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8대 보장왕 (31), 당태종의 2차 침입(1)

상 상 2012. 4. 6. 18:33

6 년 (AD 647) : [봄 2월에] [당나라] 태종이 다시 군대를...

[번역문]

6년(647) [봄 2월에] [당나라] 태종이 다시 군대를 보내려 하니 조정의 의논이 이러하였다.

“고구려는 산에 의지하여 성을 쌓아서 갑자기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전에 황제께서 친히 정벌하였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며,

[우리가] 이긴 성에서도 실로 그 곡식을 거두어 들였으나 가뭄이 계속되었으므로 백성들의 태반이 식량이 부족하였습니다.

이제 만약 적은 군대를 자주 보내 번갈아서 그 강토를 어지럽혀, 그들을 명령에 따라 분주히 움직이게 해서 피곤하게 하면,

[그들은] 쟁기를 놓고 보(堡)로 들어갈 것이며, 수 년 동안 천리가 쓸쓸하게 되어 인심이 저절로 떠날 것이니,

압록수 북쪽은 싸우지 않고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황제가 이 말에 따라 좌무위대장군 우진달(牛進達)을 청구도(靑丘道) 행군대총관으로 삼고, 우무위장군 이해안(李海岸)을 부총관으로 삼아,

군사 만여 명을 파견하여 누선(樓船)을 타고 내주(萊州)로부터 바다를 건너 들어오게 하였다.

또 태자 첨사(詹事) 이세적을 요동도 행군대총관으로 삼고,

우무위장군 손이랑(孫貳朗) 등을 부총관으로 삼아,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영주도독부의 군사를 앞세우고 신성도로부터 들어오게 했는데,

두 군대는 모두 물에 익어서 잘 싸우는 자들을 골라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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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본문 중,

“고구려는 산에 의지하여 성을 쌓아서 갑자기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라는 문장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산을 의지해서 적을 막아내고 살아온 산악민족입니다.

 

2) 우리민족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서 신시를 열어 시작했다는 단군 이야기부터 지금까지

우리민족은 산을 의지해서 살아왔으며

아직도 산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민족은 산악민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도의 70% 이상이 산임)

 

3) 당태종이 군사를 동원하여 또다시 고구려 침략을 합니다.

이번에는 수군을 위주로 군대를 편성하여 주로 바다로 침입합니다.

 

※ 오늘 기사와 관련있는 신당서 동이열전

 

○ 또 이듬해 3월에 조서(詔書)를 내려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우진달(牛進達)을 청구도행군대총관(靑丘道行軍大總管)으로 삼고,

우무위장군(右武衛將軍) 이해안(李海岸)을 부총관(副總管)으로 삼아 내주(萊州)에서 바다를 건너게 하였다.

이적(李勣)을 요동도행군대총관(遼東道行軍大總管)으로 삼고 우무위장군(右武衛將軍) 손이랑(孫貳朗)과

우둔위대장군(右屯衛大將軍) 정인태(鄭仁泰)를 부총관(副總管)으로 삼아 영주도독(營州都督)의 군사를 거느리고

신성도(新城道)를 거쳐 진군(進軍)하게 하였다.