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후삼한과 병립한(竝立: 같이 있었던) 열국(列國: 여러나라)
삼국지에 적힌 후삼한 당시의 왕국이 다섯이니
일(一), 부여(扶餘)는 불의 한자(漢字) 번역이니,
비리(卑離), 부리(夫里), 불(弗), 발(發), 화(火), 벌(伐) 등의 번역과 같은 것이나,
불은 나라 이름이 아닌 고로
조선 옛 역사(古史)에 반드시 그 위에 접두사(頭辭)를 붙여
북부여(北扶餘), 동부여(東扶餘), 사비부여(泗沘扶餘), 졸본부여(卒本扶餘),
이릉부리(爾陵夫里), 고막부리(古莫夫里), 밀불(密弗), 추화(推火), 음즙벌(音汁伐),
사벌(沙伐), 서라벌(徐羅伐)이라 하여 그를 구별하였다.
그러나 각 불 중에 북부여가 가장 대국이며 중국과 교통이 잦았던 고로
한(漢)나라 사마천부터 북부여를 다만 부여로 칭하여 관습어가 됨이니,
삼국지 중 부여도 곧 북부여를 가리킨 것인데
그 수도의 위치는 하얼빈으로 삼국사기의 황룡국이 그것이며,
삼국사기 중 부여는 동부여니 삼국지의 부여가 아니다.
이(二), 고구려는 그 중경(中京), 가우리로 이름을 얻은 것이니,
삼국지 중 고구려의 수도는 지금 집안현(輯安縣)이요.
삼(三), 옥저는 와지니, 삼림(森林)의 뜻이니 만주원류고에 보인 와집(窩集)이며,
고대조선 북부 사람(北部人-북부인)이나
근세까지의 만주인이 그 사는 지방에 대삼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와지라 하였은즉,
삼국지에 동,북,남 삼옥저는 그 중 최대한 와지를 가리킨 것이요.
그밖에도 무수한 와지가 있었으니,
삼국사기에 호동(好童)이 놀러 나갔던(出遊-출유) 와지와
진서(晉書)에 나오는 의려(依慮: 아래① 참조) 아들(子第-자제)이 달아나 지킨(走保-주보) 와지는 다 삼옥저 이외의 와지다.
사(四), 읍루(挹婁)는 ‘오리’라.
‘오리’(지금 송화강) 강반(江畔 : 강가, 강변) 에 의거하여 이름을 얻은(得名-득명) 것이며,
광개강토평안호태왕(廣開疆土平安好太王)의 비문에 쓰인 압로(鴨盧)가 그것이니,
삼국지에 이를 숙신씨의 후예라 하였으나,
이는 그 소용 무기인 호시(楛矢:아래② 참조)와 석로(石弩:아래③ 참조)가
좌씨(左氏) 국어(國語)에 기록(記-기)된 숙신씨의 화살(矢-시)과 같은 까닭에 억지로 갖다붙인(傅會-부회) 말이며
숙신, 직신, 주신(州愼) 등은 다 고대 중국인이 조선을 번역하여 놓은(譯傅-역부) 것이다.
읍루는 조선 최북 미개한 일부 조선족으로 삼국사기와 당서에는 읍루를 말갈이라 하였으니,
말갈은 읍루의 별명인데 그 음의 뜻은 아직 고증치 못하였다.
오(五), 예(濊)도 또한 “오리”강으로 이름을 얻은(得名-득명) 것인데
그러나 이 오리강은 영평부(永平部)의 난하(灤河)니,
예(濊)가 처음 난하(灤河) 부근에 나라를 세웠으니
일주서(逸周書)에 영지(令枝)와
관자(管子)의 이지(離枝)가 다 예(濊)의 한역(漢譯: 한문 번역)이며,
예(濊)가 차차 동쪽으로 옮겨 두만강 내의 연안에 분포하였으니
중국 한나라 사람(韓人-한인) 장량(長良)이 역사(力士)를 구하던 창해국(滄海國)과
한무제(漢武帝)와 전쟁(戰-전)하던 남려왕(南呂王)의 창해국이 다 그것이요,
그 일부가 다시 남하하여 지금 강원도 등지에 분포하였으니
삼국지의 예(濊)가 다 그것이다.
삼국사기에는 혹 읍루 즉 말갈을 예(濊)로 기록한 곳도 많으니
고구려 태조본기에 ‘마한예맥을 거느리고(率馬韓濊貊-)’와
김인문 전에 ‘고구려가 성채의 견고함을 믿고 예맥과 결탁하여 몹쓸 짓을 하였다
(高句麗負固與濊貊同惡)‘ 등인데,
선배유학자들이 다만 예(濊)란 글자의 표면상의 뜻(字面-자면)만 좇아 그 계통을 구하므로
예(濊)의 집안의 계보(家譜-가보)가 비상히 어지럽고 어수선(錯亂-착란)하게 되었으니
그 상세는 따로 전적인 논의(專論-전론)가 있어야 할 것이라 여기므로 아직 중지한다.
위의 다섯 국가 가운데 옥저, 예(濊) 양국은 고구려에 복속한 나라로 독립한 왕국이 아니다.
5국의 지리강역은 선배유학자의 고증이 대략 옳으나,
다만 북부여를 지금 개원(開原)이라 함은 그 말엽에 옮겨와 산(遷居-천거) 서울을
그 원 주둔지로 오인한 것이다.
5국이 다 후삼한과 그리 밀접한 관계가 적었고
가장 관계가 많았던 나라는 낙랑 대방 양국 이어늘
삼국지에는 이를 빼었으니 다음 절에 간략하게 논의(略論-약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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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의려(依慮):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략할 당시 부여왕 마여의 아들이 의려임
② 호시(楛矢): 화살 만들기에 적합한 호목으로 만든 화살
③ 석로(石弩): 돌 쇠뇌(화살이나 돌을 여러 개 잇따라 쏠 수 있게 만든 큰 활)
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3) 지금 올리는 ‘전후 삼한고’는 ‘조선사연구초’ 안에 있는 글임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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