-역용)한 것이 없은즉,
그 이름의 뜻(名義-명의)의 원류를 찾는 동시에 매번 앞뒤 사이가 끊어진 유감
(전후 際斷의 憾 - 전후 제단의 감)이 없지 아니하니 그 곤란이 두번째요.
삼국사기나 기타 사책(史冊)에 이두문으로 쓴 당시의 본명으로 실록에 기록(記-기)치 아니하고
후에 와서(後來-후래에) 번역하여 사용(譯用-역용)한 한자의 명사를 기록(記-기)하였으니
예를 들건대 백제가 쓰던 한강의 이름인 욱리하(郁里河)가 겨우 개로왕 본기(기)에
한번 보인(一見:일견) 이래에는 오직 신라가 고친 이름인 한강이 온조 초년부터 보이었으며,
고구려가 쓰던 요동성의 이름은 오렬홀(烏列忽)이거늘,
삼국사기에 오렬홀이 겨우 지리지(地誌-지지)에 한번 보인(一見:일견) 이외에는
모두 수당(隨唐)사람이 칭호한 요동성으로 적히었을 뿐이니,
그러면 아주 참고 할수(可考-가고) 없이 된 본명도 허다할 뿐더러
어떤 것은 당시의 본명인지 후에 와서 번역한 이름(후래의 譯名-역명)인지 알 수 없이 된 것도 적지 아니하리니
그 곤란이 세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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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샹살이,‘상사리’라고 읽고 그 뜻은 웃어른께 올리는 편지의 첫머리나 끝에 사용되어 ‘살외어(사뢰어) 올립니다’이다: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②‘바라’라고 읽고 그 뜻은‘~는 바이다’: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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