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연구초

삼한고(前後 三韓考: 단재 신채호) - 27(끝)

상 상 2011. 8. 16. 09:24

3.7. 후삼한과 북방 제국의 언어

 

당시에 가장 놀랄만한 사실은 현 조선 각 지방과 동삼성(東三省: 지금의 중국 동북 삼성, 즉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각지의 언어통일이다.

 

이제 삼국지에 의거(據-거)하면 고구려전에

“언어와 기타 여러 가지 일들은 대부분 부여와 같다(言語諸事多與夫餘同)”라 하며,

 

옥저전(沃沮傳)에 “언어는 고구려와 대체로 같다(言語與句麗大同)”라 하니

 

부여 옥저 구려 삼국의 지방은 곧 흑룡, 길림, 평안, 함경 등이니,

위 각지의 언어가 동일한 실증(實證)이요,

 

예전(濊傳)에 “스스로 일컫기를‘고구려(句麗-구려)와 같은 종족이다’라고 하였다.

그들의 성질은 조심스럽고 진실하며 욕심이 적고 염치가 있어, 남에게 구걸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언어와 예절 및 풍속은 대체로 고구려와 같다.

(自謂與句麗同種其人性原慤少嗜欲有亷恥不請句麗言語法俗大扺與句麗同)”라고 한 바

 

‘불청(不請)’ 2자가 문리에 맞지 않으므로(文理 不屬-문리불속)

건륭제 흠정 삼국지의 고증(考證)에,

청(請)자를 암(諳: 알다)의 오자(誤-오)라 하여

“고구려의 언어를 알지 못하였다(不暗句麗言語)”로 한 구를 만들었으나

이는 억측 판단(臆斷-억단)이다.

 

후한서 조선열전이 삼국지의 것을 베껴 기록(抄錄-초록) 했음은 이미 전술하였거니와

 

후한서 예전(濊傳)에는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그 사람들의 성품은 우직하고 건실하며 욕심이 적어 남에게 구걸하지 않는다.

(與句麗同種言語法俗大抵相類其人性愚慤少嗜欲不請匄)”라 하였은즉,

 

삼국지의 불청구려(不請句麗)의 구(句)는 개(匄: 빌다)의 오자(誤-오)며

려(麗)는 중첩한 군더더기 글자(疊載衍字-중첩연자)니

 

그 본문이 “남에게 구걸하지 않으며 언어, 법령, 풍속이 고구려와 같다

(不請匄言語法俗與句麗同)”일 것인데

 

불청개(不請匄: 남에게 구걸하지 않는다)가 한 구요,

언어법속구려동(言語法俗句麗同: 언어, 법령, 풍속이 고구려와 같다 )이 한 구이다.

 

그러하여야 윗글의 "여구려동종(與句麗同種: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다)"과

의사가 접속될 것이니,

예와 고구려의 동언어(同言語: 언어가 같음)임이 명백하다.

 

진한전에 비록 “언어가 마한과 같지않다(言語不與馬韓同)”이라 하였으나

이는 진한의 진(辰)은 진인((秦人)의 진(秦)으로 위증(거짓 증명)하는 동시에

 

“국(나라)을 방(邦)이라하고 궁(활)을 호(弧)라한다...진나라 사람들과 유사하다

(名國爲邦弓爲弧……有似秦人)”의 거짓 기록(誣錄-무록)을

억지 변론(臆辨-억변)키 위하여 쓴 것이요 사실 기록(實錄-실록)이 아니다.

 

진한이나 마한에 신지(臣智), 읍차(邑借) 등 동일한 관직명(官名-관명)이 있고

달리 언어가 다르다는(異言語-이언어) 증거나 흔적(證跡-증적)이 없으니 또한 동일한 언어이었던 것이다.

 

다만 낙랑 대방 양전(兩傳: 낙랑전, 대방전)이 빠졌으므로

삼한과 고구려 등의 중간연락이 끊어지며

따라서 낙랑 대방이 부여 고구려와의 언어관계가 어떠하였던지,

삼한이 낙랑 대방과 언어관계가 어떠하였던지 삼국지에는 기재(記載)된 것이 없으나

 

신라의 악곡, 반섭조(樂曲般涉調)를 백제인이 노래하며,

고구려의 내원성(來遠城)과 백제의 무등산(無等山)을 신라인이 노래하며,

 

호동이 고구려 궁중 미성년 아동(童子-동자)으로서 낙랑에 들어가 최왕의 딸과 연애를 성취하며,

서동이 백제 궁중 16세, 꽃같은 나이(妙齡-묘령)의 태자로

신라에 몰래 들어가(逃入-도입) 아이들 무리(群童-군동)를 꾀어 노래를 짓고

선화공주를 유인한 사실 같은 것이

모두 삼한 낙랑 고구려 등의 언어가 서로 환하게 통했음(通曉- 통효)을 설명한다.

 

그러면 경상도의 신라, 경기 충청도 등의 백제, 강원도의 예, 평안도의 낙랑,

함경도의 옥저, 길림 봉천 흑룡 등의 부여와 고구려가 다 언어가 동일하던 실증이 있었다.

 

오직 읍루 일부가 언어가 좀 다르므로 후한서에

“읍루는 동이(족) 중에서 언어가 홀로 다르다(挹婁在東夷中言語獨異)”라 함이나,

 

읍루는 만청족(滿淸族: 만주 청나라 족속)의 선대(先代)니

만청(滿淸)과 조선의 옛 언어(古語-고어)가 서로 통한 것(相通-상통)이 많은즉

이것도 아주 판이하게 다른(懸殊-현수) 언어는 아니었던 것이다.

 

설령 소부분인 읍루를 제외할지라도

고조선 전체(全幅-전폭), 즉 지금 조선 13도와 지금 관동 삼성(關東 三省: 현, 중국 동북 3성)이

고대의 언어가 통일된 민족으로,

또 사책(史冊)에 의하여 보면 그 관제와 풍속은 더욱 차이가 적었던 것이다.

 

영국사를 보면 16세기까지도 런던과 웨일즈의 서로 가까운(相近-상근) 지방으로도

언어가 불통하여 웨일즈의 어느 항구에 정박한 상인이 계란을 사서 먹으려 하나

에그란 말을 알아듣는 자가 없어 손으로 난(卵: 달걀)의 모양을 형용한 결과

감이 나오며, 배가 나왔다는 우스운 이야기(笑話-희화)가 있으며,

 

그밖의 서양 여러나라(列國-열국)가 모두 근세교육이 발달되기 전에는 한 국내에

각종의 언어가 있어 지금까지도 그 사투리를 쓰는 습관이 남아있는 나라가 많으며

 

중화는 문물과 정치가 통일된 지 수천년이나 지금에 동일한 성내(省內)에서도

언어 불통되는 곳이 많거든,

 

하물며

“백리마다 풍습이 다르고 천리마다 습속이 다르다(百里不同風 千里不同俗)”고 하던

고대(古代)이랴.

 

조선은 고대(古代)에 적지 아니한 강토에 언어 풍속이 남보다 먼저 통일된 민족으로서,

망망한 고대(古代)에 수두 신목(神木) 아래(下-하)에

신권 정치적(神權政治的)통일이 있은 이후에는 다시 정치통일이 행해지지 못하고

압록강 이서(以西)를 떼어버리고(割棄-할기),

게다가 또 매번 북방 대국의 문화와 위력(威力)을 빌린(藉賴-자뢰) 연후에야

구구한 소통일(小統一)의 국가로 존재케 되었으니 이것이 무슨 원인인가.

--------------------------------------------------------------------

1.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같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여 여러 사서에 나오지만

고구려와 낙랑(국)의 언어가 같고,

백제와 신라의 언어가 같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매우 드문데

이것을 단재선생께서 해주셨습니다.

 

따라서 고구려, 낙랑(국), 백제, 신라의 언어가 서로 훤하게 통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 것은 단재선생께서 이루어 놓으신 큰 공입니다.

 

특히,

① 백제 무왕이 어린 시절 신라에 가서 서동요를 지어 퍼뜨렸다는 사실로써

백제와 신라의 언어가 같음을 증명한 것

 

② 고구려 미성년 동자 호동이 낙랑(국)에 들어가 최왕의 딸과 연애를 성취한 사실로서

고구려와 낙랑(국)의 언어가 같음을 증명한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2. 또한, 고구려와 예의 언어에 대한 삼국지의 오류를

삼국지를 베껴쓴 후한서로 명명백백하게 바로 잡는 논리 전개 역시

단재선생의 역량을 보여준 단면이라고 하겠습니다.

 

3. 마지막 결론인

『조선은 고대(古代)에 적지 아니한 강토에 언어 풍속이 남보다 먼저 통일된 민족으로서,

망망한 고대(古代)에 수두 신목(神木) 아래(下)에

신권 정치적(神權政治的)통일이 있은 이후에는 다시 정치통일이 행해지지 못하고

압록강 이서(以西)를 떼어버리고(割棄),

게다가 또 매번 북방 대국의 문화와 위력(威力)을 빌린(藉賴) 연후에야

구구한 작은 통일(小統一)의 국가로 존재케 되었으니 이것이 무슨 원인인가.』는

 

되새기고 되새겨서 우리가 대통일의 큰 나라를 만드는데 큰 교훈을 삼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단재선생의 염원이며, 우리모두의 염원이라고 하겠습니다.

 

 

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3) 지금 올리는 ‘전후 삼한고’는 ‘조선사연구초’ 안에 있는 글임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